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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시 84편 1-12절)
우리가 예배를 시작할 때, 요한복음 4장의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는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려면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언뜻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영성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만, 영성의 정의가 사람들마다 다양합니다. 영적인 사람이란 영성을 소유한 사람이요,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씀은 진리의 영이시고 거룩한 영이신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예배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 안에서, 그리고 성령으로만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성이라는 것도 우리가 더욱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온통 성령에 이끌려 이땅을 사셨던 그리스도 예수님을 우리가 닮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바르고 신실하고 충성되게 섬기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최고의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 84편 말씀을 통해서 구약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참된 영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한 참된 영성을 어떻게 하면 소유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영성을 소유한 자가 되어서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일성 있게 읽기 위해 신학자들은 여러 도식을 내놓았습니다. 어떤 특정 주제나 관점을 가지고 신구약을 통일성 있게 바라보는 시도가 더러 있는데, 가령 우리가 설교 때 강조하여 왔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신구약의 키워드라고 주장하며 그 관점으로 신구약의 통일성을 강조하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언약’적 관점으로 연결시키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약속과 성취’의 패턴으로 신구약을 각기 대응시킵니다.
이렇게 공통점으로 엮으려는 시도 못지않게 차이점도 동일하게 강조해야 합니다. 구약의 초점은 이스라엘, 즉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들의 역사에 있는 반면에, 신약의 초점은 이방인을 포괄하는 교회에 초점이 놓여져 있는 듯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뿐인 것처럼 보이는데 반해서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언뜻 보면 큰 단절이 놓인 듯합니다.
신구약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일하게 강조하면서도 한 성경., 한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연속성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는 신약은 구약의 ‘보편화’라는 생각에 미치게 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특수한 케이스라면, 신약에 이르러 보편화된 이스라엘로 확장됩니다. 구약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약속이라면, 신약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이미 구약에서도 이스라엘을 향해 선지자 이사야는 ‘이방의 빛’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이스라엘이라는 거점도시 육성과, 그 결과로 파급효과가 주위에 미치는 방식이었던 겁니다. 즉 이스라엘을 통해 메시야를 보내시고, 그 메시야를 통해 세계 모든 민족과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구원계획을 우리는 ‘보편화’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소위 아브라함 언약인데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그에게 복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수준이 높아지면, 즉 신앙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보편화’ 현상이 뚜렷해집니다. ‘공간의 보편화’, ‘시간의 보편화’, ‘소유의 보편화’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공간의 보편화’라 함은, 가령 성전을 예를 들어봅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84편은 시인의 성전에 대한 사모함이 간절히 드러나 있는 시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절기에 맞춰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는 순례객으로 추정되는 데, 시인은 순례의 여정 중에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사모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는 성전을 향해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심지어 10절에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예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난 하나님에 대한 추억 때문에 성전을 사모하는 거겠죠.
이점이 오늘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당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추억이 있는 예배 현장을 사모하며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성전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또한 넘어서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사랑, 교회에서 만난 주님의 추억 때문에 교회를 사모하는 열심, 이것은 너무나도 본받아야 할 신앙인의 자세이지만, 여기서 머무르지 말고, ‘공간의 보편화’에 이르러야 합니다. 학생은 학교 교실이 교회와 같은 천국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주일에 교회에 오는, 그렇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월요일에 학교에 가야 합니다. 직장인에게는 직장이라는 곳이 교회와 같은 천국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월요일에 출근해야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와 같은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서 있는 곳 어느 곳에서나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이 중요합니다. 교회에 임재한 하나님, 동일하게 내 삶 속에서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그리고 내가 밟고 있는 어느 땅에서나. 우리는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만남으로 인해 파생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겁니다.
또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시간의 보편화’입니다. 오늘 시편 저자는 4절에서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고 노래합니다. “항상” 주를 찬송함이 중요합니다. 일주일에 하루만 하나님을 생각하고 예배하고 찬양하면 안됩니다. 주일은 마지노선, 영어로 bottom line입니다. 최저선입니다. 하루 하루의 삶이 주일의 삶처럼 주님을 기대하고 기뻐하고 찬양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이 찬양의 향기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삶이 곧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삶 전부가 주님의 임재 속에서 뛰놀아야 합니다. 일주일에 하루만 떼어놓고 의무 방어전을 하듯이, 교회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이제 하나님의 공동체가 함께 모여 예배한다는 기대와 감격 속에 주일에 주님께 나와 예배하는 것일 뿐입니다. 아침마다 새로운 은혜를 날마다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나날이 복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영성에 있어서 ‘항상’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 우리는 항상이 가능합니다. 진짜로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항상’이 가능합니다. ‘항상’ 예배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주일에 예배하는 겁니다.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주일에 기쁨으로 예배하는 겁니다. ‘항상’ 기도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예배당에서 머리를 숙여 기도하는 겁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고 예배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려운 시절에도 의식적으로 입에 감사를 달고 다니려고 하는 것입니다.
입술의 감사는 마음의 감사를 불러일으킵니다. 청교도 신앙인이요 목사였던 리차드 벡스터는 힘들어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다음과 같이 지혜롭게 조언합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쓰겠다고 결심하십시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지만, 기쁨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고 감사하고 찬양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자신이 받은 모든 것으로 인해 감사해야 하며,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감사와 찬양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감사하면 마음에서 감사가 일어닙니다.”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존 파이퍼 저에서 발췌)
공간의 보편화, 시간의 보편화를 우리는 ‘Anywhere, Anytim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복이 없는 신앙, 한결 같은 신앙,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삶,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자신을 내던진 삶,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어느 때든 늘 감사하고 찬양하는 복된 삶, 이는 분명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입니다. 이상이지만, 한 발짝 한 발짝 그렇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좀 뭉뚱그려서 표현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 신앙수준과 신앙경험이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은 아마 내일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이죠.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삶의 영역이 점점 하나님의 것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내 삶의 영역 중에서 하나님과 무관한 영역이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는 겁니다.
‘Anywhere, Anytime, 그리고 Anything'. ’소유물의 보편화‘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십일조 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고 아예 내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바치는 겁니다. 심지어 주께로부터 받은 새생명조차도 다시 하나님께로 되돌려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마지노선일 뿐입니다.
결국 인생이란, 사도 바울의 고백을 다시 고백하는 겁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면서 ‘어디에서나(Anywhere), 어느 때나(Anytime), 어떤 것이든(Anything)'에 자신을 내던져버린 사람은 정말 복된 사람입니다. 12절에서 시인은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고 고백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고, 아무리 어려운 공간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라도, 6절에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라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자에게는 그곳도 “많은 샘의 곳”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주나이다” 결국 우리 인생의 해답은 언제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열쇠를 쥐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알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때에 맞게 “이른 비”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때에 개입하셔서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여러 곳에서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날씨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이 구분되는 기후입니다. 보통 4월부터 9월까지 건기를 통과합니다. 강수량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10월이 되면 차츰 우기기 시작되는데 이때 처음으로 내리는 비, 곧 10월 초순에 내리는 비가 이른 비입니다. 계속 지속되던 건기가 끝나고 이른 비가 내리면 딱딱하게 굳어있던 땅이 부드러워져 땅을 갈수도 있고 씨를 뿌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 비의 은총입니다. 우기가 이렇게 지속되다가 3월이 되어 작물을 추수할 때가 이르면 열매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비가 필요한데 이때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부릅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총. 이는 하나님의 개입이며 도움이라는 인식이 이스라엘의 신앙이었습니다.
우리가 “눈물 골짜기를 통과할 때”, 이른 비를 주셔서 내 삶이 풍요로운 샘과 같은 곳이 되도록 변화시켜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바로 이른 비의 은혜입니다. 눈물 골짜기와 같은 인생길에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적절한 장소, 그리고 적절한 때, 바로 그때, 타이밍이 기가막힌 도움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부터 바로 그러한 은혜가 임합니다. 언제 그렇습니까?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의 변화, 환경의 변화를 먼저 생각합니다. 눈물 골짜기와 같은 상황이 샘이 철철 넘치는 환경으로 변화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상황을 변화시켜주신다면 하나님을 최고로, 최상으로 섬길텐데...’라고 생각합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신앙도 달라집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생각해보기도 전에 상황 탓, 환경 탓, 남 탓 등의 타령가만을 부르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쳐버립니다. “눈물 골짜기”와 같은 환경을 “샘의 곳”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개입과 이른비의 은총은 누가 풍성하게 받습니까?
5절,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가 바로 그 은총과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게됩니다. 직역배보면 주께서 힘을 주시는 사람, 마음 안에 큰 길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의역해서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라고 번역했습니다. 마음에 큰 길, 그 큰 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 하나님의 임재로 향하는 길이겠죠. 찬송가 가사처럼 비록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피곤치 않을 수 있는 것은, 상황과 환경이 나아져서 힘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는 무관하게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 도취된, 그것이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우리 존재의 힘이 되는 그런 관계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든든한 배경이나, 혹은 인간관계의 자산이나, 사람들의 인정이나, 학력이나, 좋은 배경이나, 인기나, 명예나, 소유의 넉넉함이나, 이런 것들이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힘이 되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극적으로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이른 비를 풍성하게 내려주시는 겁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에는 시원하게 뚫린 하늘길의 대로가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향해 열려진, 그곳에 닿은 대로, 바로 그 큰 길을 오가며 힘을 얻고 은혜를 얻는 바로 그러한, ‘실크로드’가 아니라 ‘시온로드’가 마음 중심에 시원하게 뚫린 하나님의 사람! 이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주께로부터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어디에 서 있든, 어느 시간 아래 있든, 무엇을 소유하고 있든, 어떤 상황, 환경에 놓여져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anywhere, anytime, anything, 왜냐하면 다른 곳이 아닌 내 마음 속에 하나님께 닿은 하늘길, 시온의 대로가 있어서 그 길 위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힘을 공급받아 메마른 땅을, 그럼에도 힘차게 걸어갈 수 있기에, 결국 바로 그 땅이 하나님의 윤택한 생명과 은혜와 샘의 곳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영성이 무엇입니까? 참된 예배자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영이신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거룩한 성령의 감동 감화를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얻어, 성령의 사람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영성의 핵심에는 ‘항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어느 때든, 어떤 상황이든, ‘항상’이 중요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입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또 고린도전서 15장 5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항상’, 이 단어를 마음에 두시고 신앙생활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이요,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요, ‘항상’ 주를 찬송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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