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12일 설교 (주일 낮)
성경적 효 사상 (엡 6:1-3)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마비되어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지극한 돌봄과 헌신으로 별 다른 탈없이 자란 아이는 초등학교도 일반 학교로 진학을 했습니다. 이 학생이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수업시간에 쓴 글입니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내 어머니의 어머니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지금까지 받은 고마움을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어 보답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 어머니의 고마움을 보답하며 살 수가 없다. 그렇기에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어머니의 어머니로 태어나서 그 무한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다.’
이 글을 본 선생님은 큰 감동을 받아 인터넷에 올렸고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통해 감동을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부모님의 크신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자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하나님은 나의 힘이요 구원이십니다>에서 발췌, 김장환 저)
최근에 한 편의 동시가 신문에 소개되었습니다. 2016년 전라북도교육청 공모전 동시부문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부안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이슬양의 시입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이 시를 쓰기 전년도에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쓴 동시입니다. 당시에도 큰 감동을 준 시로 화제가 되었는데 올해 어버이날을 맞이해서 어떤 분이 곡을 붙여서 동요로 불러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동시 제목은 '가장 받고 싶은 상'입니다. 이슬양은 밥상을 마주할 때마다 생전에 음식을 차려주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동시를 통해 평소 못 느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밥상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표현했습니다. 시 전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가장 받고 싶은 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짜증 섞인 투정에도 어김없이 차려지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런 상
하루에 세 번이나 받을 수 있는 상 아침상 점심상 저녁상 받아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해도 되는 그런 상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때는 왜 못보았을까? 그 상을 내시던 주름진 엄마의 손을
그때는 왜 잡아주지 못했을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을까? 그동안 숨겨놨던 말 이제는 받지 못할 상 앞에 앉아 홀로 되뇌어봅니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고마웠어요" "엄마, 편히 쉬세요"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엄마상 이제 받을 수 없어요
이제 제가 엄마에게 상을 차려 드릴게요 엄마가 좋아했던 반찬들로만 한가득 담을게요
하지만 아직도 그리운 엄마의 밥상 이제 다시 못 받을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울 엄마 얼굴 (상)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에 우리의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을 모두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보 목회칼럼에도 썼습니다만, 한국사회에서 연로해지신 부모님들이란 참으로 풍파 많고 고생 많은 삶을 지금에까지 살고계신 그런 분들입니다. 자녀 양육하고 기르고 교육시키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사셨고, 그래서 가장 늦은 나이에까지 일을 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르신들은 빈곤에 시달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부모님입니다. 너무나 잘 아는 부모 순종, 부모 공경에 관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성경적 효 사상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의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순종이나 복종을 강조합니다. 심지어 종교예식이나 예배보다도 순종을 더욱 강조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23절에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서 한 여인이 그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눅 11:27)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 11:28)
실제로 말씀 듣고 말씀대로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신명기 28장 1-6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1-6)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시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앞에 복종하는 것을 대단히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과 아울러 죄의 본질에 깊숙이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나고 모두가 다 죄인이되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였다는 ‘인간의 전적 타락’ 교리는 인생을 이해하는 가장 깊은 진실입니다. 아담의 자손으로서 우리 모두는 죄악된 성향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완전히 끊지 못한 상태입니다. 우리는 결코 고분고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반항적이고 하나님께 대해서도 복종적이지 못합니다. 명령 받고 지시 받고 누군가의 아래에 있는 것을 못견뎌 합니다. ‘네가 감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해...’ 이것은 하나님을 향해서도 진실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인생의 고통과 비참은 불순종하고 반항하는 이러한 죄악된 성향의 결과입니다. 불순종, 불복종하는 기질은 축복을 걷어차버립니다. 순종의 정신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이무리 열심히 뛰어다닌다 해도 진정으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이 어째서 불신앙, 수치, 비참, 그리고 살인으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누구나 자신이 주인이 되며, 모든 권위에서 벗어나고, 자기 기분대로 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악당을 이용해 또다른 악당을 벌하신다. 당신이 당신의 주인을 속이거나 업신여기면 다른 사람이 와서 당신에게 그와 똑같이 대할 것이다. 실로 당신은 아내와 자신과 하인들로부터 열배나 더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인간의 모든 비참함이 참된 권위에 대한 불복종,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뿌리 깊은 교만에서 비롯되었다는 통찰입니다.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태도에서 기원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자손으로서 이런 근본적 성향, 뿌리 깊은 본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참된 행복과 형통함과 진정한 자유를 결코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십계명 제5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 제5계명이 무엇입니까?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이 5계명은 단순히 부모 공경만을 명령하는 계명이 아닙니다. 부모 공경을 실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권위에 대한 복종과 겸손을 배우고 몸에 익히라는 것입니다. 반항적이고 불순종하고 이기적인 우리의 죄악된 성향을 ‘따뜻한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 공경’을 명하신 것입니다. 종교개혁가 존 칼빈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복종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장 우호적인 방법으로 자신에게 이끌어들이기 위하여 그들 앞에 부모님을 두셨습니다.”
부모 공경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복종을 가르쳐주는 훈련 과정일 뿐 아니라 부모 공경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 공경은 참으로 중요한 계명입니다. 십계명 제5계명은 인간 윤리의 시작 계명입니다. 우리의 배꼽을 쳐다볼 때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난 태어난 존재다.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나는 부모의 자녀다’ 이와 마찬가지로 ‘난 하나님의 자녀다.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다. 하나님이라는 더 높은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그분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나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될 때, 나 자신이 중심이라고 생각될 때,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될 때, 너의 배꼽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나는 태어난 존재요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권위 앞에 서있는 존재요,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 운명에 부합한 길이요 그것이 진정한 복이요 참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 공경 계명은 축복을 약속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형통의 축복이 오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자유의 축복이 오듯이, 부모를 공경하면 이땅에서 장수하고 복을 누리게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저 오래사는 장수가 아니라 삶의 질이 높은 장수입니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6장 2-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제5계명 부모 공경 계명이 십계명 중에서 본격적인 약속이 주어지는 첫 번째 계명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고 인간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근본을 가르쳐주는 의미에서 중요한 첫 번째 계명으로서 약속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후자로 해석하는 분들은 십계명 제2계명에도 약속이 결부돼 있다고 봅니다. 출애굽기 20장 4-6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금하는 제2계명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약속으로 보지 않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결과라고 단순히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서 질투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불붙는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를 독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다른 우상을 향하는 우리에게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시는 겁니다. 그 사랑의 결과로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손들에게 당연히 은혜가 임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를 약속이라기보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자연스런 결과로 해석합니다. 명령에 대해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축복을 약속한 말씀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에 반해서 제5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면 자연스레 축복된 결과가 뒤따를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땅에서 장수하고 잘되는 축복을 약속해주고 있습니다.
부모 공경을 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은 설교 서두에서 읽어드렸던 신명기 28장의 축복과 동일한 축복입니다. 말씀에 청종하고 순종하며 율법대로 살 때 누리게 될 축복과 동일한 축복입니다. 왜냐면 원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반항적이고 불복종적인 죄악된 성향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원리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보상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피조물됨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됨과 비슷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특별히 에베소서 본문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말씀함으로써 어머니뿐 아니라 놓치기 쉬운 아버지도 공경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경하라’의 히브리어에 해당하는 단어는 ‘카베드’인데요, ‘무겁다 혹은 무겁게 여기다, 비중 있게 생각하다, 중요하게 여기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길일까요? 부모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권위를 존중하며 부모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은 주께 하듯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생각해서 하나님께 하듯 순종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유일하신 하나님의 유일하신 통치를 받고 그 독보적인 존재에 걸맞게 그분에 합당하게 대우하고 그분만을 사랑하라고 쉐마(신 6:4-5)에서 명령하고 있듯이, 부모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과 방불한 존재로 여기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단순한 존경과 존중의 태도에서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물질적 봉양을 포함합니다. 노년의 부모님은 일종의 인생의 안식년을 지내는 것과 같은데 돌아가실 때까지 음식, 옷, 거주지, 그리고 마지막 장례까지 적절히 봉양해드리라는 것입니다.
십계명 제5계명은 부모 공경만을 말씀하지 않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 앞에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할지,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앞에 우리가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도 가르쳐주는 말씀으로 확장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분명하게 ‘효’라는 단어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성경적 효 사상입니다. 하나님 경외요 부모 공경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존중하는 태도요 피조물로서 우리의 위치를 바로 깨닫고 만물 안에서 질서와 조화를 추구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자기를 쳐서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복종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복종하는 사람이 될 때, 그런데 우리의 복종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성경은 그저 “피차 복종하라!”고 명령할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히 자녀가 부모에게 복종하고 공경할 때 우리는 복종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고, 진정으로 바른 하나님 섬김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에 그동안 오직 자녀 사랑으로 수고하고 헌신하신 모든 부모님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가득하시고, 젊은 세대가 노년 세대에게 적절한 존경과 예우로 섬기는 그러한 우리교회로 새롭게 거듭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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