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24일 동산교회 총동원주일 설교 (주일 낮)
천국의 사냥개 (눅 15:1-7)
여러분이 잘 아시는 개그우먼 조혜련씨의 간증입니다. 이분의 아버지가 장손이어서 대를 이을 아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첫째가 딸이었습니다. 첫째를 딸로 낳았을 때 친할머니는 “그래 첫째 딸은 재산이라 카더라”면서 마음의 위로로 삼으셨습니다. 또 둘째와 셋째도 딸이었습니다. 넷째마저도 딸을 낳자 엄마의 실망은 물론이고 할머니의 역정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면 할머니는 문을 빼꼼히 열고 “아들이가? 딸이가?”라며 성별 확인을 하시고는 딸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와서 밭매라!”고 하셨습니다. 일거리를 준비해 아들을 낳지 못한 대가를 치르게 하신 것입니다. 다섯 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 엄마는 그동안 한 번도 꾸지 못한 태몽을 꿨습니다. 꿈속에 커다란 호랑이가 먼 곳에서부터 돌진해 엄마 뱃속으로 훅하고 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용맹스러운 호랑이가 꿈속에 나타났으니 누가 아들이라고 믿지 않겠는가. 매일 다르게 불러오는 배를 어루만지며 엄마는 아이에게 이렇게 주입했습니다. “니는 아들이다. 아들이어야 한데이. 나를 살려낼 아들이다.” 호랑이 태몽이었지만 결과는 딸! 조혜련씨가 다섯째 딸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를 우짤끼고. 배신자 가스나!”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엄마한테 들은 말은 배신자였습니다. 그날 밤 엄마는 옆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던 아기를 거꾸로 엎어놓은 채 이불을 뒤집어씌웠습니다. ‘꼴도 보기 싫은 가스나! 그냥 확 죽어버리라.’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몇 시간도 안 된, 목도 못 가누는 아이를 엎어놓는다는 것은 죽으라는 것이겠죠. 그만큼 실망감이 컸습니다. 한참 뒤에 엄마가 이불을 들쳐보니 땀을 잔뜩 흘리면서 목을 돌려서 숨을 편하게 쉬면서 아주 잘 자고 있더랍니다. 갓난 아기가 엎어놓았는데도 고개를 돌려서 숨을 쉬고 생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질긴 목숨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일곱 번째도 딸을 낳은 엄마는 여덟 번째 만에 드디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조혜련씨의 어머니가 남묘호렌게쿄(남녀호랑개교)의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자연스레 조혜련씨는 어미니를 따라 이 종교를 믿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열심히 믿었냐면 전에 다른 종교생활을 할 때엔 하루에 10시간씩 100일동안 주문을 외며 기도한 적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수많은 십자가들을 보며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던 조혜련씨가 44년간 하나님을 부정하다 지난 2015년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개그우먼 이성미집사가 캐나다에 있을 때 조혜련이 김영철과 함께 방문을 했는데 욕도 잘하던 이성미 집사가 얼굴에 광채가 나서 도대체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자 사실 요즘 새벽기도회에 나가고 있다고 하며 너를 위해서도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조혜련은 언니 고맙지만 내 이름은 빼줘라고 했을 정도로 거부감이 컸습니다. 돌아와서 이성미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각자 종교를 존중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성미 집사가 한국에 와서도 조혜련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며 전도했는데 너무 극성으로 전도하니까 전화번호를 삭제해버리고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분이 예수를 믿게 된데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재혼하게 된 이후입니다. 이분의 남편이 조혜련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주었을 때 비로소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학교 다닐 때는 진화론을 믿었고 다른 종교에 심취했을 때는 윤회설을 믿었는데 하나님이 천지만물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고백하자 순간 자기의 힘겨웠던 과거가 스쳐지나가며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자기를 내팽개치듯 키웠기에 자신은 항상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죽을 힘을 다해 쓸모있는 인간이 되어보려고 노력했는데 그것이 자기를 너무 힘들게 했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장에나가 어머니가 재배한 쑥갓을 내다팔 정도로 생활력이 강했습니다. 시장에서도 매장이 없이 노점상처럼 팔다보니 단속반이 나와서 뒤엎고 회수해갈 때도 당돌하게 가져가지 말라고 사정사정해서 돌려받기도 했던 억척이었습니다. 이렇게 자라다보니 평소에도 인정 받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힘든 인생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자기의 모든 짐과 죄의 짐을 대신 지게 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조혜련은 자유로워졌습니다. 전에는 힘겨울 때 술에 의지했는데 이제 주님을 의지하며 이보다 든든한 백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느끼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성경이 너무 달콤해서 성경을 잘 알기 위해서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기도제목은 32명이나 되는 친족이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죽고 예수만 사는 기독교인 되는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그녀의 어머니 최복순 씨도 하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분의 변화는 조혜련씨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된 어머니는 딸에게서 배워서 성경 읽기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었을 때는 하루 10시간 기도를 올려도 복잡했던 마음이 성경을 읽고 찬송을 하고 설교를 들을 때는 편안하고 걱정도 없다”고 어머니는 말합니다. 허리 건강 때문에 성경 읽기가 편하지만은 않지만,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정에 벌써 예수 믿은 지 1년 만에 벌써 성경 8독째를 끝냈다고 하니 그 어머니의 그딸이라 할 만합니다. 어머니는 성경 읽기에서 나아가 성경 암송에도 도전했습니다. CTS기독교TV가 주최한 제4회 부산국제성경암송대회에 최고령으로 참가하게 된 겁니다.
조혜련씨의 간증을 들으니 이분이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놀라운 역사를 계획하시고 이루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조혜련씨의 구원을 위해서 7년간 도고기도한 개그우먼 이성미씨가 있었고, 조혜련씨가 소속된 연예기획사 사장이 독실한 신자인데 이분도 14년이나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번만 교회 출석하자고 권한 지금의 남편, 이들의 합작품으로 하나님은 조혜련을 불러주셨던 것입니다. 조혜련씨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회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추적에 결국 조혜련씨가 백기투항한 것이죠.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존 스토트 목사님은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라는 책을 냈습니다. 수학자요 철학자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석학 버드란트 러셀이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이 책에 대한 응답으로 스토트 목사님이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라는 책을 쓴 것입니다. 이분이 그리스도가 된 이유에 대해서 말하기를, 자신의 부모나 스승의 영향도 아니고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결단 때문도 아니고, 바로 ‘천국의 사냥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이 되어서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고자 도망할 때조차도 끈질기게 자신을 추적하고 쫓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천국의 사냥개’로 지칭했는데, 조금은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점에서 존 스토트목사님 자신도 우려하면서도, 영국 스코틀랜드 북부에서 서식하는 콜리라는 사냥개는 목장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다니는 양치기 개인데, 너무나 좋은 사냥개라는 점에서 그냥 그 표현을 쓰기로 합니다. 원래 ‘천국의 사냥개’라는 표현은 한 시인의 시의 제목입니다. ‘천국의 사냥개’라는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네, 밤에도 그리고 낮에도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네, 수많은 세월 동안을.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네, 내 마음속 미로 같은 길로. 그리고 슬픔 속에서도 나는 숨었네, 겉으로는 연이어 웃으면서도. 희망에 부풀어 오르다가도 두려움의 골짜기 거대한 음울 속으로 곤두박칠쳐 버렸네. 나를 따라오는, 추적해오는 그 힘찬 발소리로부터.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걸음걸이, 일부러 속도를 내며, 장엄한 긴박감으로, 두드린다-그리고 한 목소리가 두드린다, 발소리보다 더 긴박하게- ‘네가 나를 배반하기에, 모든 것이 너를 배반한다’ ... 가여워라, 너는 알지 못하는도다, 네가 얼마나 사랑받을 만하지 못한 존재인지! 너처럼 비천한 자를 사랑할 이 누가 있으랴, 나, 오직 나 외에는? ... 내가 너에게서 가져간 모든 것은 너를 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품에서 찾게 하려는 것이라... 일어나라, 내 손을 잡아라, 그리고 내게로 오라!
‘천국의 사냥개’라는 시를 통해서 시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임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끈질긴 추적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애송하는 시편 23편은 어떻게 시작됩니까?시편 23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리고 마지막 6절,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로 마무리됩니다. 이를 좀더 쉽게 번역해보면,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의 집에서 영원토록 살겠습니다.” 더 쉽게 번역해보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추적하고, 붙어다니며 괴롭게 하고, 내 걸음 하나하나를 미행하리니” 참으로 끈질긴 추적, 목적이 분명하고, 자애롭지만 무자비한 추적입니다. 이 열심에 굴복당하지 않을 영혼은 없습니다. 바로 이 열심히 여러분을 오늘 이 자리에 불러내셨고 오늘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이땅에서 손가락질 받던 세리와 죄인들을 받아주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종종 나누셨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중동지방에서 함께 식사를 나눈다는 것은 “평화와 신뢰와 형제애와 용서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한 신학자는 말했습니다.(요하킴 예레미아스) “한 마디로 식탁을 함께 하는 것은 생명을 나누는 것”의 의미까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자신의 사명과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이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 하나님께로부터 전달하라고 받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9장 10절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잃어버린 자를 ‘찾아내시려고’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죄인과 세리와 식탁 교제를 함께 한다는 비난을 받고서 예수님은 한 이야기로써 응답하십니다. 본문 4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는데, 자신에게 있는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다 방치하기까지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끈질기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이고 하나님의 추적입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 겁니까? 그 한 양이 잃어버린 양이기 때문입니다. 양 무리에서 이탈하여 위태한 상태에 처한 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양을 되찾았을 때의 감격과 기쁨이 크기 때문입니다. 본문 5-6절을 보십시오.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어깨에 메고 온다는 것은 잃어버린 양이 부상을 당했거나 잘 먹지 못해서 주린 상태였음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양의 무리에서 이탈해서 목자의 품을 떠난 양의 상태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 열심을 내고 분주하게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생은 결국 생명이 소진되는 죽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죽을 위기에 처한 양을 되찾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돌아와서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입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7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잃어버린 양을 되찾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 있던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회개하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회개하여 창조주께로 돌아오면 하늘 아버지가 너무나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라면 하나님은 두 팔 벌려 받아들여주십니다. 받아들여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죄인들에게 이보다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열심과 추적을 받고 있는 우리가 이 사랑을 외면한다면 하나님께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것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의 끈질긴 사랑과 추적의 결과로써 이 자리에 오게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 사랑에 굴복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십자가를 바라볼 때 이전에 달려왔던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만 느껴지는 허탈감,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면 안되겠다는 자책감, 그리고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격, 이제는 하나님을 향하여 진정 열매 맺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새로운 마음, 오늘 이러한 십자가의 사랑이 여러분의 심령에 흘러넘쳐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굴복하시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다시금 영접하고 천국 백성으로서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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