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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3일 동산교회 주일 설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 (시 123:1-4)
우리 기독교에서 은혜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과 더불어서 가장 자주 듣고 자주 사용하는, 기독교의 가장 주된 특징을 나타내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인데요,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화되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종종 부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곧 은혜라고 말합니다. 즉 ‘은혜’라는 말은 고대나 지금이나 ‘선물’이라는 말로 받아들일 때 가장 근접하게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은혜는 선물입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주신 선물이 곧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선물로, 은혜로 주신 것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여러분이 없지 않고 있다는 사실, 존재자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선물입니다. 생명을 선물로 받아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니까요. 창조가 선물입니다. 호흡이 선물입니다. 살아있음이 선물입니다. 또 무엇이 있을까요? 생명이 선물이라면 가정도 선물이겠죠.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이룬 가정, 그리고 가정의 선물로 주어진 자녀들, 이렇게 이루어진 가정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원이 선물이죠. 구원은 순전히 은혜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추구하지도 못하고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순전히 은혜로, 거저 선물로 주신 구원입니다.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해주신 구원의 은혜요 구원이라는 선물입니다. 우리 각자 구원이 선물이라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이렇게 모인 교회도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피흘려 사셔서 머리로서 다스리시는 교회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렇듯 우리 삶은 은혜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로 주어진 인생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23편의 시편 저자도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여러차례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하나님께 선물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님께 미리 말해두는 거예요. 몇 달 후에 혹은 며칠 후에 자신의 생일이 되면 무엇 무엇을 선물로 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구하는 선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선물을 달라고는 하지 않지만,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은혜를 달라고, 곧 선물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녀니까 아빠에게 선물 달라고 미리 요청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만, 우리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선물 달라고 하면 그것은 구걸이 되겠죠.
보통 선물이라고 하면 선물을 주는 사람이 선물을 받는 누군가에게 주기를 기뻐해서 선물을 골라서 주는 겁니다. 선물 받는 사람이 이런 선물을 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자녀들은 부모에게 기꺼이 선물을 요청하기도 합니다만, 선물을 주는 부모가 들어줄 수도 있고 형편이 안돼서 들어주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입니다. 주는 사람이 선물을 결정해서 주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은혜도 그래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뭘 콕 집어서 달라고 하기보다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특정하지 않고 선물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우리가 늘상 기도해야 할 제목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소서”입니다. 이것은 상황과 관계없이 피조물로서 그리고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께 드려야 할 마땅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에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늘상 하나님께 선물 달라고 간청해야 할 입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이러한 우리의 입장, 우리의 처지,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바로 알고 드리는 기도의 본령이요 겸손한 기도요 최고의 기도요 늘상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라는 기도는 피조물로서 창조주에게 드리는 아주 적절한 기도입니다. 우리의 위치와 처지를 바로 깨닫고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란 것은 더 이상 자신 안에 갇혀 있지 않기로 결단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선물을 구하는 기도는 기도의 본령에 속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꼭 기도해야 할 본질적인 내용입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63세에 소천하셨는데요, 그가 임종했을 때 그의 책상에는 죽음을 앞두고 그가 써놓은 쪽지가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거지입니다. 이 말은 참됩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한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그리고 진짜로 거지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 앞에 어떠한 자세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간주하고 있습니까? 본문 2절을 보십시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편 저자는 자신을 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심지어 남종보다도 더욱 비천한 여종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주인의 손길만을 바라본다고 고백합니다. 종에게 주인의 손길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종이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주인의 손길이란 종에게 무엇을 가리킬까요? 자신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는 손길일 수도 있고요, 형벌을 혹은 매질을 그치게 하는 손길이기도 하고요, 주인이 내리는 명령을 금세 캐치하기 위해서, 즉 주인의 지극히 작은 몸짓에도 주목하기 위해서 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종은 주인에게 자신의 소원을 감히 말할 수도 없고, 주인이 알아서 베풀어주는 대로 받아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자신을 정당하게 대접해주지 않았다고 불평조차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도 자신이 발언하기보다 주인이 자신을 변호하고 옹호해주기를 기다려야 했던 존재가 바로 종이었습니다. 이처럼 종의 생사여탈권이 주인에게 달려 있었고, 종의 모든 필요와 명예가 주인에게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은 오직 주인의 손, 주인의 배려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눈길이 주인의 손에 쏠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늘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때, 오직 하나님의 선물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지녀야 할 바른 자세와 태도입니다. 우리는 종입니다. 우리는 거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관대한 처분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오직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종임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신약에 이르면, 주님께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기도는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로 종종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나오실 때 수많은 군중 가운데서 예수님께 소리쳤던 눈 못보는 맹인이요 구걸하는 거지였던 바디메오입니다. 그는 눈을 못보았기 때문에 오늘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들리는 말을 들었는데 나사렛 사람 예수시란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소문으로 알고 있었던 바디메오는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임을 포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 소리를 질러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막 10:47) 큰 소리를 지르자 많은 사람들이 맹인 주제에 거지 주제에 하면서 그를 제지했습니다. 조용하라는 것이겠죠. 바디메오는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서 눈을 뜰 수 있는 최고의 기회, 예수님께 받을 수 있는 자신의 인생의 최고의 선물을 받을 절호의 기회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 크게 소리질렀습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막 10:48) 거지이자 눈 못보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름으로써 그분을 메시야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바로 깨닫고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시편 저자가 자신을 종으로 비하시키고서까지, 그리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해드리고서, 오직 자신은 하나님의 관대한 처분에 내맡긴 채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한 것과 다르지 않은 기도입니다. 바디메오 역시 오직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고 거지로서 또 눈 못보는 자로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나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나 오로지 주님의 자비와 긍휼에 의존하는 기도로서 같은 기도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바디메오를 주목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호소해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할 때, 그리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할 때 주님은 우리를 주목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메오를 부르셨죠. 소리치는 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디메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고 바디메오는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막 10:51)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메오의 믿음을 보시고 즉각적으로 선포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막 10:52)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기도는 ‘불쌍히 여겨주소서’라는 기도와 본질이 같은 기도요 기도의 본령에 가장 충실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인생이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과 그분의 처분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고 오직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선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요 오직 은혜뿐임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그 일반적인 간구를 들으시는 주님은 더욱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다시 말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선물을 주기를 원하느냐”고 응답해주시면서 또한 더욱 구체적인 간구를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가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하는 맥락은 무엇입니까? 그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선물을 요청하고 있습니까? 이 상황을 들여다보면 구체적으로 무슨 선물을 생각하고 있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어떠한 도움의 선물을 구하고 있는지 우리가 추측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3-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하나님께 구하는 선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추측해볼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멸시, 심한 멸시, 비웃음과 조롱을 시편 저자가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어떤 이유로 멸시요 비웃음이요 조롱일까요? 아마 하나님 때문일 겁니다. 믿음 때문일 겁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일 겁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일 겁니다. 악한 세상에서 선하게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일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 시편 저자가 이러한 상황에서 구하는 은혜,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신앙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고 요새 시대에 아직도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유물과 같은 존재로 비웃을 때, 조롱할 때, 하나님을 구하기보다 어떻게 머리를 써서 일확천금을 노릴 것인가를 도모하는 이때,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고자 하는 선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삶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 비웃음과 멸시와 무시와 신앙에 대한 조롱을 들으면서 우리 영혼은 마음이 상하고 참담함까지 느끼고, 때때로 믿음에 대한 회의에 빠지기까지 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종의 심정으로 여종의 심정으로 주인이신 하나님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보는 것은 손을 들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행동하심과 나타나심, 그분의 영광이 우리 눈에 보여지는 그러한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배 때 임한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의 상한 심령을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해주시는 손길이 아닐까요? 무신론적 경향과 분위기가 가득한 세상에서, 그래서 세상에서 살아갈 때 믿음을 가진 자이지만 때때로 그러한 분위기에 젖어서 하나님 없는 인생을 어느 때는 생각해보기도 하는 우리에게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눈에 보이도록 증거해주시고 알려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많은 사람들로 보게 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이 아닐까요?
본문 1절을 보십시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그것도 아주 간절히! 종과 여종의 비통한 심정으로 절박한 마음으로 주인의 처분의 손을 간절히 바라보면서, 그러한 자세와 태도로 하늘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바라봄은 시편 121편 1-2절의 내용과 비슷하면서도 그것을 능가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눈을 들어 산을 보고서 그 산을 지으신 여호와에게로 시편 121편 저자가 나아갔다면 오늘 시편 123편 저자는 바로 직선으로 눈을 들어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오늘 시편 123편의 기도는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 구체적으로, 신앙에 대한 비웃음과 믿는 자에 대한 멸시가 가득하고 교회를 사회의 한 코너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도록 허락하는, 그것도 마음씨를 넓혀서 선대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코로나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거되고 하나님이 우리 교회 공동체와 함께하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통치가 살아있음을 교회를 통해 증거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예배 가운데 주의 영광이 나타나고, “주여, 주의 일이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던 하박국의 간구와도 일맥 상통하는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 3장 2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의 이러한 부흥을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는 하박국 2장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서 그가 드린 간구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무슨 응답을 받았기에 이후로 수년 내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눈에 띄게 나타나게 해달라고, 즉 부흥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겁니까? 하박국 2장에서 어떤 응답을 받았을까요? 그 응답은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다리다보면 비록 더디게 보일지라도 반드시 응하게 될 것이니까 이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응답이었습니다. 기다림이라는 응답을 받고서 하박국 선지자는 더욱 간절하게 이어서 또한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으로 하시는 일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도록,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부흥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 성도의 이러한 기도,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기도, 하나님의 역사가 수년 내에 나타나게 해달라는 이러한 기도는 어떻게 응답되었을까요?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간구한 기도,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과 멸시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여달라고 했던 이 기도는 어떻게 응답되었을까요? 기다리다보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응답을 듣고서 드렸던 이러한 기도는 어떻게 응답되었을까요? 구약 성도들의 이러한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은혜를 베풀어주셨을까요? 어떤 선물을 주셨을까요? 구약 성도들이 간절히 고대했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러한 구약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는 우리 인생의 최고의 선물로 응답되었던 바 그 최고의 선물이, 그 최고의 은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요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이요 하나님의 행하심의 절정이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가까이 임한 하나님나라 그 자체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은혜를 구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호소하면서 하나님께 선물을 달라고 요청하는 자세로 오늘 예배를 드릴 때에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는 무엇입니까? 이미 우리에게 임한 은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분을 더욱 알아가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그분의 신실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무한한 가치를 깨닫고 보화이신 그분에게서 풍성한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예수님께 붙들리고 헌신하여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과 합하여져서 그분이 주시는 더욱 큰 은혜를 갈망하며 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고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 늘상 하나님께 드려야 할 기도는 무엇입니까? 오늘 예배하러 나올 때 우리는 무슨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의존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에 의지해서만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선물 달라고, 그렇게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요, 늘상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어떠한 자세로 드려야 할까요? 나는 오직 종이요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손길, 주님의 손길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존재요 영적으로 거지요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는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큰 은혜, 더욱 큰 선물, 최고의 선물을 주셨고, 또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그분께 나아가며 그분의 발앞에 엎드려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라가는 제자가 되기로 다짐함으로써 더욱 큰 은혜, 우리 인생의 최고의 선물을 누리며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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