■2019년 4월14일 동산교회 총동원주일 설교 (주일 낮)
풍성한 생명 (요 10:9-10)
김동환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최근에 쓴 책을 보내왔습니다. 책 제목은 <하나님을 만난 9명의 아이들>입니다. 기독교출판사가 아닌 일반 출반사로서 유명한 김영사에서 출간한 책입니다. 이분이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분인데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99.26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수석 졸업하였습니다. 이분이 중학교 때 하나님을 만나고서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을 한 바가 있기 때문에 이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려고 대학교 전공을 종교학으로 정해서 종교학과에 진학했고, 총신 신대원을 거쳐 이후 청소년교육에 관심이 있어서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과정도 수료했습니다. 2009년에 기독교 대안학교 ‘다니엘리더스스쿨’을 설립했습니다.
이분이 종교학과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기를 “하나님은 의지가 약하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못다 이룬 욕망의 대리만족을 위해 만들어낸 인간의 욕구가 반영되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없다”는 것이죠. 종교학과에는 각 종교를 대표하는 교수님들이 계십니다. 기독교와 유대교를 전공한 교수와 불교 전공 교수, 그리고 유교 전공 교수, 비교종교학 전공 교수등이 있는데 예전에 기독교 담당교수로 오랫동안 봉직하고 은퇴한 정진홍교수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신문 인터뷰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기를 사회가 잘 유지되고 도덕적으로 건전하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권위 있는 존재자로 사람들이 내세우고 만들어낸 개념 비슷한 식으로 말한 것이 저 개인적으로도 기억이 납니다.
하여튼 김동환 목사님이 대학교에서 처음 그 강의, ‘하나님이 없다’는 강의를 듣는 순간 그러면 ‘우리 엄마는 어떻게 살아난 것일까’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교회에서 이분의 어머니가 오셔서 간증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김동환목사가 일곱 살 때 이분의 어머니가 병원에서 시한부판정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다는 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의 어머니 모습이 강의 도중에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몸무게가 30kg이나 될까 말까 한 앙상한 몸으로 누워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분의 집안은 대대로 불교집안이었습니다. 집에서도 불공을 드릴 정도로 돈독한 불교집안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서 불공을 드릴 뿐 아니라 유명한 무당을 불러 굿을 자주 하였습니다. 큰 절을 찾아다니며 부처님께 정성 어린 공양도 드렸고,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무당을 불러 한 달에 두 번이나 굿을 했습니다. 그래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위해 마지막으로 택한 방법은 교회를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교회라는 말만 들어도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그토록 가기 싫어했던 교회를 찾아간 것입니다. 놀랍게도 교회에서 어머니의 병이 고침 받았고, 가족 모두가 기독교를 새 종교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분이 일곱 살 때 이러한 기적을 경험하고 그때 든 생각은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정말 있는가? 우리 엄마는 누가 살린 것인가?’ 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분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곱 살까지 이분이 배운 기독교란 못된 꾀로 사람들을 속이고, 믿어서는 안되는 종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분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철저하게 조상께 제사를 드리며 조상신을 섬기고, 무슨 일이 생기면 무당을 찾고, 불교를 종교로 믿는다고 여겼던 집안이었습니다. 가끔 교회에서 전도하러 집에 찾아오면 굵은 소금을 뿌리고 문전박대했습니다. 그런 집안이었는데 이분의 어머니가 고침을 받고서 “하나님이 고쳐주셨다”는 말을 엄마 입에서 직접 듣게되니 혼란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엄마 손을 잡고 그때 이후부터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십년 넘게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했는데 대학교에 들어와 종교학과에서 배우는 기독교란 성경 내용이 고대 근동 신화의 짜깁기, 인간이 만든 문화적 산물일 뿐이라는 폄하였습니다. 이분은 그래도 굴하지 않고 학부 4년 동안 종교학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불교, 유교,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 사이비 종교, 이단 등을 각각 배운 후 종교 상호간의 비교종교학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각 종교를 공부하면서도 늘 머릿속에는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문화 산물이라면 하나님이 우리 엄마를 어떻게 낫게 할 수 있었을까?’는 의문이었습니다. 약간의 내면의 갈등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만든 것일까?’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오랜 시간 씨름하고 연구했습니다. 이분에게 ‘하나님이 있다’는 말을 맨 처음 한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하던 엄마였습니다. 죽을 날을 받아놓고 있던 엄마가 교회에서 병을 치료받고 제일 먼저 한 이야기를 이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 진짜 계셔! 기독교 가짜 아니야, 사실이야 동환아! 엄마는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정말 하나님이 계시고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분의 엄마는 병이 낫기 전까지만 해도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법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만, 건강해진 후에는 “하나님이 엄마를 치료해주셨다”고 말하면서 “너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고, 하나님께 주의 종으로 바쳤어”라고 하면서 판검사가 아닌 목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이분은 자신의 기독교 대안학교에 찾아왔던 소위 문제아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어떻게 삶이 변화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심층 면접하여서 하나님이 진짜 존재함을 보여주려고 <하나님을 만난 9명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펴낸 것입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10년을 매진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보니 문제아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면 의무적으로 하루에 세 번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이 세 번의 예배 때마다 함께 기도해야 할 제목이 있는데 특별히 하나님을 아직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아이들은 하나님께 “하나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 날 사랑하십니까? 안 사랑하십니까?”를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악을 쓰며 기도하다가 아니면 해야 돼서 재미로 외치다가 하나님을 만난 9명의 아이들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심각한 중독과 다양한 문제를 안고 살았습니다. 이들 모두는 하나님을 만난 이전과 이후가 극명하게 달라진 학생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만난 과정과 이후의 변화 양상이 대체적으로 유사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들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바꿔놓았고, 그토록 공부라면 질색하던 아이들이었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학습을 실천하는 학습자로 변화되었습니다. 한 두 달 잠깐 변화된 듯하다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아니라 그러한 모습을 1년 이상 지속한 학생들입니다. 그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이 이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건져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성경은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이라고 묘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다 양떼에 속한 양들이고 하나님이 우리에서 기르시는 양들입니다. 양들을 기르기 위한 우리는 악한 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돌로 어느 정도 높게 쌓고 위에는 가시덤불을 얹혀놓습니다. 그리고 입구에 조그마한 문을 만들어놓고 그 문으로 우리에 출입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그 양 우리의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문을 출입하여 들어가고 또 나가고 하면서 거기서 살아가고 그곳에서 꼴을 먹고 자라나는 양들로 우리를 비유합니다. 예수님이 양들의 우리에 들어가는 문이 되어주셔서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구원 받는 양의 문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양의 문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는 본문 10절에 보면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땅에서 양들이 잘 먹고 물도 마시고 우리에서 안전하게 생명을 잘 보존하고 유지하는 생명뿐 아니라 더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생명을 풍성한 생명이라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은 풍성한 생명이라 말할 수 있는데,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하는 유일한 원천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참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게 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참된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양무리인 우리로 하여금 이땅에서도 배불리 먹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참된 보호와 안전이 되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양의 우리의 문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은 ‘문’으로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우리를 친히 기르시는 목자가 되어주십니다. 본문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목자로서 예수님은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며, 그의 죽음으로 양들은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때문에 대신 죄값을 치루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을 목자로서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모든 양떼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셨고, 양 우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목숨을 버리신 희생 덕분에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셨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그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부활생명을 우리에게 약속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사는 부활생명을 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생명에 대한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름철에 강한 태풍이 오면 뿌리채 뽑인 나무를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여름철에 이파리가 무성하고 푸르른 나뭇잎들이 처음에는 푸르름을 간직해보이는 것 같아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말라서 비틀어집니다. 뿌리채 뽑혔기 때문입니다. 대지라는 든든한 토대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서 나뭇잎이 푸르름을 잃고 말라 비틀어지는 것이죠. 하나님께 연결되지 못한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연결되지 못한 인생이란 참된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가 차단된 것과 같습니다. 뿌리채 뽑힌 나무와 같습니다. 잠시 잠깐은 자연적 생명에 의해 푸르름이 유지되는 것 같아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영원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말라 비틀어집니다. 참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유일한 연결의 끈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서 참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켜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받고서 의롭게 됨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다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인생들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김동환목사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이분이 종교학과를 다니면서 씨름했던 주제가 ‘하나님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였습니다. 종교학과를 졸업한 이후 신학대학원에 진학해서 생각보다 쉽게 이 씨름이 끝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기원 후 지금까지 적어도 몇 억 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천국 가세요”라는 내용을 전하면서 목숨까지 잃은 사람이 수천만 명도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도 수많은 종교 가운데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일년에 십만 명 이상이 이러한 내용을 전한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들은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그들이 만났다고 하는 하나님은 진짜 계시는가? 아니면 그들이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만나고 싶어 간절히 찾다가 그들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어떤 욕구 투사에 불과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허상 때문에 온갖 고문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고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버리면서 수천만명이 신앙을 지킬 수 있었을까?’
기원 후 180년 경에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로마 총독이었던 사투르니누스는 12명의 북아프리카 그리스도인들을 심문했습니다. 이들을 심문한 과정을 남긴 기록이 담담히 기술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의 관점으로 기술되었기에 극적인 자면도 없고 기적도 언급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도 구체적으로 서술되지는 않았습니다. 마치 신문보도처럼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기술되었을 뿐입니다. 12명의 그리스도교인 중 한 사람인 스페라투스라는 사람과 총독과 나눈 이야기를 옮겨놓고 있을 뿐입니다. 로마 총독은 인간미가 있었던 사람인 듯합니다. 피고인들이 마음을 바꾸어 로마제국의 시민으로서 제국의 종교에 순응하고 로마 황제의 신적인 권능에 복종할 것을 맹세한다면 면죄해주겠다고 말합니다. 총독은 로마 황제의 신적인 권능에 복종할 것을 맹세하고 황제가 평안을 누리기를 기도하기만 하면 풀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총독은 교양 있는 사람이었고 12명의 그리스도교인들은 대개가 현지 출신의 노예였습니다. 총독의 말입니다: “자, 이건 어려운 문제가 아니오. 우리는 결국 같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요.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휴정을 바라오? 30일이면 되겠소?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말기를 바라오. 구태여 고통스러운 선택을 할 필요는 없소. 간단한 일이오. 누구도 당신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오.”
이에 12명의 그리스도인을 대표하여 스페라투스가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으며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황제께서 평안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로마 정부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원천에서 나오는 명령을 따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한 달 간 생각해볼 시간을 주겠다는 제안에도 스페라투스는 똑같은 진술을 반복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게 재판은 마무리됩니다. 재판에 관해 전해지는 기록입니다: “사투르니누스 총독은 서판에 쓰인 판결문을 읽었다. 스페라투스 외 11명의 피고인들은 그리스도교의 관례를 따라 산다고 시인했다. 로마의 법도로 돌아올 기회를 주었음에도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였으므로 이들에게 참수형을 선고한다.”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 로완 윌리엄스 저, 174-177쪽)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오직 우리는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여 참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연결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라도 이땅에서도 충만히 실현된 생명을 얻게 되고 아울러 영원한 생명,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의 부활생명의 첫 열매가 되어주신 예수님이 우리의 양의 문이 되어주시고 선한 목자가 되어주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참된 구원과 생명으로 인도해주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고 싶습니까? 성경은 약속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여러분 모두가 간절히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죽어도 사는 부활생명에 동참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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