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라인 헌금 안내 · 온라인으로 헌금하실 분은 아래 계좌를 이용해주세요. · 온라인 헌금 계좌: 9002-1882-3236-7 (MG새마을금고, 예금주 동산교회 재정수입) · 입금하실 때 이름+헌금종류를 기재해 주세요 - 예배순서 - ▶묵상기도 ▶경배찬송 - 621장 ▶성시교독 - 39. 시편 95편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송 - 623장 ▶기도 - 송재덕 장로 ▶성경봉독 - 출애굽기 15장 22~27절 ▶설교 - 인생이라는 시험 ▶찬송 - 320장 ▶봉헌기도 ▶교회소식 ▶찬송 - 635장
■2021년 9월26일 동산교회 주일 설교
인생이라는 시험 (출 15:22-27)
자녀들 보니까 학교에서 시험을 치루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풍경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도 시험을 치룹니다. 받아쓰기 시험을 봅니다. 물론 시험문제를 미리 주죠. 받아써야 할 문장을 미리 알려주고 숙제도 내줘서 몇 번씩 쓰게 한 후에 다음날에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치룹니다. 중고등학생들은 학기 중간에 중간고사 시험을 보고 학기말에 기말고사 시험을 치룹니다. 수업을 잘 들었는지, 배운 내용을 잘 숙지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해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루는 날 당일에 시험이 끝난 후 이번 시험에서 수학은 어려웠지만 국어는 평이했다 등의 난이도에 대한 해설이 뒤따릅니다. 수험생이 시험을 볼 때 잘 못보았다고 좌절했다가도 이번 수능 시험이 어려웠다는 평가가 나오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합니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 모두 어려웠겠지, 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의외로 잘 보았을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변별력이 있으려면 시험의 난이도가 있어야겠죠. 어렵게 출제된 문제라야 실력을 잘 가려낼 수 있겠죠. 시험은 그래서 어렵게 출제될 때 시험다운 겁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생들을 시험하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이 출제하시는 시험은 시련이라는 다소 변별력 있게 어려운 문제로 출제됩니다. 시험이 시련으로 측정될 때가 많습니다. 인생에 어려움이 닥치고 시련이 몰아치는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시험 곧 Testing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믿음의 실력이 100점인지 아니면 50점인지, 아니면 빵점인지, 시련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믿음의 우열이 드러나고 믿음에 대해서 시험평가가 냉정하게 이루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시는 시험문제는 주로 어려운 인생의 시련을 허락하셔서 그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는지, 대학수능시험이 사지선다 혹은 오지선다 주로 객관식 문항이듯이 하나님이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지켜보시는 시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그것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할 것인지, 즉 그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의 시험을 통과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 아니면 시험에 떨어질 것인지, 시험 결과가 말해줄 겁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광야 같은 인생길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광야체험, 출애굽 이후의 광야생활은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광야는 주로 시험을 치루는 무대인데요, 광야에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시험을 치루었고, 물론 대다수가 시험에서 낙방해서 광야에서 머물다 죽음을 맞이했죠. 반면에 시험에서 통과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에 들어갔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을 치루셨습니다. 물론 이 시험은 사탄이 넘어뜨리고 미혹시키고 유혹하는 시험이었으나 그 시험조차도 성령의 이끄심으로 광야에서 수행된 시험이었습니다.
이처럼 광야같은 인생길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시험을 치루는 사람들인데요, 이 시험은 시련이라는 혹독한 상황, 광야라는 무대 위에서 시련이라는 혹독한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하나님이 출제하신 시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죄된 욕망에 이끌려, 그리고 그 욕망을 자극하는 사탄의 미혹과 유혹에 따라 시험을 당하기도 하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든 아니면 사탄의 유혹이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시험을 치룬다는 것이요, 그 시험은 주로 시련의 맥락에서, 인생의 험한 풍파속에서 치루는 시험이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믿음으로 반응할 것인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는 시험입니다. 어떤 시험문제든 정답이 있습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인생이라는 거대한 시험을 치루는 우리에게도 시험문제에 정답이 있습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인생의 정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15장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앞으로의 광야 여정 전체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스라엘의 광야 체험은 인생 전체의 축소판이었습니다. 그 광야 전체의 축소판이 오늘 마라의 쓴 물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만 집중해서 보아도 우리 인생 전체의 시험이 무엇이고, 인생이라는 거대한 시험에서 어떻게 통과할 수 있는지를 이 작은 사건을 통해서 조망해볼 수 있는 광야생활 전체를 축소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마라의 쓴 물 사건에 대해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신 사건으로 기술합니다. 혹독한 시련에 처하게 하시고서 그들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혹독한 시련이라 함은 사흘간 광야길을 걸었는데도 물을 전혀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드디어 물을 만났는데 물이 짜고 써서 마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가혹한 상황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광야 같은 인생길이라고 하더라도 이와같은 혹독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거의 드물게 일어날 정도의 혹독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상황에서 믿음의 변별력 있는 시험을 치룬 것입니다. 믿음의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험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총 4가지 시험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이 시험에 통과하면 인생의 정답을 아는 것입니다. 이대로만 살면 인생 잘 사는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이 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출제하신 문제인데요 총 4가지 문제로서 어렵지 않은, 머리로 풀 때는 어렵지 않은, 기초 실력을 갖춘 분들이라면 누구나 정답을 선택할 수 있는 문제지만, 실제로 삶으로 실천하려고 할 때엔 실천적으로 정답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는 난이도가 제법 있는 문제입니다.
첫 번째 시험문제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혹독함, 혹은 쓰디 쓴 마라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두 개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1번. 원망과 불평 2번. 기도. 정답은? 2번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한 것은 1번이었습니다. 모세만 2번 정답을 선택했습니다. 본문 23절을 보십시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백성들은 이 상황에서 모세를 원망했고 결국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겨우 이른 오아시스였는데 마실 수 없는 물이라, 얼마나 실망이 됐겠습니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원망하고 결국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에 모세의 선택은 2번 기도였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모세는 기도를 선택했습니다. 모세는 시험에 통과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번 문제에서 틀렸습니다.
하나님이 내시는 시험 문제는 머리로 푸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식으로 정답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삶으로 정답을 살아내는 문제입니다. 이와 같은 혹독한 상황, 쓰디 쓴 상황에 여러분이 처하게 될 때 이것은 분명한 인생의 시험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내시는 시험 문제입니다. 이때 여러분은 원망과 불평, 혹은 누구누구의 탓을 하며 반응할 때가 많습니까, 아니면 조용히 기도의 자리로 그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1번 문제만 정답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인생 문제의 절반 정도는 해결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어려울 때 기도의 자리로 나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시험이 그러겠지만 하나님이 내시는 시험 문제는 시련의 상황 가운데서 믿음의 반응을 요청하는 시험문제입니다. 믿음의 시험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은 주로 원망하거나 불평합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누구누구의 탓, 심지어 하나님 탓을 하고 사람들 붙잡고 불평합니다. 반면에 믿음이 견고한 분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니까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갑니다. 이 문제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쉬우면서도 어렵죠? 정답을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두 번째 시험 문제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누구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1.다른 사람 2.자기 자신 3.하나님. 정답은 3번입니다. 요새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어보면 문제를 내는데 누구라도 정답을 맞출 수 있도록 쉽게 내던데 하나님이 내시는 시험도 쉽게 정답을 알 수 있는 시험 문제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할 때엔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어려운 인생의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아까 1번 문제에서 보았듯이 그 쓰디 쓴 인생의 고통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간다는 것이요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을 포함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을 기억해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는데 그것은 한 나무를 가리키시고 그 나무를 쓴 물에 넣었더니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꿔주신 것입니다.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여기서 ‘한 나무’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무엇을 연상시켜주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물에 관한 기적을 베풀 때 모세의 나무 지팡이를 활용하셨던 것을 떠올리게 하지 않았을까요? 가령 애굽에서 열 재앙을 내렸을 때 첫 번째 재앙, 나일강의 물을 피로 바꾸는 기적을 베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세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라고 명하셨죠. 이뿐 아니라 홍해를 건넌 기적 때에도 하나님께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려고 모세에게 지팡이를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시려고 한 나무를 지정하시고 그 나무를 물에 던지라고 하셨는데, 이 나무는 모세의 손에 들렸던 지팡이와 연관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즉 이 나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행하셨던 과거의 일을 떠올리게 하여서 지금 혹독한 시련의 상황에서도 오직 그러한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냥 쓴 물을 단 물로 바꿔주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나무를 통해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 신약의 백성들은 오늘 본문에서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된 나무를 볼 때 무엇을 떠올리게 됩니까? 나무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켜주셨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마시게 하셨는데,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온갖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실 수 있는 분이신데, 하나님은 한 나무를 사용하셔서 우리 인생에게 그러한 기적을 베풀어주셨던 바, 그 나무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우리로 생각나게 합니다.
나무에 달린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우리가 떠올릴 수만 있다면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음을 기억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고통이라는 쓴 물을 하나님께서 능히 단 물로 바꿔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8장 32절의 말씀과 같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물이 없어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과거 내 인생에게 행하셨던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십자가를 통해서 나의 모든 죄악을 해결해주신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억해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쓴 문제를 능히 해결해주실 수 있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 시험 문제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당했을 때 기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심을 기억하고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뿐 아니라 더욱 구체적으로 우리는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자신의 경험에 의지해서 해결책을 찾는다 2.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고서 대다수 사람들이 걸어간 길로 그들을 따라간다 3.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서 문제 해결의 길을 찾는다. 정답은 물론 3번이겠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마라의 쓴 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심은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신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요, 이 시험은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서 한 시험으로 제시됩니다. 25절 뒷부분을 보시면,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다가 우리가 나아가야할 인생의 방향과 삶의 지침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법령 곧 법도와, 그리고 판례 혹은 여러 가지 사례 즉 율례로써 성경에 제시해주셨습니다. 특별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쓰디 쓴 인생의 고통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더욱 말씀에 집중해서 문제 해결의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가?’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어려움이라는 시험은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붙들 수 있느냐의 시험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손해를 각오하고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할 수 있느냐의 시험입니다. 말씀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되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느냐의 믿음의 시험인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씀에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말씀에서 빛을 발견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고 말씀합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의 암흑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 발을 인도하시고 내 길을 이끄시는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과 같은 것이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늘 이 말씀을 가까이하고 배우고 익히고 적용하므로 문제 해결의 길을 성경에서 찾아가는 겁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의 원리를 따라 선택하고 말씀을 인생의 기준으로 삼고 살려고 애쓰다가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내팽겨치고 인간적 지혜와 자신의 얕은 경험에 의존해서 문제 해결의 길을 찾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인생의 시련의 때에는 더욱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끝까지 신실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느냐를 보시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시험 문제입니다. 쓰디 쓴 인생의 고통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고통의 현장 즉 마라의 쓴물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결국에 우리를 이끄실 엘림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현재의 고통에 집중해야 할까요? 아니면 고통 이후에 우리를 인도해가실 끝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신앙생활의 결국은 마라의 쓴 물이 아니라 엘림의 안식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 2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마라의 쓴 물을 지나서 아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엘림이라는 너무나 좋은 오아시스가 있음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성경의 약속은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미래와 종말은 결국은 엘림입니다. 생명수로 가득차 있어서 물 샘이 충분하고 많은 나무들이 물가에 뿌리를 내려 번성하는 엘림이 우리의 결국입니다. 마라의 쓴 물이 끝이 아니라 오아시스 엘림이 우리 인생의 끝입니다.
현실 문제에 치여서 함몰되어 한없이 깊은 늪에 빠져가는 인생이 아니라 거기서 헤어나오려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결국에 주시려고 하는 것은 마라의 쓴 물이 아니라 엘림의 오아시스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광야 같은 인생길로서 하나님의 거대한 시험을 치루는 무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시험하시는데요, 특별히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물이 없는 고통과 같은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무엇을 시험하심입니까? 우리가 그러할 때에도 원망과 불평으로 지샐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것인가, 또한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것들을 기억하고 지금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우리가 문제의 해결책을 과연 성경 말씀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에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문제 해결의 길을 발견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결국에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시험에서 다 통과하셔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땅에 이르시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0
906
0
QUICK LI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