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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자 (골 2장 6-7절)
오늘 새해 첫주일에 주앞에 나와 예배하는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과 평강이 충만하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삶의 이정표가 될만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핵심적인 말씀입니다. 신앙의 기본과 본질을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올 한해에도 우리가 꼭 붙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다, 이 고백이 그리스도인의 최초의 신앙고백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6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생의 주인, 생명의 주인, 내 영혼의 주인, 그렇게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 주님이 보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 날마다 예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은 나의 삶의 모든 영역이 예수님에게 속했다는 고백입니다.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일터에서도, 그리고 가정에서도,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원리에서도, 내 인생의 미래까지도, 내 삶의 모든 영역이 주님의 영역이란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주님의 뜻을 분별하여 주님의 뜻대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은 우리 영혼의 주인으로서 예수님을 신뢰하고 복종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에는 늘 회개를 동반하는 믿음이 요청됩니다. 회개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돌아섬을 의미하는데요, 완전히 돌아서야 합니다. 인간의 죄에서 돌아서는 것을 뜻하는데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죄는 피조물 즉 지음 받은 자로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조물주가 되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오만이요 교만이요, 성경은 그것을 인간의 원죄라고 합니다. 원죄는 무엇을 훔치거나 미워하거나 거짓말하는 것과 같은, 개인이 저지르는 죄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이어령 선생은 말합니다. “이러한 원죄가 밑바탕에 깔려서 우리 사회 전체 시스템에 내재하고 있는 문명과 사회 자체에 죄가 있다고 봅니다. 부족한 인간이 마치 전능한 신처럼 지식과 지혜를 갖고 선악을 판단하려고 하는 그것이 바로 원죄라는 겁니다. 원죄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하며, 남을 심판하려 하니까요.” (국민일보 2021년 12월 21일)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죄인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을 수 없고 동시에 영혼의 구세주로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다, 이 신앙고백은 신앙의 시작일뿐 아니라 우리 믿음의 모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C.S. 루이스가 캠브리지대학교 채플에서 ″예수의 주되심″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뒤 한 학생이 루이스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오늘 선생님께서 예수는 본받아야 할 위대한 스승이라고 말했다면, 우리 모두는 선생님에게 박수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예수는 구세주이다 ′는 케케묵은 기독교의 교리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때 루이스는 그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정말 예수가 완벽한 모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러면 이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믿는가?″ ″그렇지요.″ ″그러면 자네에게 묻겠네. 자네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를 자네가 완전히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청년은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완전하게 따라갈 수는 없겠지요!″ ″아, 그러면 자네도 도덕적 실패를 인정하는군. 그렇다면 자네의 삶 속에서 실수가 있었고, 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아, 인정하지요″ 루이스는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모델로서의 예수가 아니네. 자네의 도덕적인 실패와 죄에서부터 자네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이신 예수가 먼저 필요하다네. 죄인에게는 도덕적인 모델로서의 예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세주로서의 예수가 필요하다네.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비로소 그분은 자네에게 도덕적인 모델이 될 수가 있다네.″ (www.onebody.org에서 발췌)
예수님을 주님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는 구세주로 우리는 믿고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 안에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본문 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뜻을 구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행하라!”, 즉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기, 예수님과 동행하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삶인지 본문 7절에서는 네 가지를 제시합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첫째,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둘째, 예수님으로 인해서 세워져가고, 셋째, 가르침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마지막으로 감사가 넘치는 삶, 이 네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리는 삶입니다. 이는 인생의 토대를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안정성과 견고함을 물질적 기반에 둘 때가 많습니다. 인적 관계에 둘 때도 많습니다. 젊음과 건강에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취와 성공에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결국에는 흔들리고 요동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다른 것들에 삶의 토대를 삶는 인생은 결국에는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 때문이라고 이어령 선생은 말합니다.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이 있다고 쳐봅시다. 성공해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기업인, 세계 모든 것을 알게 된 과학자, 모든 것을 성취한 이들도 알지 못하는 것, 바로 죽음이에요. 세상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다 죽었어요. 그들 중에 죽음이 뭔지 알고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이 두렵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면 종교는 없을 것이에요. 하지만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 종교의 이름이 무엇이라도 마지막 질문은 죽음에 관한 것이 될 것입니다.” (국민일보 2021.12.22.)
예수님에게 뿌리를 박고 뿌리를 내리는 인생만 영원한 거처에 닻을 내리고 정박한 배와 같은, 삶의 견고한 안정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인생의 항해에서 끊임없이 파도에 따라 요동하고 표류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 거하면 견고한 토대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만이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부활의 첫열매이시오 부활의 보증이셔서 우리 죽을 몸을 살리실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새해에 더욱더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둘째,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란, 다시 말해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뿌리를 예수님께 박을 뿐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식물이 자라듯이, 건축물이 세워져올라가듯이 그렇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신앙이 자라나고 인격이 자라나고 소망이 자라나고 인생을 통달해가는 것입니다. 오늘이 주어진 이유는 어제보다 성장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내일이 주어지게 된다면 내일이 주어지는 이유 또한 오늘보다 성장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새해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가고 성경을 알아가고 인생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도록 성장해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서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는 성장해서 더 이상 어린 아이와 같이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곽선희목사님의 설교집에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에 관한 설교에서 그는 미국의 부흥사 무디 목사님이 한 말을 인용합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살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바르게 섬겼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성숙도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분은 강조합니다. “여기 ‘장성한 사람’이라는 말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어떻게 성장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성장하도록 키워가고 계십니까. 많은 환난과 시련을 통하여,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통하여, 많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하여 우리는 성장해갑니다. 평안하고 안일한 가운데서 성장할 수는 없습니다. 비바람을 많이 맞는 나무라야 튼튼한 나무가 됩니다. 인격은 많은 환난과 시련을 겪음으로 높은 수준의 성장을 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크게 성장한 사람은 유치한 것을 버린다 하였습니다. 큰 것을 발견한 사람, 참사랑을 발견한 사람은 모든 유치한 것으로부터 벗어납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전에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다 버리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나니까 전에 소중하던 것을 분토와 같이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노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다 쉽게 내버렸다고 말씀합니다. 큰 것, 소중한 것을 깨닫고 나면 시시한 것은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 <지식을 버린 자의 미로> (곽선희 저, 17-18쪽)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린 식물처럼, 예수님의 터 위에 세워진 건축물처럼,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한 층이 더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과 다르게 내일은 더욱 아름답게 성장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그 중심성이 더욱 견고해지고 성장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 다시 말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이란 첫째는 인생의 토대, 무엇이 견고한 토대이며 진정한 인생의 안정성인가의 문제였다면, 즉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리고 뿌리를 박으라는 것이었다면, 둘째는 인생의 성장, 그리스도 안에서 세움을 받고 세워져가는 것에 관해서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믿는 것이란 믿는 것을 아는 것이고 믿는 것을 행하는 것, 행하는 것이 진정 믿는 것이며, 즉 가르침을 받은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한결같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충성됨이요 그리스도를 향한 온전한 헌신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영국 성공회의 총 본산이요 성공회 수장은 켄터베리 대주교입니다. 켄터베리라는 영국 남부의 지역의 교구를 책임지면서 전 세계 영국 성공회를 관장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켄더베리 교회에 니콜라이라는 집사가 있었습니다. 열 일곱 살에 교회를 관리하는 사찰집사가 되어 평생을 교회 청소와 심부름을 했습니다. 그는 교회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맡은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그가 하는 일 중에는 시간에 맞춰 교회 종탑의 종을 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 종을 얼마나 정확하게 쳤든지 런던 시민들은 도리어 자기 시계를 니콜라이 집사의 종소리에 맞추었다고 합니다. 그가 그렇게 교회에 열심히 일하면서 키운 두 아들은 캠브리지와 옥스포드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두 아들이 아버지 니콜라이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이제 일 그만 하세요.” 그러나 니콜라이는 “아니야, 나는 끝까지 이 일을 해야 해.” 그는 76살까지 종을 치며 교회를 사랑하고 관리하였습니다. 그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이 그의 임종을 보려고 모였습니다. 그런데 종을 칠 시간이 되자 일어나 옷을 챙겨 입더니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가 종을 쳤습니다. 얼마간 종을 치다 종탑 아래에서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감동을 받고 영국 황실의 묘지를 그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귀족으로 대우해 주었으며 모든 상가와 시민들은 그 날 하루 일을 하지 않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심지어 유흥주점도 문을 열지 않자 자연히 그가 세상 떠난 날이 런던의 공휴일로 되었습니다. 열일곱 살 때부터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사람들에게 종을 쳤던 그가 죽은 날이 공휴일이 된 것입니다.엘리자베스 여왕시대에 수많은 성직자들이 죽었으나 황실의 묘지에 묻히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지 하찮게 보이는 예배당 종치기를 충성스럽게 한 그는 황실의 묘지에 묻히는 영광과 자기가 죽은 날이 공휴일이 되는 명예도 함께 얻었습니다.” <‘햇볕 같은 이야기’ 중에서 발췌>
사도 바울은 아들과 같이 여기는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4-15) 배우고 확신하게 된 말씀, 그 말씀에 따라 세워진 신념, 그 믿음과 신념에 따라 확신한 바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확신하고 있는 진리에 따라 그 진리를 붙들고 끝까지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그리스도를 위해서 끝까지 헌신하고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확신한 바를 실행하고 그 진리 안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행하는 삶,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감사함이 넘치는 삶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삶입니다. 감사로 가득한 입술이요 감사로 가득한 인생입니다. 늘 감사하는 것입니다. 평생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부활의 소망이 있으니까 감사,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 환난 중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감사, 늘 감사가 넘치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어령 선생은 라틴어로 된 3대 명구를 말합니다: ‘메멘토 모리’ 곧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제국 때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국에 돌아오는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 옆에서 해골을 들고 있는 노예가 장군의 귓속에 계속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고 속삭였다고 하죠. 그만큼 중요한 진리죠. 죽음을 기억하라는 게. 특별히 승리의 순간에 영광의 순간에 잊어버리기 쉬우니까 더욱 붙들어야 할 명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카르페 디엠’ 곧 현재를 붙잡으라,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기회를 잘 붙드라는 것이죠. 하여튼 아무리 미래를 위한 것이라도 현재를 희생하면서까지 그러지 말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모르 파티’ 곧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재능,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것들을 먼저 사랑하고, 그리고 그 현실에서 현실을 극복할 방법들을 찾아내야겠죠. ‘아모르 파티’는 자족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자족이요 우선 감사입니다. 그리고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요 꿈을 꾸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차원에서 감사하는 정도로 그치지 말고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입니다. 늘 감사, 감사가 넘치는 삶이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 하나님을 믿으니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로서 늘 감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해를 맞이하는 첫 주일에 신앙의 기본과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인생의 주님이요 구원하여 주시는 구세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은 사람들의 이후의 삶 역시 예수님 안에서 행하는 것,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크게 네 가지로 제시됩니다. 가장 먼저는 예수님께 뿌리를 박는 인생입니다. 삶의 토대와 안정성을 오직 예수님께 두는 인생입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 안에서 계속적으로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인격과 믿음의 성장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을 받은 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믿는 것을 행하는 것이요 행하되 끝까지 진리의 말씀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한결같이 충성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감사가 넘치는 삶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감사가 넘치는 삶입니다.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생각하면 감사하게 됩니다. 새해에도 이러한 것들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시는, 예수님과 동행하시는, 생명 되시는 예수님과 더욱 깊은 교제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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