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15일 동산교회 설교 (주일 낮)
이제는 안심하라! (행 27장 20-26절)
로드니 스타크는 워싱턴대학교 사회학 교수입니다. 이분이 <기독교의 발흥>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기원후 처음 5세기 동안 초기 기독교가 어떻게 발흥했는지 당시 사회에 깊은 관심을 품고 사회학적 이론과 분석 방법을 통해 초기 기독교의 급성장 요인을 밝히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이책에서 5세기의 기독교의 급속한 성장과 확장을 촉진한 주요한 요인 중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3-4세기에 창궐한 전염병에 걸린 모든 사람들을 돌보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교회사가 에우세비오스는 기원후 312년경 로마제국의 동부지역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기독교인들이 차별 없이 돌본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의 끝없는 열정과 헌신의 열매들이 모든 이교도들에게 명백해졌다. 이 끔찍한 재앙의 와중에 그들만이 가시적 행동을 통해 그들의 연민과 자비를 증명해보였다.” 기원후 250년경 키프로스섬에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이 기간동안 카르타고의 주교가 교인들에게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이교도들 모두에게 자비와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우리가 신자들에게만 필요한 사랑의 돌봄을 베풀어 그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거기에는 훌륭할 것이 전혀 없지만, 이교도들보다 뭔가 더 나은 일을 해서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람,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완전해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원 후 26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창궐한 전염병의 영향 하에서 당시 기독교인들이 환자들에게 베풀었던 돌봄에 관해서 디오니소스 주교가 말합니다: “우리의 형제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몸을 사리거나 서로만을 생각하지 않고 위대한 사랑과 성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위험에 개의치 않고 환자들의 보호를 떠맡아 그들의 모든 필요를 돌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섬기면서 그들과 함께 평온하고 행복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도 병에 걸린 다른 이들에 의해 감염되어 이웃의 병을 자신들의 몸에 지고 기꺼이 고통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리 펭그렌이라는 역사학자는 기독교의 원수 사랑과 박애 그리고 돌봄으로 인해 전염병 치료에서의 사회적 책임 개념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고 평가합니다. (<환대와 구원>, 조슈아 지프 저 참고) 대구 경북 지역이 신천지로 인해서 코로나19의 최대 피해 지역이 됐습니다만, 그곳 교회에게는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구 경북 지역 교회들이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 복음의 불모지인 그곳에 부흥의 꽃이 피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도 대구 경북 지역 교회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신천지 세력의 와해와 더불어 대구 경북 지역의 복음화를 촉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코로나19 전염병에 대해서 펜데믹을 선언했습니다. 펜데믹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선포하는 감염병의 최고 경고 등급으로,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일컫죠. WHO는 지난 12일에 펜데믹 선언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의 규모가 전세계적으로 급속도로 커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첫 발병 사례가 발생한 이후 70여일 만에 세계 확진자 수가 12만명을 넘어섰습니다. 확진자가 발생한 국가만 해도 118개 국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되면서 심한 '감염 불안'과 우울감에 시달리는 이들도 늘고 있습니다. 특히 확진자나 자가격리자들의 스트레스가 고조된 것은 물론 기존에 공황장애 같은 불안장애를 가진 환자들은 증세가 악화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다수는 스트레스 고위험군에 들어서 죄책감을 갖거나 동선이 공개돼 사생활 침해를 받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신상이 유출돼 욕설 문자 등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몸에 대한 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감염병 전염에 대한 불안으로 소위 '상상 코로나'가 올 수 있습니다. 발병하지도 않았는데 몸이 어디가 조금만 안좋아도 코로나에 걸린 것 아닌가 하는 불안입니다. 어느 정도 불안을 느끼는 건 정상적 반응이지만 악화하면 병적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전문의들은 감염 위기 상황에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불안, 분노, 짜증, 혐오 등의 부정적 감정과 트라우마를 '두 번째 화살'이라고 불렀습니다. 건강, 경제적 위협 등 현실적 고통은 피하기 어렵지만 2차적인 심리적 반응은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의료진들은 일반 국민들에게 소위 '심리 방역'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심리방역이란 감염위기 상황에서 효과적인 위기 의사소통과 고위험군에 대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통해 감염병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과정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안증세는 전국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최근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일상생활이 절반 이상 정지했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6명에 이르고, 코로나19 뉴스를 접할 때 떠오르는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불안’(48.8%)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심리 방역을 강화하기 위해 '코비드(COVID)19 심리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코비드19 심리지원단은 '심리 방역을 위한 마음 백신 7가지'를 제시했습니다. △격려 백신-나를 격려하기 △긍정 백신-좋은 일 하기 △실천 백신-수칙을 솔선수범 실천하기 △지식 백신-제대로 알기 △희망 백신-끝이 온다는 것을 알기 △정보 백신-도움 받는 법 알아두기 △균형 백신-이성의 균형 유지하기 등을 제시했습니다. (CBS노컷뉴스 2020.3.6.)
위기상황에서 불안과 공포는 어찌보면 인간의 자연스런 반응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27장에서 바울 역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바울이 겪고 있는 위기상황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서 해와 달과 별도 보지 못한 채 십여일에 걸쳐 배 안에서 표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서 본문 20절에 보면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고 말씀합니다.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사도행전 27장과 마지막장 28장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군대에 의해서 로마로 압송되어 가고 있는 바울을 보여줍니다. 배를 타고 호송되던 중 폭풍을 만나 배가 좌초될 위기를 겪고 표류하고 있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입니다만, 여기서 오직 바울만이 평온합니다. 276명이 타고 있는 이 배 안에는 공포와 패닉과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이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이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1-25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장을 면하였더라면...”이라고 바울이 이미 제안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 9-11절에 보면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바울은 선교사로서 곳곳에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항해에 관한 실제적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항해하기에는 적합지 않은 때임을 바울이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죄수에 불과한 신분이었을 뿐입니다. 사람들, 특히 결정권자인 로마군대의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항해를 강행했습니다.
항해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바울의 제안이 배에서 바울이 행했던 첫 번째 말이었습니다. 죄수 바울의 두 번째 말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21-25절입니다. 바울의 연설 내용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풍랑에 떠밀려 표류한지 14일이 되는 지금, 이제는 안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바울이 안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겁니까? 그가 지난 밤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로마 황제 가이사 앞에 서야 할 계획을 내가 가지고 있다. 이 배 안에 타고 있는 모든 생명을 네게 맡겼다. 한 사람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해를 받는 것은 오직 배뿐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할 때 우리는 결코 코로나19에 안 걸린다거나 걸려도 죽지 않는다거나 이렇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라기보다 중요한 것은 극심한 위기상황에서도, 큰 풍랑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요, 그래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생명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이요,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공포와 패닉이라는 여느 사람들과는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믿음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죽게 되는 그리스도인도 아마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공포와 패닉과 두려움이 아닌 죽음 앞에서도 평온, 위기 앞에서의 평안입니다. 이를 가능케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신뢰하는 믿음이요, 상황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붙드는 믿음이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맡기는 믿음인 것입니다.
어떤 분이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을 해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광풍이 클 수록 고요도 크다.고난이 클 수록 위로도 크다. 오르막이 클 수록 내리막도 크다. 상처가 클 수록, 더욱 큰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우리가 즐겨 부르고 있는, “내 평생에 가는 길”이란 찬송가는, 작사자인 스패포드(Spafford) 교수의 엄청난 비극 속에서 탄생한 찬송가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속의 욥기”라고 불립니다. 스패포드는 변호사였고 또한 법학 교수였을 뿐 아니라 무디 교회의 회계 집사였습니다.
1871년에, 이토록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에 엄청난 시련이 닥쳤습니다. 화재로 집은 불타 버리고, 재산은 전부 잿더미로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시카고 대화재로 인해서입니다. 자신의 집 뿐만 아니라, 무디 교회도, 그만 잿더미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화재로 300명 가까이 사망하고, 시카고의 9 km²에 달하는 지역이 불에 타고 10만명 이상이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화재로 인해서 스패포드의 부인은 충격으로, 화재의 커다란 충격으로 인해서, 건강이 몹시 악화되었습니다. 스패포드는 병약한 아내의 휴양을 위해서,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출발하려고, 여객선을 예약하였습니다. 스패포드는 무디 교회의 재정을 맡고 있어서 불에 탄 교회당의 재건 때문에, 그의 부인과 네 명의 딸이 먼저 여행을 떠나고, 자신은 며칠 후에 뒤따라 가기로 했습니다.
부인과 네 딸이 탄 여객선은 일주일 동안, 대서양을 순항했습니다. 그런데 새벽 2시, 모든 승객들이잠든 시간에, 여객선은 영국 선적의 화물선과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충돌을 당한 여객선은, 2백 26명의 사람을 실은 채로, 바다 속으로 침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패포드 부인은, 익사를 하기 직전에 실신한 채로, 구명정에 의해서 구조가 되었으나 4명의 딸들은 모두 익사를 당했습니다.
스패포드는 슬픔을 가득 안고 아내를 데리고 오려고, 서둘러서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가 탄 배가, 비극의 대서양 사고 지점을 지나 갈 때에, 그는 아픔과 슬픔으로 인해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사고가 난 시각과 비슷한 시각에 한참 울부짖던 스패포드에게 지금까지 일찍이 체험을 해보지 못한 평안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찾아왔습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평안을 느낀 스패포드는, 얼른 종이를 꺼내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한 마음의 상태를 기록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스패포드는 유명한 작곡가인 블리스(Bliss)에게, 자신의 찬송시를 보여 주면서, 작곡을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유명한 찬송가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스패포드가 혹독한 고통과 아픔 중에서 체험한 평안을, 세상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평안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폭풍이 없어서 평안이 아니라 폭풍 가운데서의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https://blog.naver.com/leesanginkr/221828012723)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장로는 “조국이여 안심하라”를 붙여놓고 늘 외치셨습니다. 늘 조국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조국이여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풍랑속에서 소망이 일절 없는 것같은, 표류하는 배속에서 “사람들이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뱃사람들이여, 그리고 동료 죄수여, 그리고 로마군인들이여, 276명의 모든 탑승객들이여 이제는 안심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그리고 하나님이 한 사람의 생명도 해를 받지 않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일개 죄수의 신분에 불과해서 처음 제안, 항해를 중단하자는 제안을 거부당했습니다. 누구도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죄수에 불과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서 오늘 본문에서 두 번째 연설을 합니다. 바울이 행한 연설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냥 듣고 있습니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아도 그의 말을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세 번째 연설은 사도행전 27장 31-34절에 나옵니다.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날이 새어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바울이 무엇을 제안했습니까? 섬에 가까이 온 것을 가장 먼저 알았던 사람들이 선원들이요 노를 젓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조그마한 거룻배를 내려서 도망가려고 하자 이를 눈치챈 바울이 로마 군인들에게 말해서 그것을 못하도록 끊어내라고 제안하고 군인들이 바울의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서 바울이 제대로 식사를 준비해서 하자고 제안하자 다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리더십이 위기의 순간에 인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죄수에 불과한 사람의 말이어서 바로 일축당했지만 이제는 이 배의 영적인 리더십이 공고하게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위기란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에게는 곧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의 리더십이 위기의 때에 배라는 세속사회 안에서 공고해진 것처럼 말입니다. 왜냐 그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만 진정한 믿음과 신앙,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비롯된 용기가 있었고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망 속에 피어나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통찰력과 성령의 인도하심에서 비롯된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과 공포와 패닉의 시간속에서 유독 오직 바울만이 하나님의 평안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함께 겪는 위기의 순간에 그리스도인이 다르게 반응하여, 비겁 대신 용기를, 절망 대신 소망을, 두려움 대신 평안을, 거짓소문과 가짜뉴스 대신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보여줄 수만 있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다르게 보게 될 것이요, 배속에서 리더십이 세워진 바울처럼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의 위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폭풍 속의 평온, 위기 시의 담대함, 두려움과 패닉과 공포 대신 용기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신뢰하는 믿음.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함. 두려움과 공포와 패닉이 아닌 참된 평안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276명 중 오직 바울뿐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바울에게 있는 이 믿음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믿음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고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야 믿음도 생기고, 평안도 생기고, 담대함도 생기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능력도 생깁니다. 이럴 때일수록 성경을 자주 읽고 많이 읽고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특별히 바울이 들었던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 붙잡아야 합니다.
셋째, 믿음을 가진 우리에게는 위기도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전화위복입니다! 바울은 죄수의 신분에서 구조의 총책임자처럼 리더십을 위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를 통해서도 하실 일을 하십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망, 그리스도인의 용기, 그리스도인의 리더십이 세워질 수 있습니다! 위기의 때에! 국가여 안심하라! 이제는 안심하라!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꼭 코로나가 그리스도인은 빗겨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통으로 얻어맞아도 우리는 복원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생명, 영생의 소망이 있다! 죽음의 공포를 이긴 담대한 능력!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신천지는 위축되고 복음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대구 경북지역이 부흥하게 되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는 기회입니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코로나19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드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2
2026
0
QUICK LI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