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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13일 동산교회 설교 (주일 낮)
히든카드 (요 7장 37-39절)
요한계시록 2-3장에 걸쳐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일곱 교회는 일곱 촛대라 불립니다. 왜 교회를 촛대라고 한 것일까요? 일곱 교회 중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교회는 촛대인데 안타깝게도 촛대가 옮겨질 위기에 놓여집니다. 요한계시록 2장 4-5절에 보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교회가 분명 촛대인데, 처음 행위를 회복하지 못하면,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에베소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촛대여서 촛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촛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촛대를 옮기겠다는 것입니다.
촛대란 무엇입니까? 신약의 교회가 촛대라면 구약의 성막이나 성전도 촛대라 불립니다. 성막 기구 중 하나인 촛대를 가지고 성막 전체를 표현한 것입니다. 촛대, 다시 말해 금으로 만든 등잔대는 빛을 비추어서 성소를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등잔대에서 등불이 퍼져가므로 성소를 환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등잔대에서 퍼져가는 불빛은 성막에 임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성전에 임한 하나님의 임재요, 성령을 매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곧 참된 성전에 임한 성령의 임재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빛을 발하는 교회의 사명을 또한 가리킵니다. 세상의 빛으로서 세상을 향한 교회의 증언이며, 이 복음의 증거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케됨을 가리키는 표현이 교회가 촛대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촛대라 일컬음은 참된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에서 촛대가 옮겨진다는 것은 교회의 알맹이, 교회의 핵심이 빠지고, 그 결과 껍데기만 남고 더 이상 교회다움을 잃어버린 채 교회이기를 그친,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교회일 수 없는 껍데기로 전락할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교회다움은 결국 교회에 임하시는 성령이요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가 관건입니다. 하나님은 교회 위에 자신의 이름을 두고 하나님의 역사의 통로로 삼으시는 바, 교회를 통한 성령의 역사,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 수행, 즉 세상의 빛으로서 교회의 증언과 역할과 관련해서 교회를 촛대라 부르는 것입니다.
촛대가 옮겨지지 않고 교회가 촛대로서 계속 존재하려면, 다시 말해서 교회다움을 유지하고 계속 빛을 발하고 증언하는 공동체로서 성령의 역사의 통로가 되려면, 이는 교회의 본질을 붙들고 본질적인 사명과 기능을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빛을 발하는 것이겠죠. 다시 말해서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 본문에 의하면 다음 세가지입니다. 교회의 핵심이요 교회의 알맹이를 간직한 교회, 본질을 붙드는 교회, 교회다움을 유지하는 교회가 되려면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초막절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행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본문 37절을 보십시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교회가 계속 촛대로서 존재하려면, 교회가 교회되려면, 하나님의 임재의 빛이 끊임없이 증거되는 교회가 되려면 첫째,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목마름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목마름이 없다고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자충족적 자기 만족에 빠져서 목마름을 애써 외면하고, 다른 것들로 채워졌다는 착각 가운데 목마름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마름과 갈증이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의 복은 다 목마름의 복입니다. 교회가 교회되려면, 교회의 촛대가 옮겨지지 않으려면 이 목마름의 복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 여덟가지 복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목마른 자가 복되다!’는 선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슬퍼하며 우는 애통하는 자, 마음이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이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이러한 사람들은 참 복된 사람들인데, 근본적으로 이들에게는 목마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역시 목마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만나 인생의 해갈을 받았지만 더 큰 해갈을 목마르게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그들도 여전히 목마른 채 하나님이 약속하신 진정한 해갈을 바라보며 광야같은 인생길을 걸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주의해야 할 점은 유사 해갈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사 해갈, 거짓 해갈도 있다는 겁니다. 인생 문제의 해갈인 줄 알았는데 얼마못가 다시 목마르게 되는 잠깐의 해갈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목마름의 해갈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레미야 2장 13절에서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목말라서 생수를 찾기 위해서 웅덩이를 팠는데, 절망 끝에 나온 인간의 시도죠. 진정한 생수를 가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였다는 것입니다. 목마름에 대한 진정한 해갈을 가져다주는 생수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잠깐의 만족이요, 그래서 해갈된 줄 알았는데 마시고 나서 얼마못가 다시 목마르게 된 상태입니다. 목마름에 대한 진정한 해갈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게로 와서!”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촛대로서 계속 존재하려면, 교회가 성령의 임재로 충만하려면, 교회가 교회다움을 간직한 채 교회가 교회되려면 첫째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예수님께 끊임없이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내게로 와서!” 예수님께 집중하는 공동체! 늘 끊임없이 예수님의 주되심이 선포되고 인정되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가르쳐지고 예수님의 생애가 조명되며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 삶에서 실제적인 능력으로 나타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완전 예수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는 “그리스도를 배우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를 배우고 예수께 집중해야 합니다. 목마른 자들이라면 예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목마른 문제의 해답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진정한 해갈을 위한 웅덩이를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늘 예수님을 오매불망 찾아야 합니다. 더욱이 목마름을 느낄 때마다 즉시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을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갈증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께 집중하는 만큼만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가 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예수님께 집중된 신앙, 목마를 때마다 예수님을 찾는 성도가 될 때, 그때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서 충만하게 임재하시는 겁니다.
셋째, ‘마시라’, 마셔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되려면, 교회가 성령의 임재로 충만하려면 성도들이 목마를 때마다 예수님께 가서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마셔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의 진리, 복음의 진리, 예수님을 통해, 특별히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 자녀됨의 확신, 사죄와 은혜의 확신, 구원의 샘물을 마셔야 합니다. 이사야의 예언, 사 12장 2-3절,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우리가 목마를 때마다 예수님께로 가서 구원의 우물을 퍼올려 마셔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가서 마신다는 것은 “나를 믿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는 겁니다. 본문 38절을 보십시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님을 믿는 자란 어ᄄᅠᆫ 사람이겠습니까? 두 주 전에 ‘마음먹기가 중요합니다’라는 설교에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주되심을 받아들이고,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리라고 마음의 결단을 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에게로 나아가서 목마른 문제의 해갈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즉 마실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교회가 교회로 계속 존재하려면, 촛대로서의 교회가 계속 빛을 발하는 성령의 역사의 통로로 남아있으려면, 우리에게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목마름을 느껴야 하고 목마를 때마다 다른 데 기웃거리지 말고 예수님께로 직행해서 물을 마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만 하면 교회는 이땅에서 사라져버리는 일이 결코 없게 될 것입니다. 현 코로나 상황에서 교회가 간혹 이 사회에서 잉여인간 취급을 받는 듯하고 지탄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기도 하고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전락한 듯 보이고, 종교가 방역에 짐이 되어서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 불필요한 존재로 낙인이 찍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깊습니다만, 목마른 자에게 나눠줄 생수만 있다면 교회는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요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목마를 때마다 오히려 오직 예수님께 집중하고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고민할 때, 우리는 해갈을 얻게 될 것입니다. 목마름이 충족될 것입니다.
그러면 목마를 때 예수님을 찾아서 마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무엇보다 예배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고 예배하러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낮추어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예배할 때 생수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우울이 변하여 춤이 되고, 문제가 크게 보여 문제에 치인 인생이 크고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이것이 예배 때 목마름의 해갈을 얻는 마심입니다. 예배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나아가는 기도 또한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 목마른 목을 축이는 마심이 됩니다. 더욱이 요즘 같은 코로나 시절에 우리는 더욱 예배와 기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 초월하여 계신 영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가 제대로 수행되면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생수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배와 기도를 사모하며 예수님께로 집중할 때마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서 마실 물,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시켜주는 갈증 해소의 생수는 무엇입니까? 38-39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흘러나오는 생수, 생수의 강, 생수가 흘러넘치는 충만한 성령이십니다. 즉, 예수님께 집중하면 할수록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 성령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요, 성령의 사람이 될 때 이로써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 우리 속 깊은 곳에서부타 참된 해갈을 얻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약속도 바로 그것입니다! 목마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광야에서 반석에서 물을 내서 마시게 하신 것도, 초막절 절기를 지킬 때마다 광야의 목마른 생활을 상기하면서 절기를 지킨 것도, 광야에서 다윗이 장인 사울의 위협을 피해가며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 하나님을 목마르게 외치고 찬양했던 것도, 나라를 잃고 조국을 떠나 바벨론 포로민으로 거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오심,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가 가져다주실 기쁨의 구원, 목마름을 해갈해줄 생수를 소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진 않지만, 예수님 탄생 이백여년 전부터 초막절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을 길어 와서 제단에 물을 붓는 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출발한 행렬, 맨 앞에 제사장이 선두에 서는 긴 행렬이 실로암못까지 가서 거기서 물을 떠 항아리에 가득 담고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와서 성전 제단에 그 물을 쏟아 붓는 의식이었습니다. 이 의식은 7일간 지속되는 초막절 절기 때 매일 수행되는 의식이었습니다. 성경이 약속하는 구원의 풍요로운 새 시대를 소망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이루실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목마름을 해결시켜주실 풍성한 생수를 기대하면서, 초막절 절기 매일 제단에 풍성하게 물을 쏟아 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명절 끝, 곧 초막절 끝날에 예수님께서 그 약속이 지금 이들이 보는 지금 이 현장에서 자신에 의해서 실현되고 성취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생수의 강의 근원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보좌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창을 찔리셔서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님의 육체과 일차적으로 ‘그 배’입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에스겔 47장에서 성전 동쪽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참된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수 샘물이 나옴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십자가 죽음)을 받지 않으셔서 성령이 제자들 가운데 아직 계시지 않지만, 에스겔 47장의 예언의 환상처럼 나중에는 온몸을 뒤덮는 거대한 강물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생명으로 가득차게 해주실 것인 바, 그 생수의 강의 근원은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는 믿는 자들의 깊은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을 이차적으로 가리킵니다.
2020년과 2021년 우리 동산교회는 동일한 표어를 가지고 사역을 진행해갑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동산교회!” 여기서 생수의 강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즉 성령이 충만하여 흘러나오는 동산교회가 되는 비전입니다. 성령이 예수 믿는 자들, 우리 교회를 통해서 흘러나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을까요? 어떠한 생활혁명적 변화를 수반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온 성령이 교회를 통해서도 흘러나오려면 교회가 예수 공동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작은 예수가 될 때,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시는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도 흘러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흘러나오는 교회, 성령이 흘러나오는 성도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람일까요? 우리가 성령의 역사의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적 지침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까,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기도를 말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 기도가 우리 편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성령이 흘러나오는 예배와 기도가 됩니다. 성령이 흘러나오는 예배, 성령이 흘러나오는 기도, 그러니까 성령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 성령으로 드려지는 기도입니다.
서로를 행해서는 성도 간의 교제입니다. 성도 간의 섬김과 봉사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고 그 은사가 서로를 향해서 작동하므로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집니다. 말도 성령으로 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성령의 말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말을 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해야 합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해야 합니다. 성령이 흘러나오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흘러나오는 말은 은혜롭고, 지혜롭고, 영혼을 살리고 사람을 세워주는 말입니다. 영혼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생명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령의 생명이 말 가운데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여기서 ‘더러운 말’은 공동체를 허무는 말, 공동체에 유익이 되지 못하는 무익한 말, 폄훼하는 말, 비방하는 말 등을 가리킨다면 성령이 흘러나오는 말은 교회를 세우고 상대방에게 유익이 되는 격려와 위로의 말, 칭찬과 긍정의 말, 사랑의 소통의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죽이는 말, 허무는 말이 아니라 살리고 세우는 말입니다!
우리의 생각부터 성령의 생각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5-6절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체의 생각은 죽음이요 죽이는 생각이라면 성령의 생각은 생명이요 생명을 증진시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가져다주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생각부터 성령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말도 성령의 말, 행동도 성령의 감동을 따라 말씀 순종의 행동이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총체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이 흘러나오는 성도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교회는 촛대가 아니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면 촛대가 옮겨지게 됩니다. 촛대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의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목마르십니까? 목마르면 예수님께로! 예수님께로 나아가서 ‘마시라!’, 그러면 성령의 생수를 마셔서 진정한 인생의 해갈을 얻고, 그 성령의 생수가 흘러나오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령의 역사의 통로가 됩니다. 성령의 사람이죠. 성령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고, 성령으로 성도 간 교제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섬기고, 생각도 살리는 생각, 세우는 생각, 말도 영혼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말, 행동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말씀 순종! 이러한 신앙인의 모습이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동산교회의 비전이요, 이를 잘 정리하고 실천하는 것은 2021년의 우리의 과제요 비전입니다. 이 비전은 2020년과 동일한 비전이지만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한 발 짝 더 나아가는 비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교회를 촛대라 함은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함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촛대가 옮겨진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교회, 껍데기뿐인 교회로 전락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은 교회를 교회되게 만드는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입니다. 교회가 성령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통로가 되어야 하고,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코로나 시절에 동네북처럼 난타를 당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의 히든 카드, 우리 교회가 최후까지 쥐고 있어야 할 히든 카드, 이 히든 카드만 있다면 반전이 일어날 수 있고 교회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다시 회복될 수 있는, 다시 일어서는 힘! 오뚝이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힘, 더 이상 세상의 짐이 아니라 세상의 소망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교회의 히든 카드, 그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임재의 불로 환하게 세상을 밝히는 동산교회,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동산교회, 여러분의 배속에서부터, 여러분의 깊은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성령이 여러분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흘러나오는 작은 예수가 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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