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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24일 동산교회 주일 설교 (요한복음 강해 31)
자유 (요 8장 28-36절)
코로나 시대에 여러 자유가 제약당하고 있습니다. 마음껏 누구와 만나는 일도 금지당하고 있고 지난 한 달 넘게 예배의 자유도 행사하지 못했다가 오늘 제한된 인원이 모여 현장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밖에 외출을 할 때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의무도 어떤 이들에게는 자유의 제한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무엇이든 마음대로 못하는 소위 코로나 시대입니다. 자유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지 못하고 살아온지 이제 만 1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좀 적응이 되십니까, 아니면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꿈꿉니다. 생존이 보장되고 나서는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 많은 돈을 벌려고 합니다. 돈이 많으면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되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속박에서도 벗어나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년이 되어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열심히 운동도 합니다. 신체적 자유를 위함입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예전에 한 카드 회사의 광고 문구가 화제가 된 적 있습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동안 자유를 희생한 채 열심히 회사에서 일해온 당신, 이제 떠나라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여행을 가서 자유롭게 돈을 쓰라는, 마음껏 카드를 긁으라는 독려의 광고 문구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여행의 자유를 행사하지 못하는 많은 분들이 답답해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는 ‘~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입니다. 무거운 부담과 짐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꿈꾸는 겁니다. 갓난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지만 가끔은 양육의 짐으로부터 벗어나고픈 마음도 들 것입니다. 갓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전체 경제에 부담이 될 정도라고 하는데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은 빚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원합니다. 늘 일을 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의 짐을 떠안고 있는 분들은 가끔은 일탈을 꿈꿉니다. 다람쥣 체바퀴 같은 직장생활을 박차고 나와서, 더 이상 시간과 사람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꿈꿀 때도 있습니다. 신체에 장애를 지닌 분들은 가끔 꿈속에서라도 몸의 기능이 온전해져서 마음껏 원하는 것들을 신체로써 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지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은 질병으로부터 자유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질병을 가끔은 병마라고도 부르지 않습니까? 요즈음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감염병의 위협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그런 날이 올지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려고 합니다. ‘~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가정을 뛰쳐나가기도 합니다. ‘~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평생 따라다니는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놀림받아왔던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외모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성형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로부터’ 벗어나기는 말 그대로 자신의 기존의 모든 옷들을 벗는 것입니다. ‘~로부터’ 벗어나기는 자신을 둘러싼 기존의 주위 환경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로부터의 자유’를 모든 영역에 걸쳐서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결국 자기 홀로 남게 되어야 끝이 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만 홀로 남게 되면 진정 자유롭게 되는 것일까요?
‘~로부터’의 자유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자유임에는 분명합니다만, 마지막에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자아의 굴레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자유가 문제가 됩니다. 자신만을 위하는, 자기 중심적인 자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태를 일컬어 성경에서 그것을 죄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중심성으로 꽉 들어찬 자아에 하나님이 들어올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소용 없습니다. 피조물이면서도 창조주를 외면할 정도로 자기 중심성에 고착이 된 상태입니다.
오직 자기만을 추구하는 자아의 굴레로부터 자유한다는 것은 결국 죄로부터의 자아의 해방을 뜻합니다.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죄에서 자유하는 것입니다.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아’라는 본연의 인간성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자유한 것입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의 뜻을 펼치고, 자아를 추구하고 실현해야 자신의 생명이 지켜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서, 자신을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는데만 온통 집중하는 뿌리 깊은 자기중심성이 인간 본연의 자아가 되어버린 것인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존재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에서 자유를 얻었다고 선언된 존재입니다.
언제 자아의 굴레에서 벗어나 죄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까? 로마서 6장에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2절)라고 표현합니다. 죄로부터 자유를 얻으려면 죽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죄인으로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으려면 몸이 결국 죽어야 합니다. 죄의 몸이 죽어야 더 이상 우리의 몸이 죄가 역사하는 통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게 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6-7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죽으신 것인데, 우리 옛사람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저 십자가 위에서 함께 못박혀 죽으므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 의롭다하심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죄인의 삶은 죽어야만 끝납니다. 죄인이 죽어버리면 죄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바로 그 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일어났다는 성경의 선포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기 전까지, 예수님을 알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은 죄에게 종노릇하던 인생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말미아아 우리가 죄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복음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예수님과 연합될 때에 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미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굽니까?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자들입니다. 죄의 본질인 자아의 굴레로부터 해방을 받은 자들입니다. 자기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진 자로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됨으로 인해서, 그 이전에는 온갖 것들이 함께 모여 결국 자기중심성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흘러가던 인생이 이제 자기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죄로부터 자유로워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에서 벗어나 이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롬 6:4)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우리 삶에서 점차 나타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시작된 새로운 삶이요,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 말씀드린 이유는 시작이 있으면 완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죄에서 벗어나 죄로부터 자유로워진 우리가 점차 그 자유를 더욱 크게 향유하게 누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자유’에 이를 때까지입니다. 로마서 8장 21절에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를 때가 있을 것인데, 바로 그날을 모든 피조물이 소망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게 될 영광의 자유에 모든 피조물이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게 될 영광의 자유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우리가 얻게 될 영광의 자유는 말 그대로 너무나 영광스런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자유에 동참하는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시작된 죄로부터의 자유가 완성이 되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는, 지를 짓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온통 거룩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영광스런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자유에 동참하게 되는 자유입니다.
자유라는 말은 하나님에게만 어울리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부자유한 것이 무엇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홀로 한 분이신 절대자 하나님께서 못하실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완전한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자유만이 완전한 자유입니다.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자유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고 선물로 또한 주시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영광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자유를 제대로 이해해야 우리가 얻었고 또한 앞으로 더욱 얻게 될 자유를 바로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자유를 더욱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유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전능자, 절대자, 일종의 유일무이한 독보적 존재로서의 자유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시지만, 과연 하나님께서 죄를 지으실 수 있을 것인가를 물으면 긍정할 수 없겠죠. 하나님의 자유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라기보다, 본성상 흘러넘치는 사랑을 위하는 자유요, 본성에 일치하는 자유로서 선을 위한 자유입니다. ‘~로부터 자유’, 혹은 ‘벗어버리는 자유’가 아니라 사랑으로 껴안는 자유요, 선을 위해 고통당하는 자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굳이 만물과 인간을 창조할 필요가 없으신 분이 인간을 창조하셔셔 고통을 껴안게 되신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으로서 사랑의 파트너로서 인간을 창조하시므로 고통을 떠안으신 것입니다. 고통의 위험부담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신대도 인간을 자신의 언약의 파트너로 삼아주셔서 언약에 있어서 불충성하고 불신실한 인간의 배신의 위험을 기꺼이 껴안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유는 다 벗어버려서 홀로 남게 되어 누리는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무거운 짐을 자처해서 짊어지는 흘러넘치는 사랑의 본성에 일치하는 자유입니다. 그러실 필요가 없으신대도 굳이 인간을 창조하신 자유요, 그러실 필요가 없으신대도 인간을 언약의 파트너, 사랑의 대상으로 정하신 자유요, 그러실 필요가 없으신대도,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악을 짊어지신 자유요, 그러실 필요가 없으신대도 인간을 위해 만물을 갱신하고 새하늘과 새땅을 조성하여주시는 자유요, 인생의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자유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어 시작된 자유인으로의 삶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자유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유로의 부르심을 입은 우리, 갈라디아서 5장 1절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처럼 이제는 죄의 종, 죄의 종노릇한데서 벗어나서,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자아로부터 진정한 해방을 받아서, 이제는 하나님의 자유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자유를 증진시켜 나가라는 것입니다. 자유를 발전시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고 자유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유, 우리가 증진시켜나아가야 할 자유, 최종적으로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할 자유, 그것은 자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서, 거룩하신 성령의 능력으로, 벗어버리고 벗어나려는 자유가 아니라 껴안고 기꺼이 짊어지려는 자유를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벗어버리고 벗어나려고 하기보다는 기꺼이 껴안고, 받아들이고 희생하고, 섬기고, 선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자유를 행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본문이 바로 지금까지 장황하게 논의한 바로 그러한 설명을 요약한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유만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자유는 결코 진정한 자유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홀로 남게 된 자유, 기존의 자리와 환경과 사람에서 벗어나서 얻게 되는 자유는 하나님의 자유와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자유는 우리의 자기중심성을 강화시켜서 결국 우리를 죄의 종으로 사로잡히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니까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 대답합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이들의 이 말도 로마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 그들에게 따져들면 진실이 희박한 말이기도 하거니와, 그럼에도 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아브라함의 자손이어서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본문 3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자유를 행사해서, 자신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들, 오직 자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강화시키고 돋보이게 하는 것들, 내가 다행히도 자유를 행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보유하고 있어서 자유를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오히려 죄 짓는 것이요, 죄를 짓는 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죄를 짓는 차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죄의 종이 되어버린다는 진실을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우리가 자유라고 착각하는 것들이 오히려 자신을 죄의 종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어서 죄가 시키는 대로 죄를 지은 것이요 또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36절)고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은 결국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를 자유롭게 만들어주시므로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만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오직 진리 안에만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자유를 행사하셨고 하나님의 자유를 누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28-29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이땅에서 완벽한 하나님의 자유를 행사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사셨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심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유를 향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든 무엇이든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유에 상응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십자가의 희 생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함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자유 곧 선을 위한 자유, 벗어나거나 벗어버리는 ‘~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기꺼이 껴안고 보듬고 짊어지는 진정한 자유를 따라 사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님을 너무나 기뻐하셨고,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충만한 교통 속에서 이땅을 사셨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자유 하나님이 누리시는 하나님의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유,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 위한 자유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본문 31-32절에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써 죄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어 자유인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자유는 어떤 일정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자유로서 ‘영광의 자유’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이 자유를 누리고 이 자유를 증진시켜 나아가야 할 책임을 떠안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자유에 동참하기까지 이러한 자유의 확산, 자유의 방향을 추구해야 할 사명을 지닌 자들입니다. 우리는 참된 진리이신 예수님에게 가서 예수님을 보고 배우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마땅히 누려야 할 존재들입니다. 이 진리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자유에 이를, 영광의 자유를 소망하며 사랑과 섬김과 희생과 나눔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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