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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9일 동산교회 주일 설교 (요한복음 강해 45)
예수님의 중보 기도 (요 17장 14-19절)
‘살아 있는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일본의 기업가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 <왜 일하는가>에 보면, 이분이 전자부품 제조업체인 교세라(교토 세라믹)를 창업하고서 어떻게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는지,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들려줍니다. 이분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은 아니지만 일을 할 때 마치 신의 소명을 받아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처럼 너무나 성실하게 치열하게 일을 한 분입니다. 교세라를 창업하기 전에 무너져가는 중소기업에 취업한 20대 초반 때일입니다.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쓰이는 전자 부품을 대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제품을 개발하는 일을 했는데 거듭 실패했습니다. 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원하는 부품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끈적끈적한 점성이 있는 물질을 첨가해야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민감한 전자 부품에 불순물이 섞이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물질을 사용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골똘히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게 됩니다. 여느 날과 같이 어떤 점성 물질을 첨가해야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실험실을 걷고 있었는데, 무언가 발에 걸려 미끄러질 뻔했습니다. 무심코 발밑을 보니 실험에 사용하던 왁스가 신발에 붙어 있었습니다. “대체 누구야! 여기에 왁스를 흘린 사람이!”라고 소리를 치려던 바로 그 순간에 머릿속에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거다!’, ‘유레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 왁스를 섞어서 제품을 만들어보았더니 완벽한 형태의 부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만들어진 그 형태를 고온으로 구우면 왁스는 모두 타버려서 부품에는 불순물이 조금도 남지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고민하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분의 표현대로 말하면 ‘신의 계시’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이분이 교세라를 세우고서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합니다: “신이 도와주고 싶어 할만큼 한결같이 일에 전념하게. 그러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분명 신은 손을 내밀 것이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네.” 이러한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자세가 오늘의 교세라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교세라를 창업한 지 10년쯤 되었을 때 당시 세계적인 컴퓨터 제조회사인 IBM으로부터 기존보다 성능이 월등히 높은 부품 제작을 주문 받았습니다. 다른 경쟁사들은 IBM이 제시한 기준의 부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내저을 때 이분은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대답하고서 제품 개발에 돌입했습니다. 당시 후발주자요 신생기업이었던 교세라는 기술력이나 시설설비에 있어서 IBM이 요구하는 부품을 만들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수주 받은 20만개의 부품을 갖은 고생을 다해 만들고 시제품을 보냈지만 20만개의 제품 모두 불량이라는 도장이 찍힌 채 되돌아왔습니다. 사내의 분위기가 ‘더 이상은 무리다!’는 생각이 지배했습니다. 개발팀 직원들의 사기가 완전히 꺾였고 불가능한 과업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홀로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있다가 퇴근하기 전에 사무실을 둘러보던 때에, 어디에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젊은 기술자가 제품을 구워내는 화로 앞에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제품이 나오지 않고, 온갖 방책을 다 써봐도 소용이 없자 허탈감에 의기소침해서 울게 된 것입니다. 경영자로서 그는 직원을 위로하면서 말했습니다: “오늘 밤은 이만 돌아가게나. 내일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봐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위로했지만 그 직원은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자네, 제품을 만들며 신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나?” 생뚱맞게 느껴진 직원은 “네?”, 이분이 이어서 말합니다: “부품이 만들어지는 순간순간 ‘잘 구워지게 해주세요’ 라고 신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냐는 말일세.” 이 말에 그의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그는 대답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는 퇴근하지 않고 다시 작업장으로 향했고, 그 다음 날부터 기술적으로 잘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을 차례차례 해결해나가기 시작했고, 다른 경쟁사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IBM이 요구하던 높은 수준의 부품을 개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분이 책에서 자신이 우연히 그 직원에게 던진 말, “신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냐”는 말을 부연 설명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 이제는 신께 빌며 천명을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자신할 만큼, 당신은 당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냈는가? 몸이 부서질 만큼 제품 하나하나에 영혼이 스며들게 했는가? 그렇게 까지 강렬하게 염원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냈을 때, 비로소 신이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다네.”
이분은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과 일본인 특유의 다신교적 종교성을 가지고서 일에 임하는 분입니다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특별히 기도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해준다고 생각됩니다. 기도는 손쉬운 해결책이 아닙니다. 특별히 간절한 기도는 자신의 힘을 다해 수고한 끝에 한계에 도달하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나오는 게 바로 간절한 기도입니다.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있으려면 우선 본인 자신이 최선을 노력을 다해야 하고 한계를 절감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누군가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원하는 기도 응답을 받으면 기도해주신 덕분이라고 감사의 말을 합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어서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응답해주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분명한 사실은 기도하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언제든 응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서 말씀합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의 중보 기도를 말씀합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는 얼마나 간절할까를 생각해봅니다. 로마서 8장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기도하는, 우리를 위한 간구는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시도록 드리는 기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여러 가지 인생의 어려움, 곧 ‘현재의 고난’을 통과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끝까지 이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를 때까지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믿음 안에서 효력 있게 역사하도록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반면에,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지난 주일부터 살펴보기 시작한 요한복음 17장은 교회 전통에서 흔히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불렀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을 위하여 드린 간구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곁에 있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핵심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뚜렷한 정체성, 말씀 받고 형성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속한, 그러나 세상에 파송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 감당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거룩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본문의 일관된 내용은 제자들이 세상과 구별되도록, 그러나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도록 드리는 기도입니다.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오늘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중보 기도가 무엇일까를 추측해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세상, 그러니까 코스모스, 창조주를 반역하고 돌아서서 자체의 방식으로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던 세상에 속했던 우리가 ‘아버지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그 말씀을 받게 되어 하나님께 속한 자들 곧 성도, 거룩한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그리고 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탄이 얼마나 우리를 미워하겠습니까. 자신의 소유물이 탈취당하고 빼앗김으로 인해서 우리를 향한 적대감과 미움이 생겨난 것이겠죠. 이미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고, 말씀대로 산다고 세상이 칭찬해주고 박수쳐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움과 박해와 소외가 뒤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해질수록 그리합니다.
이어지는 15절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에 들림으로써 세상을 떠나실 것이지만 제자들은 세상에 그대로 남아서 예수님을 대신해서 주어진 사명을 이루어나가야 것이니까 분명하고 뚜렷한 정체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에 남아서, 특별히 세상에 파송 받아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세상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으나 세상에서 살아가고 세상을 향해서 사명을 감당해야 하니, 우려가 되는 것이 세상에 동화되고 세상에 빠져버리고 세상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주기도문에도 거의 같은 간구가 실려 있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보다 적극적인 기도가 이어집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악에 빠지지 않고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닮아가지 않는 소극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거룩하다는 상태는 하나님께 속한 상태,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드려진 상태, 하나님이 점령한 상태, 하나님으로 충만한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이 점점 지워지고 하나님으로 가득채워져 있는 상태, 점점 하나님을 닮아가는 모습이 바로 거룩입니다.
거룩해지려면 진리의 말씀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의 말씀을 받으면 세상과 구별되고 세상과 달라지고 우리 안의 세상이 점점 지워지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짐으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보다 뚜렷한 정체성,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소속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성도로서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서 더욱 거룩함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거룩해지는 비결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적용하고 실천하고 말씀 붙들고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점점 거룩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으로 빚어져가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가는 것이고, 이것이 곧 구원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정기적으로 교회에 모여 예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바라보는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으로 채워지고 충만해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닮아가는 것이죠. 특별히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 붙잡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배가 중요하고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게 중요하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의지하며 성령과 동행함이 곧 우리의 구원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더욱 거룩에 힘쓰고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말씀을 귀담아 듣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은 우리는 다시 세상에 나아가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소속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세상에서 할 일 곧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룩함이 더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18절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보냄 받기 위해 오늘 모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예배하는 것도 거룩한 능력을 덧입기 위함인데, 세상에 가서 살아야하니까 거룩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거룩한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가다보면 세상의 미움도 받고 박해도 받고 손해도 겪고 어려움을 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 세상에 있으니까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이신, 성육신하여서 이땅에 오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를 믿고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이 보내신 진리의 영이신 성령 받고, 또한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지난 주일 설교처럼 세상 권세보다는 영생이요, 영생보다는 하나님 앎이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즉 그가 보내신 아들과의 친밀한 관계와 사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영생을 주셨다고 하셨는데, 영원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요,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와 관계와 친밀한 사귐의 관계, 곧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 우리가 동참하여 이를 영원토록 지속하는 것, 이것이 영생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목적이라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또한 거룩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 하나님의 속성으로 채워진 것, 하나님과 연합한 것! 이것이 곧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 세상에서 건짐받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강조되는 것, 다른 복음서와 비교해서 특별히 강조되는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성육신 신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원리가 구체적인 세상 한복판에 삶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세상에 나아가서 살다보면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말씀의 원리가 삶에 구현되었는지, 우리 또한 말씀의 성육신 신학대로 들은 말씀을 세상에서 살아냈는지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은 예배 후에 다시 세상에 보냄을 받고 파송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 파송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하라고 파송받는 것입니까? 우선 살라고, 거기서 일하라고 파송 받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어떠한 일이든 하나님의 새창조에 기여하는 것이라야 마지막 심판의 불, 곧 정화의 불을 통과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가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쌓은 것들은 그것이 아무리 공든 탑이라고 해도 불에 타서 없어질 지푸라기로 지어진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파송받는 것은 세상에서 살라고 세상에서 일하며 살라는 것이요, 우리의 일은 하나님의 새창조에 이바지하는 일일 것입니다. 상거래를 하든, 남의 수하에서 일을 하든, 아니면 기업을 운영하든, 아이들을 가르치든, 기업 이윤을 위해서 기여하든, 가정에서 주부로 자녀를 위해 가정을 위해 헌신하든, 아니면 저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를 목양하든 어떠한 일을 하든 오늘 설교 서두에서 말씀드린 일본의 기업가가 늘 일을 하면서 마음에 품었던 생각이나 열정과 자세, 그것보다 더욱 큰 능력을 우리는 할 수 있는 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도움과 능력을 우리는 의지하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자주 듣고 마음속에 담고 몸에 익히고 말씀의 원리가 성육신되어서, 다시 말해서 육화되어서 그것이 우리의 삶이 되는 성육신하신 예수님처럼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간절한 기도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에 가능한 것입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서 치열한 열정과 헌신적인 삶을 살아간 후에야 진정 간절한 기도가 가능해지는 이치를 깨닫고 세상에서 열심히 성실하게 치열하게 사시기를, 그럼으로써 삶이 간절한 기도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든든한 배경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최선의 노력을 다해! 결과는 내가 책임져줄게!” 이것이 우리의 든든한 배경이 되는 예수님의 중보 기도입니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중보 기도입니다.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거기서 힘을 얻고, 예수님의 중보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적실할 것인지를 믿고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당당하게 자신감 있게 치열하게 성실하게 세상에 나아가서 일하시고 살아가시고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증인된 사명을 감당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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