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21일 설교 (주일 낮)
십자가와 부활 (롬 4:23-25)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써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구원 사건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우리가 동참함으로써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주간은 고난주간으로 지켰습니다. 고난주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했고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고난주간에서 부활절로 이어지는 한 주일은 우리의 구원을 압축해놓은 기간입니다. 고난주간은 십자가의 길을 걷고 십자가를 지는 시간으로서 이땅에서 보내는 ‘현재의 고난’을 지칭합니다. 우리의 전 생애는 ‘현재의 고난’이라고 부르는 기간입니다. 십자가에 동참하는 기간입니다. 이 길 끝에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오늘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누리게 될 부활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날입니다. 매주 반복되는 한 주간의 삶은 이러한 구원의 패턴을 따라 진행됩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고난주간의 반복이요 그 길 끝에 있는 부활절의 반복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왜 주일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일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식후 첫 날 곧 주일을 지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한 주간의 끝날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 창조를 마치시고 창조 사역을 완수하신 후에 안식하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첫 창조를 뒤돌아보며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안식하셨던 것처럼 안식하는 날이었습니다.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일을 지키는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님이 이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주일에 부활하셨습니까? 예수님을 한 주간의 첫날 곧 주일에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은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처음 창조는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인해서 그 결과가 죽음이었습니다. 창조주께서 죽음을 선고하셨습니다. 죄로 인한 결과입니다. 처음 창조 세계에 깃든 죄악으로 인해서 죽음을 선고하셨고, 예수님의 부활로 새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처음 창조는 최종적으로 죽음에 이르렀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전혀 새로운 새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 창조의 시작이요 새 창조의 개시가 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주간의 첫 날 곧 주일에 부활하심은 예수님의 부활이 새 창조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 주간의 첫날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로 시작된 새 창조를 경축하면서 새 창조가 완성될 날을 내다보며 소망하기 위함입니다. 소망 중에 인내하며 ‘현재의 고난’을 지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보내고서 6일간의 ‘현재의 고난’의 시기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되돌아보며 회고하며 경축하는 날이라면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로 시작된 새 창조를 경축하면서 앞으로 완성될 새 창조의 완성을 소망하며 내다보는 날입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고난주간과도 같은 ‘현재의 고난’이라는 불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우리가 지냈던 고난주간과 고난주간이 끝나고 오늘 새롭게 맞이하는 부활절은 매주 반복되는 한 주간의 일상을 특별히 부각시켜주는 한 주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우리의 구원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일상에서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고난주간에서 부활절로 이어지는 특별한 한 주간은 우리의 구원 사건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조명하는 한 주간입니다. 고난주간과 부활절이 지나고서도 우리는 동일하게 십자가와 부활의 패턴을 따라 한 주간의 일상을 지내게 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를 위한 구원 사건이요 구원의 패턴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땅에 파송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구원 열차이십니다. 탑승하는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고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인간이 되셔셔 인류의 대표로써, 그리고 둘째 아담으로써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를 위한 구원사건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라는 구원열차에 올라탐으로써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구원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예수 안에 있게 되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믿음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구원 사건에 동참하기 위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객관적인 생애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와 부활을 예수님이 체험하셨는데요,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시려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이어서 죽은 자 가운에서 예수님을 일으키신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이땅에 보내신 구원자임임을 믿는 것이요,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는 것이요, 이 모든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있게 됨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예수 안에 있게 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함으로써 죄에 대해서 죽고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새롭게 살아난다는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구원의 관건은 예수님과의 연합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땅에 보내셨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과 합해야만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핵심은 예수님과의 연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할 때에 진정한 구원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주 되신 예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시는 예수님께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연합하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고 우리처럼 몸을 취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을 굳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주되심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국 백성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약속을 굳게 붙드는 믿음으로만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예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구원 사건임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함으로써만 진정한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핵심은 오늘 본문 24절에 나오는 믿음입니다.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곧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임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 역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이 이미 죽었고 자신의 아내 사라의 몸도 역시 죽었지만 하나님은 자녀를 주실 것을 약속해주셨을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롬 4:17)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즉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우리의 믿음도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특별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예수님에게 부활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처음 창조에 깃든 죄악의 결과였던 죽음을 예수님이 떠안으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이요, 새로운 창조를 이루시고자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생명을 주셔서 그를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누구라도 새롭게 창조하시려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새 생명 가운데로 일으키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믿음으로써 생명을 얻고 구원에 이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믿음으로써 동참함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객관적인 구원 사건에 우리가 믿음으로 동참함으로써 구원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을 보십시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비록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지만 만약 예수님의 죽으심으로만 구원을 이루셨다면 그것은 온전한 구원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구원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부활하셔야 했던 이유입니다. 다시 사셔야 했던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자를 보내시고 구원의 방법으로 정한 것은 예수님이셨고 우리가 올라타야 할 구원열차도 예수님이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부활하셔야 했던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인류 구원을 이루시기를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자이신 예수님과 연합함으로써만 구원 받을 수 있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아나셔야 했던 것입니다. 구원은 생명이고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처음 창조 때 지은 누적된 범죄함 때문에 예수님은 첫 창조의 죽음을 떠안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이전 것은 이렇게 청산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 지었던 죄가 이렇게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범죄함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로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생명을 얻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를 위한 구원 사건이요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믿음으로 동참함으로써만 예수 안에 있게 되는 부활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부활주일에 우리가 성찬식을 진행하는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음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서 참된 생명에 이르고 구원 받게 되듯이 우리는 성찬식에서 눈에 보이는 복음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서 그리스도의 몸을 실제로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의 구원 사건이고 우리가 믿음으로 동참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복음이지만,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찬식에서 나누어드리는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살이고 예수님의 피입니다. “이것이 내 몸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서 받으면 그리스도의 몸에 편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에 동참함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성찬식 곧 보여주는 복음의 예식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은 한층 강화되는 것이며 예수님의 생명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함이 어떻게 생생하게 이루어지는지 그 영적인 실제를 성찬식이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어떻게 예수님과의 실제적인 연합을 이루게 하는지 성찬식을 그 실제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부활주일이면서 성례주일로 지킵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우리의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므로 주님의 부활생명으로 충만하고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한 여러분의 심령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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