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29일 동산교회 설교 (주일 낮)
기억과 망각 (사 43:14-21)
2019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뭐든지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끝이 좋아야 다 좋은 법입니다. 이제 한해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그리고 다가오는 2020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리고 기억하고 교훈으로 간직해야할 것은 기억해야 합니다. 참 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실천이 어렵죠.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오늘 본문 말씀을 근거로 해서 우리가 한 해의 묵은 것은 털어버리고 또 간직하고 가지고 갈 것은 2020년까지 가지고 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은 일종의 종말의 하나님께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서 결산하게 될 그 날과 상응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것은 나중에 역사의 종말, 우주의 종말, 최후의 심판과 상응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 후에야 신천신지 새하늘과 새 땅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진입할 수 있겠죠. 최후의 심판을 통해서 죄를 인정하고 또 털어버릴 것은 털어버리고 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지고 들어가야 될 것은 가지고 붙잡고 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예배시간에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때에 우리에게도 필요한 지혜라고 여겨집니다. 그럼 어떻게 그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셨던 일을 기억하기를 강조합니다. 기억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억과 기념이 강조가 됩니다. 과거의 하나님이 하셨던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곱씹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어떠한 분임을 알고서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미래와 앞으로 내가 경험해야 될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실 것을 예측하고 한번 기대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을 기억해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43장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속자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주신 분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리고서 과거의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출애굽 사건을 회상시켜주십니다. 오늘 본문 16절과 17절을 보십시오. (사 43: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사 43: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셨던 일을 지금 상기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 때 바다 한복판에서 길을 내고 마른 땅처럼 건너가게 하셨던 하나님의 과거의 구원 역사를 회상해보라는 것입니다. 이 출애굽 사건을 기억해보라는 것은 교훈을 삼으라는 것이겠죠. 과거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압제받는 자들에게서 구출해주셨다, 어려움 가운데서 건져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신 그 하나님을 기억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어려웠던 시기도 있었을 거예요. 고난의 시절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난 자체를 기억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건져주신 것을 기억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거예요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기의 순간에 어려움에서부터 우리를 건져주신 이 구원을 기억해 보아야 합니다. 출애굽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우리를 구원해 주신 기적을 베푸셔서 어려움에서 건져주신 출애굽 사건조차 잊어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이어지는 18절을 보십시오. (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출애굽 사건이 굉장한 구원 사건이었고 엄청난 기적을 베푸신 사건이었어도 그것을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셨던 놀라운 기적이고 위기에서 건져주신 출애굽인데 그것을 기억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라는 것일까요?
왜 그렇습니까? 이어지는 19절을 보십시오. (사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나님께서 왜 출애굽이라는 기적과 같은 놀라운 어려움을 극복해 낸 구원사건조차도 기억하지 말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께서 이제 앞으로 행하실 일은 이전에 했던 일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이고,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들의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역사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에 출애굽 사건조차 이것을 기억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전 역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더 엄청나고도 새로운 일을 시행할 것이기 때문에 이전 경험과 이전 역사를 생각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행하실 일은 과거 출애굽 사건 때 바다를 마른 땅처럼 건너가게 한 것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방식이 될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을 이제는 홍해를 건널 때처럼 물을 갈라서 바다를 길로 만들어 건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포로민들을 이스라엘로 돌이킬 때에 광야에다가 목마른 광야에다가 길 없는 광야에다가 길을 만들고 사막에다가 물을 마실 수 없는 사막에다가 강을 내어서 그렇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이전에 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창조요 새로운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포로민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돌이킬 것이다, 그들이 돌아오는 것은 광야에 길을 내는 것이고, 사막에다가 강을 내시는 하나님의 새 창조역사로 가능케 될 것이다,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을 하나님의 백성들, 참 소망없고 낙심에 사로잡히고 포로 시간이 언제 끝날까 사로잡혀 있는 바벨론 포로민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귀환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돌이키게 할 뿐만 아니라 메마른 광야를 지나올지라도 목마르지 않도록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백성이 될 것입니다. 자 이어지는 21절을 보십시오. 20절을 먼저 보고 21절까지 보겠습니다. (사 43: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강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향 땅으로 돌이키실 터인데 그 광야 사막과 같은 곳, 그래서 목마를 수밖에 없고 물이 없는 그곳에 강을 내서 마시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새로운 백성으로 창조하시겠다는 겁니다. 이건 전혀 새로운 반전이요 예기치 못한 절망속에 소망이요 하나님이 행하실 새 창조의 역사이기 때문에 이전에 하나님이 행하셨던 놀라운 일이지만 출애굽 사건조차 기억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2019년을 생각해볼 때에 참 어려움도 많았고 고비도 많았고 헤쳐나가야될 도전도 만만치 않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어요.
그것 생각해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도 새로운 2020년은 2019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하는 2020년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창조의 역사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새 창조 역사를 기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창조 역사는 말 그대로 새로운 창조입니다. 이전의 경험과 누적된 어떤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새로운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를 때로는 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지나치게 사로잡혀서 발목 잡혀 있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과거를 때로는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나서 새롭게 미래로 나아가야 될 이유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올 한해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많이 베푸셨지만 그래서 감사할 것도 많지만 과거에 받았던 은혜를 기반으로 해서 2020년을 예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 해왔고 성장해왔기 때문에 2020년도 이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예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래의 우리에게 부어주실 더 큰 은혜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미리 예단하고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르겐 몰트만이란 신학자의 <희망의 신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분이 1964년에 <희망의 신학>을 통해서 세계적인 신학적인 반열에 올랐는데요. 이 책에서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미래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미래라는 것은 과거의 상태나 현재 상태에서 이렇게 해서 누적이 돼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에서 즉 바깥에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서 미래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 향해서 주신 약속이 새로운 가능성을 산출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를 규정하는 것이지 과거가 이렇게 돼서 오늘 내가 이렇게 살아가니까 내일이 이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이제는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서 성장해서, 그리고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진입하라고 우리를 불러주셨고 우리에게 약속해주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삶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새로운 세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제 약속으로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래서 여태까지 2019년까지 신앙생활해왔던 패턴을 가지고서 또 그것 가지고서 2020년을 예측하고 그것을 기반해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새로운 일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의 예상과 예측과 달리 우리를 놀래키는 새로운 영의 역사로 새 창조를 이루실 수 있는 분을 믿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잊어야할 것은 잊어야 합니다. 잊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이 새 창조 역사에 합류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2020년이 하나님의 새 창조 역사를 전혀 새롭게 경험하게 될 한 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잊어버려야 할 것을 어떻게 잊어버릴까, 또 간직하고 가지고 가야될 것을 어떻게 가지고 갈까,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컴퓨터가 성능이 업그레이드 되려면 용량은 똑같은데 어떤 컴퓨터가 더 속도가 빠르려면 메모리가 비어 있어야 되죠. 하드디스크의 빈 공간이 많아야 속도가 향상됩니다. 바탕화면 파일을 엄청나게 깔아놓으면 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들어요. 비워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억을 지워내야 새로운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겁니다. 뇌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억력이 좋은 게 참 좋은 것입니다만 세세한 것까지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다 기억하면 병입니다. 병이 되요. 우리 뇌는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학습을 많이 하고 많은 것을 기억하도록 뇌가 기억 창고가 이렇게 발달해 갑니다만 이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제는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기억하려면 옛 것을 지워버리고 빈공간이 되어야 새로운 정보를 우리가 입력할 수 있는 겁니다. 근데 잊지는 않고 계속 기억만 쌓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5년 전에 무엇을 했는지 이걸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 내는 사람이 수백만명 중에 몇 명 있다고 합니다. 그런 게 좋은 것 같지만 이게 정신적 장애로 나타납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으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지우지 못해서 생겨나는 정신질환이에요. 그래서 잊어버리는 것도 복입니다. 우리가 올 한해 살아오면서 정말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있었을 거예요. 잊어버리고 싶어도 늘 표면 위로 의식위로 떠오르는 것들이 우리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만 뇌라는 것도 망각을 할 줄 알아야 능률이 높아지고 컴퓨터도 비어있어야 속도가 향상되고 우리의 뇌도 때로는 잊어 버려야 새로운 정보도 들어올 수 있고 그리고 정신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때는 참 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때가 있어요. 치매도 아닌데 잘 잊어버리는 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때라면 그것은 그만큼 지금 내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망각을 여유 있게 받아들이라고 이렇게 전문가들은 권면을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고통이 더 배가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억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말을 합니다. 그러면 이 불필요한 것들을 잊어버리려면 기억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고통만 가져다주는 것을 잊어버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임희택이라는 심리학자가 망각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망각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3가지를 강조합니다. 첫 번째는 잊어버리는 것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점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실수할 수도 있어요. 올 한해 실수 한 번도 안한 사람 없을 것입니다. 후회가 되는 일도 많이 했을 거예요.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동물 중에서 오직 유독 인간만이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곱씹고 되씹고 마음속에 다시 끌어 올려서 수천 번이나 되는 대가를 치른 유일한 동물이 바로 인간입니다. 기억력 때문에 생각이 떠올라서 괴로워하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입니다. 머릿속에 기억이라는 쓰레기통을 막 뒤져서 수시로 그걸 끄집어냅니다. 과거의 안타까운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실수와 미련과 후회가 가득한 장면들 자꾸 끄집어냅니다. 그러다보면 어떻게 됩니까? 스트레스 받죠. 고통을 당합니다. 그래서 망각이라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은 불필요한 스트레스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주는 하나의 뇌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잊어버리는 것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두 번째는 모든 스트레스는 우리의 기억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마치 물건처럼 다룰 때가 많아요. 생각을 물건처럼 소유하려고 합니다. 어떤 생각이든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생각을 계속해요. 그리고 특별히 완벽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사소한 것까지 디테일, 아주 세세한 것까지 생각을 해서 뭔가 완벽을 추구하는데 이는 자기학대입니다. 고통스러운 자기 학대예요. 많은 생각들이 쌓아둔 물건처럼, 가끔은 버려야되는데 집안의 물건이 계속 쌓이면 이게 처리 불능 쓰레기가 되듯이 생각들도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부패하고 독설을 내뿜는 악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스트레스가 우리의 기억과 생각에서 나옵니다.
자 마지막 세 번째,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냐, 어떻게 하면 망각하고 어떤 것은 기억하고 방법이 뭐냐면 몰입과 집중입니다. 몰입은 망각과 기억 사이의 어찌보면 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잡다한 생각으로부터 탈출해서 꼭 필요한 것만 집중해서 생각하는 거예요. 몰입과 집중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망각의 즐거움, 망각이 참 유용하고 그리고 진짜 잘 망각하려면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면 불필요한 것들은 잊어버릴 수 있다, 이게 이 책의 주장이에요.
자 그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또 새로운 2020년을 내다보면서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될까 무엇에 몰입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온갖 좋은 것들의 근원이 되시고 빛들의 아버지시고 온갖 좋은 선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집중하고 몰입할 때에 잊어버릴 건 잊어버릴 수 있고 하나님께 집중할 때 상처도 치유될 수 있고 과거의 아픔이 내 발목을 잡지 않는 새로운 미래로 우리가 비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테라는 중세문학의 대가가 쓴 신곡이라는 책, 너무나 유명하죠.이 책을 보면 참 상상력이 천재적이다 이렇게 느껴지는데요. 내세에 우리 인간이 죽어서 가는 내세에서의 여러 영역을 누리는 순례자의 기록을 이 책에서 썼어요. 처음에는 지옥을 통과하고 그 다음에는 연옥을 통과합니다. 지옥에서 사람들은 고통을 받죠. 어떤 고통을 받냐면 자신이 저지르는 악을 떠올리게 하고 악을 기억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왜 여기서 고통 받는 이유를 알게 하는 고통을 받습니다. 그렇게 고통당합니다. 그 다음에는 연옥입니다 연옥에서는 기억을 해요 자신의 악행을 자신에게 안 좋았던 추억들 막 기억합니다. 근데 그 기억은 정화되기 위해서 연옥에서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옥과 연옥을 통과하고 나면 이 땅의 지상 정원 에덴동산과 같은 지상의 어떤 순진한 낙원에 이릅니다. 그 지상 정원 그 낙원을 지나야 천상 낙원으로 향할 수가 있어요. 그 지상의 정원 에덴동산과 같은 정원에는 2개의 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는 레테의 강이고 하나는 에우노에의 강입니다. 레테의 강은 망각의 강이요 에우노에의 강은 기억의 강입니다. 그러니까 그 지상에 있는 에덴동산과 같은 정원을 통과해야 천상낙원으로 갈수 있는데 그 지상에 정원에 흐르는 강물이 두 개가 있어요. 그것이 망각의 강이요 기억의 강입니다. 천상을 향해 가려면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리고 기억해야 될 것은 기억해야 천상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죠.
레테의 강 망각의 강은 맛이 씁쓸합니다. 에우노에의 강물은 달콤합니다. 그래서 망각의 강에 들어가서 몸을 씻고 그 쓴 물을 마십니다. 그리고서 에우노에의 달콤한 물에 몸을 씻고 물을 마십니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죠. 천상으로 향하는 지상의 여정 속에서 망각에 해야 될 것은 자신의 죄, 어두웠던 추억들, 아픔들, 상처들, 이런 것들은 망각의 물에다 다 씻고 그리고 다 털어버리고 이제는 좋은 추억들 그리고 내가 했던 선행들 좋은 기억들을 머금어서 간직해서 천상으로 여정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마침내 천상의 낙원에 이르렀습니다. 천상의 낙원에 이르면 그 세계를 규정하는 분위기는 빛이예요. 하나님의 빛이 여기 천상에까지 올라온 자들을 끌어당깁니다. 인력처럼 꽉 끌어당겨요. 다른 것을 못 보도록 완전히 시선이 그 하나님의 빛에 압도가 당할 정도로, 하나님의 빛이 온통 복된 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그 빛 안에 모든 선이 다 들어가 있어서 과거의 지상에서 내가 해냈던 선행, 또 내가 상상했던 좋은 추억 모든 선이 그 빛 안에 담겨있습니다. 복된 자들은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에 완전히 몰입이 되고 그렇게 집중하고 바라봄으로 인해서 모든 좋은 것들을 떠올리고 선을 기억하게 됩니다. 무한한 선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봄으로써 그 얼굴의 빛에 압도당해서 다른 모든 것들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모든 죄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내가 당했던 과거의 상처와 아픔과 악행들도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오직 그 빛 안에서는 선만, 좋은 것들만을 기억하게 됩니다.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신앙 속에서 하나님 바라보며 천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망각하기와 기억하기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여정의 필수 단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빛의 세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레테의 강과 에우노에의 강을 건너야 하고 물을 마시고서 잊을 것은 잊고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서 완전한 사랑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영혼들은 우리의 복된 자들은 하나님의 선한 빛에 압도당하고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무한한 선과 사랑에 푹 빠져서 무한한 선이신 그 분 외에 다른 것을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고 그렇게 다른 것을 바라볼 능력도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완전한 선이신 하나님께 완전히 우리의 시선이 고정이 되고 몰입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온갖 안좋은 추억들과 아픔과 상처와 죄악들과 악행들은 기억나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선만을 기억하게 됩니다. 완전한 사랑의 세계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죄를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 몰입하고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선이시며 그분 안에서 그분에게서 흘러나오는 그 빛이 지상에서 우리가 경험헀던 모든 선과 상상했던 모든 좋은 것들을 보존하고 기억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악행에 대해서 내가 떠올리기 싫었고 아픔과 상처로서 누군가 나에게 악행을 저질렀던 잘못된 추억이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고 생각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단테의 신곡은 그 점을 강조합니다.
어거스틴이라는 신학자도 <신국론>에서 내세에 복락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땅에서 악행을 당했던 과거의 안 좋은 기억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든 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고 모든 선으로 충만해서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고 모든 범행과 처벌은 다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게 천성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오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2020년을 맞이하는 것은 일종의 종말과 상응하는 면이 있다고 설교 서두에 말했습니다.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죄악이 다 생각날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저질렀던 잘못도 기억날 것이고 상대방이 나에게 부당하게 했던 것이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생각날 것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이제는 털어버리고 최후의 심판을 거치고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통해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전혀 새로운 미래를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새 창조를 기대하면서 그 미래로 도약할 수 있으려면 그러려면 먼저는 2019년에 우리 안에 남아있는 상처들, 아픔들, 깨어진 관계들 이런 것들이 다 해결되고 털어버리고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2020년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서도 유용한 지침이 되는게 뭡니까?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께 내 관심사가 붙들리고 하나님을 한번 몰두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고 몰입하면 하나님의 그 빛이 천상에서 보이는 완전하게 우리를 사로잡는 빛보다는 약하겠지만 그래도 그 빛의 인도함을 받아서 2019년에 어두웠던 기억의 터널을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2019년에 우리가 어두운 기억의 터널을 지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지금 어두운 터널 한복판에 서 있을수도 있습니다만 이곳에서도 빛되신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고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면 전혀 새로운 미래로 진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소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그런 약속의 말씀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사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거예요. 과거에서 현실이 나고 현재에서 미래가 나오는 이런 역사의 흐름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돌출해들어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앞에 우리의 마음이 열리면 새로운 미래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무거운 것들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한 해를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역사하실 새 창조의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서 조우해서 우리가 걸어가기 위해서는 이제는 버려야 될 것 버리고 잊어버려야할 것 잊어버리고 회복해야할 것 회복하고 그렇게 새로운 미래로 걸어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묵은 것을 털어버리는 것 아픔과 상처들을 하나님께 집중해서 잊어버리는 것도 중요하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실천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털어버리고 가기 위해서 용서입니다. 용서를 실천해야할 것입니다. 칼빈이 용서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용서란 분노와 미움, 복수심을 마음에서 기꺼이 몰아내는 일일뿐 아니라 불의한 일에 대한 기억을 기꺼이 망각의 영역으로 추방하는 일이기도 하다” 용서란 것은 복수심 같은 것, 내 안에 미움 같은 것을 내모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꺼이 기억을 망각의 영역으로 잊어버리는 것이죠. 추방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용서는 망각과 잊어버리는 것과 관계가 깊어요. 잊어버릴 줄 아는 것도 복이라는 게 그런 이유입니다
칼 라너라는 가톨릭 신학자는 1964년 바티칸 공의회에서 카톨릭 신학을 세우는데 가장 역할을 한 사람인데요. 망각의 능력, 잊어버릴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사랑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망각하는 분이고 우리 또한 용서받음으로 인해 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망각하시는 분이에요 하나님 자신이 때로는 망각하십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예레미야서를 읽고 있는데요. 예레미야에게 주신 새 언약의 약속이 너무나 새로운 언약이에요. 그 약속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어떤 약속이 놀랍냐면 (렘 31: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 언약이 얼마나 새롭냐면 우리의 악행과 죄를 하나님이 잊어버리겠다 기억하시지 않겠다 망각하겠다. 그러니까 용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망각의 은사를 구해야합니다. 하나님 내가 너무 가슴 아프고 상처받고 분노가 일어나고 때론 내가 용서못할 것 같은 그것도 잊어버리게 하옵소서. 하나님도 잊어 버리신다니까 나도 좀 잊어버리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다행히 제가 좀 기억력이 안 좋아요. 다 잊어버려요.
다윗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서 죄 짓고서 이렇게 간구했죠. (시 51: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마지막 주간 오늘 2019년 마지막 주일에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어요. 올 한해 좋은 일도 많고 안 좋은 일도 많았고 잘했던 일도, 못했던 일도 많지만 하나님 정리하고 가기를 원합니다. 내 모든 죄악을 지워주소서. 하나님께서 잊어버리로 약속했으니까 흔쾌히 지워주실 것입니다.
(시 25: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한해동안 지은 죄, 젊은 날에 지었던 죄들은 다 기억하지 마시고 나를 다만 이렇게 기억해주십시오. 주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따라서만 나를 좀 기억해주십시오. 우리는 올 한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2020년은 2019년을 기반으로 예측할 수 있는 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갈 때 새로운 창조의 역사로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것은 마치 광야에 길을 내는 것 같고 사막에 강을 내는 것 같은 하나님의 새 창조 역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이 말씀을 같이 한번 읽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사 65: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역사는 너무나 놀라워서 이전에 것들은 생각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2020년에 우리 가정에 우리 일터에 나의 삶에 하실 역사가 너무나 새로운 역사이기 때문에 이전에 아픔과 상처와 슬픔과 모든 인간관계의 모든 잘못된 것들이 생각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생각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새 창조의 역사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고 그렇게 용기를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2020년을 걸어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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