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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5일 동산교회 주일 설교
하나님이 세우시는 집 (시 127,128편)
가정은 매우 소박하지만 인간 행복의 주된 요소입니다. 가정은 분명 소박한 행복입니다만 가정을 빼고 인간의 행복을 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느 사회나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고 나라가 건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이 사회의 기초임을 인정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바로 그 뜻일 것입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잘돼야 만사가 잘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이토록 소중한 가정이지만 가정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소박함이 가정을 소박하다고 느껴지게 만들어서 가정을 소홀히여기고 성공을 추구하던 시대도 있었고 가정 중심의 사람이 작게 느껴지게 만들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가정을 세우고 가정을 지키고 가정을 유지하는데 비용과 희생이 많이 드니까 아예 포기하는 젊은이들도 생겨났고, 바람은 있으나 현실적 여건이 어려워 가정을 이룰 꿈도 꾸지 못하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2020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가구수가 664만 3,354가구로서 비율이 31.7%에 이르렀습니다.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와 가정의 파괴와 이혼 증가, 특별히 황혼 이혼의 증가와 수명 연장과 고령화 등으로 인해서 1인가구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가정이 행복의 주된 요소였을 뿐 아니라 대가족 가정 체제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망이었습니다. 반면 오늘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법률과 치안과 경제적 안정과 의료 발달과 건강보험체계가 고대 이스라엘의 가정의 역할을 대체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이 전세계적인 유행병, 코로나의 창궐로 입증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고대 이스라엘보다 보다 안전한 체계가 구축되었다고 생각되던 현대사회 역시 여전히 전염병에 취약하고 자연재해와 인재(人災)에 취약하고 불안정한 체제임을 우리는 오늘 코로나 시대에 여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27편과 128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관건이요 우리 인생의 참된 복임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이 있는 인생이어야 헛된 인생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성취가 없는 헛된 인생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으시면 아무리 세우려 해도 세워지지 않는 게 인생입니다. 127편과 128편은 내용적으로 이어지고 표현면에서도 두 시편을 함께 읽을 수 있는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데요 특별히 127편 마지막 절 5절은 “복되도다”(원어로는 “복있는 사람”)으로 시작합니다. “복있는 사람이란...” 즉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28편을 시작할 때 그 ‘복있는’이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28편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이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다, 이렇게 응답하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127편과 128편은 복 있는 인생은 어떠한 사람인가를 다루고 있는데요, 복 있는 인생이란 가정이든 일이든 사회관계든 신앙생활이든 사회적 섬김과 봉사든 성취가 있고 열매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성취와 열매, 수고의 결실이 있어야 헛된 인생이 아닌 복된 인생입니다. 그러면 헛되지 않고 내실 있고 결실이 있는 인생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인생 다 살아놓고 헛되다 말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늘 시편 말씀은 바로 그 점을 오늘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시편 127편의 저자로 표기돼 있는 솔로몬이라는 사람은 이 비결을 알았음에도 인생을 헛되게 마감했죠. 그가 인생 말년에 썼을 것으로 여겨지는 전도서에서 인생에 대해서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거듭 탄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짙은 후회가 담긴 표현으로 생각됩니다만,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후세에게 지혜를 전달하기 위해서 전도서를 썼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헛된 인생길을 살아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따라 살라는 권면입니다. 시편 127편에서 솔로몬은 전도서의 지혜를 다시 들려주는 듯합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물론 여기 시편 1절에서 ‘헛되다’는 말과 전도서의 ‘헛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른 단어입니다만, 의미는 비슷합니다. 내실이 없고 결실이 없다는 점에서 헛되다는 것입니다. 수고를 했는데도 결실이 없고 잠자지 않고 애써서 깨어 있었는데도 임무 완수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노력한 만큼 꼭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노력과 수고가 없이 이루어질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만 노력과 수고로만 결과를 산출해내지는 못합니다. 인생이라는 건축을 해야 하는 우리 인생들이 세우고 그것을 지켜내려면 수많은 수고와 노력이 뒤따르겠죠. 남의 일이어서 그 수고와 노력을 자신의 일처럼 깨닫지 못할 뿐이지만 자신이 수고하고 노력하고 애써서 겨우 이루어가는 성취를 경험한 사람은 남의 세움에 대해서 가볍게 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속에는 얼마나 큰 수고와 땀방울과 좌절과 넘어짐과 포기와 애씀이 있었을지 우리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다른 사람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분당우리교회 이찬수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요, 이분이 교회를 개척하고서 20년 정도 되었을 때 하셨던 설교였습니다. 분당우리교회라 함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교회요, 단 기간에 큰 성장을 경험한 교회요, 그분의 아버지 역시 목회자였는데 교회에 문제가 있어서 40일 금식기도 중에 돌아가셨는데 아들이 목사가 되어서 아버지가 못 누린 은혜와 열매의 결실을 이루어가고 있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어려움 없이 큰 성장을 이룬 교회로만 대충 알고 있는데, 이분의 고백이 지난 20년간 숱한 어려움, 말도 못하는 어려움, 아마 자신의 입으로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고통과 어려움을 이야기하시는 것을 듣고 ‘그러면 그렇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쉽게 되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리 로또에 당첨이 된다 해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을 잘 지키지 못해서 인생을 망친 예를 우리는 종종 언론보도를 통해서 접하게 됩니다. 솔로몬이 무엇을 말하려는 겁니까? 우리가 세우려는 집, 인생이라는 집, 신앙생활이라는 집, 일의 성취라는 집, 행복의 기초로서의 가정, 하여튼 무슨 집이든 세워지려면 피나는 노력과 수고와 애씀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또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아니, 또 필요하다기보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의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되어버리는, 인생 전체를 헛되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그것이 없으면 어떠한 집도 세워지지 않음은 물론이고 수고가 컸던 만큼 헛되다는 미련과 후회를 크게 일으키는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적 손길과 개입이 없으면 어떠한 것도 든든하게 세워질 수 없습니다! 127편 1절이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시면 결코 집이 세워질 수 없고 하나님이 지키지 않으시면 아무리 파수꾼이 애써도 지켜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세우고 지켜내려면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과 하나님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집’은 반드시 가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집’은 도시, 성전, 왕국 등을 뜻하며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집은 가정을 포함해서 사회생활과 신앙생활 전반, 일의 성취, 인생의 세움 등을 포괄하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습니다. 물론 이어지는 논의의 강조점은 가정에 있음은 분명합니다만 가정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시편 127편 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제가 신대원 다닐 때 구약 시편을 가르쳐주셨던 김정우교수님은 이 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주께서 사랑하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여 필요한 양식을 준비하지만, 주님을 믿고 의지하므로 단잠을 잘 것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걱정근심을 버리고 단잠을 자더라도 주님께서는 그에게 필요한 것을 넉넉히 채워주실 것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 34절에 비추어서 해석할 것을 요청합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일을 하고 소득을 얻고 일의 성취를 크든 작든 경험하려면 애를 쓰고 노력해야겠죠. 일찍 일어나고 늦은 저녁까지 일해야 그나마 소득이 주어지겠죠. 노력의 당연한 결과로서 한 데나리온을 얻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비유, 마태복음 20장 말씀처럼 하루 종일 수고해서 한 데나리온을 얻을 수도 있고 고용이 늦게 되는 여러 조건을 지닌 사람의 경우에는 오후 5시에 일터에 들어가 겨우 1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한 데나리온을 얻을 수도 있겠죠. 하여튼 이 모든 소득은 결국 주인이 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누구든 수고하고 애써야만 ‘떡’을 먹게 돼 있죠. 그래서 ‘수고의 떡’이라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떡을 먹게 됨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내일 일을 염려하기보다 걱정근심 버리고 단잠을 잘 수 있음은 내일에 주실 하나님의 은총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놔두고 오늘의 괴로움과 수고는 그 날로 족하다고 여기고 내일도 동일하게 주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신뢰하면서 단잠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신앙, 즉 하나님의 손길과 개입이 관건이라는 것, 우리가 집을 세우려면 또 그 집을 지켜내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인데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신뢰함인데요, 시편 128편에서는 그러한 믿음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구체화시키고 있습니다. 128편 1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원문 순서를 따르면, ‘복 있도다’로 시작하여서 복 있는 사람이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인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란 그의 길을 걷는 자 즉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자이다, 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정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의 집을 세워주시고 그의 집을 지켜주시는 사람인데요, 그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시편 1편을 반복해서 듣게 됨을 깨닫게 됩니다. 시편 1편 1-3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서 행복한 사람의 모습을 간결하게 요약해 줍니다. 우선 나쁜 사람들의 꼬임에 따라가지 않는 사람, 죄인들이 가는 길에 함께 서지 않는 사람 ,빈정대는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으로 쉽게 번역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아니면 집이 세워질 수 없고 집을 지켜낼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요, 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을 말 그대로 하나님으로 인정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28편 2절을 보십시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손이 수고해서 먹는다는 것은 수고의 대가를 얻을 뿐만 아니라 그 얻은 것들로 인해서 누리게 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일한 보상으로서 소득을 얻을 뿐만 아니라 일의 보람과 성취를 얻고 그래서 온 집이 누리게 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이요 복 있는 사람이 누리는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해야 하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오늘 시편 말씀과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어떠한 집도 세울 수 없고,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어떠한 집도 지켜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그러한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 그래서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 이것이 믿음이요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하나님 경외심을 가진 사람이 진정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결국에는 복이 되는 복된 인생입니다. 안산제일교회 원로 목사님이신 고훈목사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시골교회를 섬기는 K목사는 교통사고 후 목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를 입었습니다. 그런 몸으로 승합차를 운전하며 먼 데 교인들을 실어와 예배드리고 또 실어다주며 교회를 25년 동안 지켜왔습니다. 어느 날 그는 주일예배 뒤 교인들을 싣고 시골길을 달리다 정신장애가 있는 무당의 손녀딸을 치었습니다. 사실은 치었다기보다 열살 된 그 아이가 뛰어들었단 말이 옳습니다. 무당 집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몸도 건강치 못한 목사가 무슨 운전을 한다고…. 기도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교회로 가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아이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더 큰 장애를 입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과 수천만원의 합의금을 준비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아이는 넉 달 만에 퇴원했습니다. 그런데 무당 할머니가 합의금을 안 받겠단답니다. 왜냐 하면 정신장애인 아이가 교통사고 후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전도된 것은 물론이고 친구들이 보상금에 쓰라고 갖다준 돈은 교육관 건축자금에 보탰습니다. K목사는 그 후로 지금까지 그곳을 지키는 가운데 기도를 계속하며 목회하고 있습니다.” (http://cyw.pe.kr/xe/index.php?category=374706&document_srl=309977&mid=a39에서 발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코로나 시절을 더 추워진 겨울과 함께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신뢰해야 합니다. 세워주실 수 있는 권능이 주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주님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시는 복된 사람이 되시므로 주님이 세우시는 집,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 주님이 세우시는 일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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