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10일 동산교회 설교 (주일 낮)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방법 (사 28:23-29)
어느 유명한 수학자의 학생시절 경험담입니다. 그는 언젠가 수학 시험을 치는 날 그만 지각을 하였습니다. 시험장에 들어서니 이미 시험지는 배부되었고 칠판에는 두 문제가 적혀 있었습니다. 늦게 시험지를 받아 쥔 그는 시험지에 있는 모든 문제를 다 풀 수 있었으나 칠판에 있는 두 문제만은 도저히 풀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교수님에게 그 문제들을 집에 가서 풀어와도 되겠느냐고 요청해서 결국 허락을 받았습니다. 3일간 씨름을 해서 한 문제를 풀었으나 다른 한 문제는 도저히 풀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고생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한 문제를 포기한 채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 교수님은 껄껄 웃으면서 “그날 칠판에 적어 놓은 문제들은 어려워서 아인슈타인도 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자네는 늦게 와서 그 말을 못들었네.”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풀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풀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으나 그는 못들었기 때문에 풀 수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한 문제를 풀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의 문제를 풀어 주시길 원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문제를 해결받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http://cyw.pe.kr/xe/index.php?mid=a23&page=25&document_srl=318131)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과, 이 문제는 도저히 풀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접근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화에 나오는 학생이 그나마 어려운 두 문제 중 한 문제라도 풀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문제가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결 방법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해야 그나마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모를 때 보통 어떻게 하십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가 그 문제를 위해서 하나님께 문의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상의하고 하나님께 아뢸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29절)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9절을 보십시오.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농부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단 농부뿐 아니라 교육가에게는 교육하는 방법을, 정치가에게는 나라와 국민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법관에게는 잘 판단하여 선고할 수 있는 방법을, 상인들에게는 장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경영”이며 “지혜”입니다.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29절)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모든 해법과 방법이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경영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본문 23절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1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들어야 할까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농부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기에 앞서 어떤 작업을 합니까?
본문 24-25절을 보십시오.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농부는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땅을 갈고 개간하고 고르게 하고 평평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농부는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25절)에 심습니다. 소회향이나 대회향은 주로 향료로 사용되던 식물입니다. 약재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소맥은 밀이고 대맥은 보리입니다. 그런데 소회향이나 대회향 같이 종자가 작은 것들은 지면에 뿌리면 되었던 반면에 이보다 종자가 큰 소맥과 대맥은 줄을 지어 심거나 혹은 구획을 나눠 심었습니다. 그리고 밀의 일종인 '귀리'는 가장자리에 심었는데, 이는 지나다니는 사람들로부터 곡식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듯 식물 종류별로 씨를 뿌리는 적당한 방법을 하나님께서 농부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26절에서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하나님께서 농부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일하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여기서 ‘적당한 방법’으로 번역한 단어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로서 ‘공의’나 ‘공평”으로 흔히 번역됩니다. 특별히 재판관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판결을 내리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여기서는 이 단어가 ’적당한 방법‘으로 번역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주셨을까요? 추측해보건대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므로 인간에게도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여러 번 경험을 한 후에 바른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농부는 곡식을 추수하고서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는 타작을 합니다. 타작을 할 때도 곡식의 종류별로 다르게 타작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타작을 할 때 어떤 것은 도리깨로, 또 어떤 것은 수레바퀴를 굴려서, 또 어떤 것은 작대기나 막대기로 합니다. 곡물에 따라 타작하는 방법이 다른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낟알의 크기와 낟알이 잘 떨어지는 지 등을 고려해서 적절한 도구를 가지고 타작하는 것입니다. 소회향과 대회향과 같은 자그마한 곡식의 낟알을 큰 타작기구를 쓰거나 수레바퀴를 굴려서 털어낸다면 알곡들은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미세한 작업을 요하는 향신료에 이런 큰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죠.
이어지는 28절에서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곡식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타작하지만 부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부숴지도록 하면 안돼죠.
이사야 선지자는 농부들이 이런 원리들을 하나님 즉 창조주로부터 배웠다고 말합니다. 29절에서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경영이 기묘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지혜와 모략이 인간에게 놀라움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위치한 이사야 28장은 북이스라엘 곧 에브라임이 멸망하기 직전에 선포되었던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 이 심판의 말씀을 이사야가 지금 가져온 이유는 남유다도 동일하게 북이스라엘이 걸은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가면 남유다도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입니다. 특별히 세력을 떨치며 점점 남유다를 공략하기 위해서 다가오는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서 남유다 히스기야왕이 반앗수르 정책을 펼치고 애굽을 의지하여 애굽과 동맹을 맺은 정치외교적 상황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가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맥락속에 오늘 본문이 위치합니다.
이런 맥락속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농업 모략을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농업 모략처럼 하나님의 역사 모략도 놀라운 것이며 성공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농부들이 하나님의 교훈을 탐구하여 그 방법대로 행하여 추수하는 것처럼,정치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교훈을 얻고자 애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방법에 귀를 기울이라는 권면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방법뿐 아니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륜이 있는 분이시고, 이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암시하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관심과 모략과 지혜가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모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 경륜을 거스르지 말고 유다왕조가 한 세기 전의 유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했던 실수를 따라가지 말라는 간청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에게는 모든 문제 해결을 위한 적당한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바로 그 적당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서 삶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방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구를 친한 친구로 삼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성경 잠언 말씀을 읽고 좋은 친구가 어떠한 친구인지에 대해 알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습니다. 부모라면 자녀에게 어떠한 사람이 좋은 친구인지를 가르쳐야 하고, 또 자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도록 인도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단 농부에게만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성과 재능을 주셔서 각자에게 적합한 직업으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이땅에서 먹고 살게 해주시는 것이죠.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농부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알려주셨으면 하는 방법이 있으면 무엇인가요? 당면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키는 무엇일까요? 가장 적당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마스터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말씀은 인생의 매뉴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보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에게는 방법이 있고 해답이 있음을 믿고 성경 말씀을 읽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경영이 기묘하며 지혜가 광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적당한 방법을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조세계에 넘치는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에서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말씀에서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알 게 되고, 이뿐 아니라 성경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법칙도 담겨 있습니다. 말씀을 배워서 익히고 순종할 때 우리는 온전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면서 이땅을 보람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인이 가장 순종하지 않는 성경 말씀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부천대학교에서 유아교육을 가르치는 전성수교수라는 분은 이 질문을 하고 자신이 대답합니다. 신명기 6장 6-7절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신 6:6-7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성경은 분명히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 6: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6장 7절의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에서 볼 수 있듯 항상 자녀에게 부모가 직접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 말씀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서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바르게 잘 사는 길을 어려서부터 자녀에게 가르치면 평생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구석구석 모든 말씀을 다 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평생 동안 반드시 잊지 말고 꼭 붙들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라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말년에 나이가 너무 많아서 치매에 걸렸습니다. 그가 알고 있던 것들을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 자신의 나이도 자신의 생일도 몰랐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제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지금 선생님이 알고 계신 것은 무엇입니까?” 뉴턴은 빙긋 웃고 대답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내 구주 되신다는 것! 이 두 가지는 내가 확실히 알고 있지.” 다른 것 다 몰라도 좋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내 구주가 되신다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여호와를 힘써 알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앞에 새로운 미래가 전개될 것입니다. - <지식을 버린 자의 미로> (곽선희 저, 68쪽)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사의 모든 크고 작은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계신 분임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당한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귀기울여 듣고 공부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날 때나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적당한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어느날 예술가들이 모여 각자가 당면하고 있는 고통에 관해 토론합니다. 사람들에 대한 증오, 경제적 궁핍, 창작활동에 대한 무력감, 나빠지는 건강 문제 등... 사람들마다 나름대로의 비법을 말합니다. 독한 술을 마시거나 지인들을 찾아가 고통을 호소하고 때로는 폭력적 증오와 파괴적 본능을 분출하는 방법 등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실한 신자 하이든의 방법은 달랐습니다. "우리집에는 작은 골방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나의 기도실입니다. 고통이 닥치면 나는 조용히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골방에서 나올 때면 나는 언제난 희망의 빛을 발견합니다." 기도는 신비로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기도는 어둠을 쫓아내고 고통의 주름살을 제거합니다. 우리도 심각한 삶의 문제로 인해 고난을 겪을 때 즉각적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려고하는 성숙한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http://blog.naver.com/jooane2?Redirect=Log&logNo=120151702955)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농부에게 자동적으로 농사짓는 법을 알려주시지는 않습니다. 인류의 문명과 과학의 발전은 하나님이 창조세계에 심어놓으신 창조의 법칙과 방법을 발견하고 활용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그것들을 발견해내고 개발할 수 있는 잠재력이 주어져있을 뿐입니다. 개발과 발전은 열심히 노력하고 탐구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결국 창조세계에 가득한 아름다움과 진리도 노력하는 자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떠한 믿음과 또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모든 문제의 해답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그 적당한 방법을 알려주시기를 원하심 또한 믿어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말씀과 기도로써 문제 해결을 위한 적당한 방법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이땅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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