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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7일 동산교회 주일 설교
하나님의 가족 (막 3:31-35)
일상으로의 단계적 회복, ‘위드 코로나’로의 방역정책의 전환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11월 첫째 주일입니다. 최근에 또다시 확진자 수가 증가해서 우려도 있습니다만, 그만큼 일상이 소중하기에 코로나 극복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긴 코로나 기간을 통과하면서 심각하게 물은 질문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상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두려워하는가? 이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본질적 질문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진정한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 성도의 교제는 어떻게 나누는 교제일까? 등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종종 해보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추구하게 된 본질적 물음입니다.
싱글레이 퍼거슨이라는 신학자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이 열 세 편의 서신을 교회들에게 보냈다고 말합니다.그는 바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얻게 되는 복을 다음 일곱 가지로 정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및 교제, 죄의 용서, 과거의 실패에 대한 죄책감 및 수치심의 해소, 죄의 지배 및 어둠의 권세로부터 구원,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며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 영생의 확실한 소망, 예수님처럼 되기를 바라는 새로운 갈망. (<우리가 교회다>, 싱글레어 퍼거슨 저, 56-7쪽) 이것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죄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한 가족을 이루어 맏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해가는 것, 이것이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적 신앙이라 할 수 있는 소위 ‘그리스도 사건’, ‘그리스도의 사건’이라 함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십자가, 인류 역사상 누구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는데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 그리고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 승천,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교회뿐 아니라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그리스도가 대행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과 진행. 이러한 소위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셨던 일은 무엇이고, 무엇을 하시려고 하셨던 것인가, 등의 질문도 해봅니다.
물론 우리를 사랑하심이고 그래서 우리를 구원해주심, 그리스도 사건은 우리에게는 소위 구원 사건입니다. 구원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분을 믿고 그분을 힘입어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교회로써 무엇을 하시려는 걸까요? 이땅에 오신 예수님의 비전은 무엇이었을까요? 교회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인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비전은 교회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사복음서에서 교회란 단어는 단 두 곳만 나옵니다. 마태복음 16장과 18장인데요, 중요성은 단연 16장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자신의 교회를 세울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술에서 직접 나온 교회에 대한 진술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은 단 한번 뿐이지만 그 중요성은 횟수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은 예수님이 세우시겠다는 교회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곳곳에 세웠고, 오늘에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의 교회로 집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헬라어는 ‘에클레시아’인데요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 ‘에클레시아’는 거의 ‘카할’이라는 히브리어를 번역한 단어였습니다. ‘카할’이라는 단어의 뜻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집합이나 모임 혹은 회중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교회 곧 ‘에클레시아’는 세속 헬라어의 의미(정치적 결사체로서 민회나 집회 등)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예수님에게로 모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예수님의 신부 공동체요 예수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라가는 제자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려는 예수님의 비전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이 친히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려는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교회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으로서 모이게 하시려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새로운 가족을 조성하고자 함입니다.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의 모임, 예수님을 하나님의 맏아들로 세우고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자매로서 맏아들을 닮아가므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 한 가족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서로 주고받음으로 사랑으로 굳게 결속하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새롭게 창조하시려는 것이 예수님이 교회를 통해서 내다보신 비전이요 꿈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족은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일 것입니다. 가족이 우리 곁을 먼저 떠나는 것이 그토록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유입니다. 편하고 친밀하고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함께 함이 너무 자연스럽고 가족을 위한 생각과 기도가 가장 앞서게 만드는, 바로 가족입니다. 우리의 가족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하고서 이루어집니다. 자녀를 선물로 받아 부모 자녀로서 이루어집니다. 자녀들은 형제자매를 이룹니다.
이러한 가족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가정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해체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마가복음 12장 25절입니다.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한 개인으로서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재하게 될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혈연관계를 뛰어넘어 모두가 서로 형제자매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새로운 가족을 이루게 되는데요, 그 가족이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리고 아버지의 맏아들이신 아들 예수님을 맏형으로서 닮아가고 따라가는 형제자매 공동체, 아버지와 아들을 사랑으로 연합시키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 되고 형제자매가 하나 되는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형제자매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만나려고 했는데 예수님 주위에 둘러싼 무리로 인해서 밖에 있는 채로 예수님께 보고가 들어간 모양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3-35절)고 말씀하십니다.
나사렛에서 이곳 가버나움까지 예수님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자매에게 다소 매몰차게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낯설어보입니다만 마가복음 맥락에서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당시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래서 찾아온 이유도 예수님을 집으로 데려오려는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1절에 보면,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붙든다’는 말은 체포하다는 뜻입니다. 헤롯이 세례요한을 체포하고 감옥에 가뒀는데 그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집에 데려올 생각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매몰찬 반응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했다기보다 가족에 대한 본질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가족, 영원한 가족, 종말론적 공동체는 혈연 중심의 가족을 탈피해서, 그러한 가족은 이땅에서뿐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해체될 것이고, 이땅에서의 가족은 영원한 실체인 참된 가족 하나님의 가족을 가리킬 뿐이고, 이땅에서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은 가정을 통해서 진정한 가정, 하나님의 가족에서의 친밀한 사랑을 연습하고 훈련하려는 것이었음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정한 가족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형제자매입니다. 가족 간의 친밀한 사랑,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친밀한 가족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진정한 가족애, 형제자매애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실현해가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닮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 사랑, 서로를 섬기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공동체, 이로써 함께 복을 누리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행복해지는 사랑의 공동체, 친밀한 가족 공동체를 이루라고 우리를 한 교회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어제 라디오 극동방송을 운전하다가 들었는데요, 한 성도의 간증이 나왔습니다. 이분이 불교 집안 출신이고 시집 온 남편 집안도 불교 집안 출신인데 아이들이 먼저 교회에 나가게 되고서 이분도 자녀 친구 엄마의 전도 받고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이후 복음으로 변화된 분입니다. 네 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인데 큰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둘이 사춘기가 찾아왔는데, 둘 다 엄마 말을 너무 안들어서 속상하고 힘들어하던 때에, 극동방송에서 한 목사님의 자녀양육에 관한 특강을 들었는데, 그분이 하신 말씀이 자녀를 부모의 소유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자녀는 하나님이 부모에게 잠시 기르라고 맡기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에 회개가 되더라는 겁니다. 회개를 하고나니까 자녀들을 대할 때 좀더 여유있어지고 자녀들도 엄마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그렇게 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영원할 것같은 배우자와의 사랑도 잠깐이요 이땅에서뿐이고 애지중지 기르는 자녀들도 마치 내 것인양 ‘내 새끼’하고 기르지만 자녀들 역시 진정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우리의 가정도 잠깐이면 해체되고서 진정한 가족, 영원한 가족이 드러날 것인데 그 가족이 바로 하나님의 가족, 우리 모두가 형제자매로서 이루어진 형제자매공동체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고 예수님께서 이루시려는 교회를 향한 꿈과 비전이라면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 교회가 진정 가족의 친밀함과 사랑으로 형제자매공동체를 이루고 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과연 우리 교회에 가족 문화라는 게 있는가? 가족인가? 아니면 주고 받는 거래의 관계인가? 사랑과 섬김의 관계인가 아니면 무관심인가? 사랑보다는 정죄와 판단인가? 사랑보다는 미움과 싫음인가? 나는 확실히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인 동산교회에 소속되어 있는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의 뜻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말미암아 새 창조함을 받아 새로워진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 각자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결정적입니다. 아울러 우리 자신처럼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인해서 새 창조를 경험한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 또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뚜렷한 정체성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동산교회 멤버십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동산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한 가족 구성원이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구성원들을 가족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실버세대는 우리의 부모님이고, 다음세대 교회학교는 우리의 자녀들로서 생각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부모님을 위한 기도, 교회의 자녀들을 위한 기도는 있습니까? 남녀전도회는 형제자매공동체입니까? 어떠한 소그룹 모임이든 한 분 아버지의 자녀로서 형제자매 사랑으로 모입니까? 코로나 시절에 모이지 못하고 있는 구역 소그룹, 지역별 세대별 모임은 가족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모이기를 귀찮아하고 무관심한 모임, 아예 모이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서 가족 공동체를 이루시려는 게 그분의 비전이요 예수님의 꿈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무슨 유익을 취하려고만 생각하지 가족을 이루려는 생각은 아마 꿈에도 해보지 못했을 분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의 꿈,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친밀한 형제자매 공동체가 되므로 하나님의 꿈, 예수님의 비전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9-2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이라’, the Family of God입니다.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우리는 형제자매가 되어서 함께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준비되어가고 있고 자라나고 있습니다. 함께 지어져가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로서 함께 성장해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가장 큰 복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분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제임스 패커라는 신학자는 말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기독교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판단하고 싶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로 모신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알아보라. 만일 그 생각이 그 사람의 예배와 기도, 인생관 전체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그가 기독교를 잘 이해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가 교회다>, 싱글레어 퍼거슨 저, 26-7쪽)
우리 모두는 한 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형제자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모임과 예배는 가족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으로서 무관심하지 말고 서로 사랑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십자가 사랑, 아가페 사랑, 자기 희생적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자로서 먼저 믿음의 자녀들 서로에게 이 사랑을 나눕시다. 그리고 한 형제자매공동체로서 함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 모이기를 힘씁시다.
이러한 비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비전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때, 가족 같은 친밀함과 따뜻함이 있는 교회로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꿈을 이루어드리는,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서로의 행복으로 기뻐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우리 동산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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