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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19일 동산교회 주일 설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계 12장 1-6절)
돌아오는 토요일은 이땅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절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셔서 아기로 태어나신 날을 축하하는 성탄절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인간이 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실 수 없었을 겁니다. 성탄을 앞둔 오늘 주일예배에 참여하시는 여러분의 심령에 성탄의 기쁨과 소망이 충만하게 넘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어떻게 오셨는가에 대해서 신약성경은 다양하게 예수님의 오심을 증거합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요셉이라는 사람과 정혼한 상태였던 마리아라는 여인을 통해서 예수님이 출생하셨음을 증거합니다. 특별히 마태복음은 성령으로 잉태되신 아기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에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이 강조됩니다. 사도 바울 서신에서는 하나님이 때가 되었을 때 아들을 이땅에 보내셨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완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께서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겪어보셨기 때문에 우리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해주실 수 있는 분이요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계시록 본문도 여자가 낳은 아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메시야로서 이땅에 출생하신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이땅에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다른 성경 본문과는 전혀 다른점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아기로 출생하셨을 때 출생부터 엄청난 사탄의 방해와 시련과 압제와 핍박이 있었음을 증거합니다. 아이를 낳은 여자를 묘사할 때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본문 1절)고 요한은 자신이 본 여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특별히 구약 교회를 가리킵니다. 머리에 열두 별의 관을 썼다고 했는데 열 두 별의 관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가리킵니다. 특별히 ‘관’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왕노릇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해와 달과 별로 여자의 외모를 그리는 것은 여자가 빛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여자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의 교회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즉 하나님의 눈에 비친 교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2절)고 말씀합니다. 메시야 예수를 출산하기 위한 산통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산통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후손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조성하신 목적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적에 도달하기까지 이스라엘 역사는 해산의 고통으로 점철된 역사였던 것입니다. 박해로 인한 고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역사를 통해서 많은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은 메시야를 이땅에 보내시기 위해서 겪어야 했던 고난이었습니다. 한편, 용 곧 사탄은 4절에 보니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4절) 했습니다.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다는 것은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공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땅에 던져진 별들은 사탄의 속임수와 유혹에 미혹당한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해산한 아이를 삼키고자 했다는 것은 출생 직후부터 메시야를 없애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비단 출생 직후 뿐 아니라 사탄이 이후의 예수님의 전 생애 속에서 예수님을 핍박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직후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학살하려고 했던 계획, 지상 생애 동안에 끊임없이 예수님을 함정과 모함, 고난 가운데로 집어넣으려고 했던 것, 그리고 마침내 저주의 십자가로 예수님을 처형하려고 했던 것 등이 예수님을 삼키려는 사탄의 공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탄에 대해서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3절)라고 묘사합니다. 여기서 일곱 머리와 열 개의 뿔과 일곱 개의 왕관이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일곱 머리는 사탄이 소유한 지혜를, 일곱 왕관은 세상 나라의 왕권을, 열개의 뿔은 사탄의 권력을 가리킵니다. 사탄을 일컬어 에베소서에서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일컬었을 정도로 사탄은 우리의 죄로 인해서 죽음으로 왕노릇하는 존재입니다. 사탄은 여자가 낳은 아이를 삼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보좌 앞으로”(5절) 올려갔습니다. 5절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고 말씀합니다. 여자가 낳은 아들은 만국을 다스릴 메시야를 가리키고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땅에 인간으로 오신 성육신을 가리키고, 하나님이 그 아이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데려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이후 부활과 승천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높아지심을 가리킵니다. 짧게 요약한 예수님의 생애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땅에 인간으로 출생하시고 사탄의 방해와 적대 속에서도 하나님이 이땅에 보내신 사명을 다 이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는 예수님의 생애입니다. 오늘 계시록 말씀에서 ‘여자가 낳은 아들’과 그 아들에게 가해지는 사탄의 핍박은 구약 첫 성경책인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의 말씀을 상기시켜 줍니다. 잘 아시는 말씀이죠.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이 아담을 미혹하여 범죄케 한 사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야, 즉 여자가 낳은 아들과 사탄의 후손이 원수가 되어 싸울 것인데 메시야가 네 머리를 상하게 하는 치명상을 입힐 것이고, 사탄은 메시야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사탄의 세력을 궤멸했고, 사탄은 예수님을 없애려는 일관된 생각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올라가시자 사탄은 이제 교회를 향해서 집중 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광야로 도망했고 거기서 하나님이 “천 이백 육십일 동안” 여자를 보호·양육하셨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여기서 ‘천 이백 육십일’은 다니엘서에서 예언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곧 3년 6개월에 해당되는 기간으로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교회시대 혹은 신약시대를 가리킵니다. 이 기간 동안 교회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고 양육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가 광야에서 양육을 받는다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구약에서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민족도 출애굽하여 광야로 도망하여 거기서 양육과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와 같이 교회도 광야에서 믿음의 연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광야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양육하시기 위해서 예비하신 곳이 곧 광야며 광야 같은 인생길인 것입니다. 스데반이 설교에서 말했던 광야교회요 광야학교인 셈입니다. 여자는 광야에서 보호를 받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양육도 받습니다. 이상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의 내용과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전쟁과 관련해서 한 가지 교훈을 적용해보려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물질적 세계로만 구성돼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더 큰 실체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수면 위에 드러나있는 것보다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는 빙하가 더 크듯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는 보이는 현실 세계보다 더 큰 세계이고 더 큰 영향력이 미치는 곳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세계는 사탄과의 영적 싸움이 치열한 영적 전쟁터입니다. 이땅에서 예수님도 출생부터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치루셨습니다. 메시야의 백성 공동체도 예수님께서 사탄의 핍박과 압제를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광야같은 이땅에 살면서 사탄으로 인한 고난을 받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양육시켜주셔서 사탄을 이기게 해주십니다만, 우리의 영적 각성과 깨어있음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미국의 팀 캘러 목사님은 사탄에 맞서기 위한 세 가지 물음을 강조했습니다. 첫째, 적은 누구인가? 둘째, 전쟁이 일어나는 전선은 어디인가? 셋째, 이 전쟁에서 우리가 가진 최상의 방어는 무엇인가? 적은 당연히 사탄입니다. 셋째 질문 우리가 가진 최상의 방어 최상의 공격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사탄의 시험에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면 전선은 어디입니까? 사탄의 전선, 사탄의 주요 공격 지점이 어디입니까? 이분은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신 복음서의 내용을 가지고서 설명합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광야에서 시험하실 때 거듭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받기 직전에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죠. 세례받으실 때 하늘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은 세례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명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서 광야로 금식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금식기도 끝에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는데, 사탄의 공격 지점이 바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 전 예수님께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확언하셨는데도 사탄은 즉각 그 부분을 치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하나님이 예수님을 아들로 사랑하시고 능력을 주신다는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계시고 전폭적인 수용을 받고 계심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공격했듯이 우리도 동일하게 공격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땅에 오신 우리의 구원자임을 믿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을 무너뜨리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정체성, 하나님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는 정체성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우리의 정체성을 차의 엔진으로 비유합니다. 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엔진이요. 엔진이 작동해야 차가 굴러갈 수 있듯이 우리에게는 정체성이 제일로 중요한데, 우리의 정체성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엔진이 작동하려면 연료를 넣어야 하는데 좋은 연료도 있는가 하면 나쁜 연료도 있습니다. 엔진을 망가뜨리는 연료도 있습니다. 나쁜 연료는 두려움, 자신을 입증하려는 욕구, 남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려는 욕구, 자신을 무절제하게 다 표현하려는 욕구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나쁜 연료도 한동안은 우리 삶을 끌고나갈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탈진하게 되고 실망으로 끝나게 됩니다. 탈진과 실망으로 끝나지 않을 좋은 연료는 언제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우리 인생의 삶의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입니다. 이 사실을 언제나 마음에 굳게 붙들고 광야같은 인생길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탈진하지 않고 힘차게 계속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목사님이 국민일보에 쓴 좋은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인디언들의 이야기 가운데 ‘검은독수리’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검은독수리 새끼 한 마리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들곰 새끼들 틈에 넣어 두었다. 독수리 새끼는 들곰처럼 멀리 날지도 못하고 매일 흙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어느 날 하늘을 보니 검은독수리가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들곰이 말했다. “너는 꿈도 꾸지 마, 넌 저런 멋있는 새가 될 수 없어.” 검은독수리는 자신이 하늘을 날아볼 생각조차 못하고 들곰처럼 살다가 들곰만큼 날다가 죽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을 움직인다. 그러므로 생각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내 생각 속에 나를 가두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포기하면서 사는 사람을 볼 때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영적으로 높이높이 날 수 있는 엄청난 존재임에도 자신이 처한 환경만 바라보고 검은독수리 새끼처럼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육체적으로만 산다면 결국 검은독수리처럼 한 번 날아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설동욱목사 (국민일보에서 발췌) 우리의 분명한 정체성을 사탄은 흔들어놓으려 합니다. 우리의 분명한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이 바로 성육신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여자가 낳은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인간이 되어 오심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탄절을 기뻐해야 할 이유입니다. 성탄절에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부름을 받았다는 감격과 기쁨이 성탄절에 더욱 흘러넘쳐야 할 이유입니다. 인간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러 이땅에 오신 예수님이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고 장차 이땅에 다시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켜주실 것을 기대하는 소망이 성탄절에 더욱 넘쳐야 합니다. 다가오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러한 기쁨과 소망이 여러분의 심령에 충만하게 흘러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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