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25일 설교 (주일 낮)
가까이하지 않음은 멀어지는 것입니다! (신 4:1-9)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관계에도 때로는 가까움 뿐 아니라 때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함을 강조한 말입니다. 인간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없으면 불이 위협하듯 인간관계를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친밀한 사이라도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한 법입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숲을 바라보면 숲에 나무가 붙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나무들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 간에 다 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만약 나무들이 고독해서 더욱 가깝게 붙으려고 하면 그래서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자라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서로 너무 가깝게 붙어 있으면 내실을 다지지 못한 채 위로만 자라게 됩니다. 햇볕을 더 받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웃자라는 것이죠. 내실이 없이 위로만 자라는 겁니다. 가지도 뻗어야 하고 잎도 만들어야 하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몸통을 가꿔가야 하는데, 온통 키가 자라는데 집중하다보니 몸통이 가늘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약한 비바람에도 견디지 못해 쓰러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무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자라야 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합니다. 물론 친밀한 사이일수록 ‘거리’를 말하면 이상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에게는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양립되기가 쉽지 않은 의존 욕구만큼이나 독립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서로에게 의존하는 욕구만큼이나 서로에게서 떨어져 있고 싶은 독립 욕구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더 가깝게 다가가서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느 때도 나 자신만의 공간에 남아있기를 원할 때도 있습니다. 나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독립성이 침해당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친밀감과 거리감은 인간관계의 영원한 숙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쌍방이 어느 한쪽은 친밀해지고 싶어하는데 다른 한 쪽은 거리를 두고 싶어하면 관계가 제대로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는데 나는 움찔하거나 뒷걸음칠 때가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관계의 딜레마라 할 수 있죠. 예전에 언젠가 칼럼에서도 언급했던 바,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말한 고슴도치의 딜레마라 할 수 있죠. 우리는 인간관계의 양상에 따라 최적의 거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 김혜남 저 참고)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 역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인간을 찾아온 역사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역사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서 너무나 멀어진 하나님, 영어로 ‘God above us’, ‘우리 위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 ‘God with us’,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되셔서 인간과 함께 거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땅에 오셔서 인간이 되시고 인간과 함께 하셨던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우리의 심령 가운데 성령님을 보내심으로 인해서 ‘God within us’,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관계와는 달리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는 옳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가꿔나가야 합니다. 점점 더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아가고 하나님과의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3가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 3가지는 점점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이끌며 결국에는 완성시키는 세 가지 단계처럼 여겨집니다.
첫 번째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신명기는 모세의 마지막 설교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목전에 두고서, 그 땅에 들어갈 새로운 세대에게 모세가 마지막으로 율법을 선포한 설교입니다. 특별히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고 그 땅에서 충만하게 실현된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가꿔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 씀에 귀기울여 듣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가감없이 구석구석 살펴보고 적용함으로써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씀하심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집중하여 듣고 읽고 묵상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귀기울여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온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최근 아마존의 한 작은 부족을 위한 성경이 번역됐습니다. 브라질 아마존에 살고 있는 바나와 부족을 위한 성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성경 이름도 ‘바나와 이야기 성경’입니다. 부족원이 고작 100여명이라고 하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부족 중 하나라고 합니다. 성경 번역은 한 한국인 선교사의 손끝을 거쳐 완성됐습니다. 1999년부터 바나와인들과 살고 있는 강명관 선교사가 번역을 했습니다. 강 선교사는 사역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바나와인들을 위한 성경을 번역한 것인데요. 바나와족이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어서 브라질의 공용어인 포르투갈어 알파벳으로 소리나는 대로 성경을 번역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포르투갈어 알파벳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바나와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번역한 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담긴 100가지 이야기를 발췌해 번역했다는데, 구원의 확신을 주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이 기간은 50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 속에서 몸을 파고드는 독충과 싸웠던 시간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아주 단순한 언어로 대화하는 바나와 사람들에게 성경의 추상적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는 것도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어린 양’을 번역할 때의 에피소드가 재미있는데요. 아마존 밀림에 양이 살 리가 없죠. 강 선교사는 바나와 사람들에게 익숙한 돼지로 번역할까도 고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돼지를 불결한 동물로 보기 때문에 의미가 왜곡될 우려가 커 포기했다고 하는데요. 결국 양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수백 ㎞ 떨어진 도시로 나가 어렵게 살아있는 양을 구한 뒤 마을로 돌아와 양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면서 양이 성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가르쳤다고 해요. 일종의 시청각 교육을 한 셈입니다.
또 아마존에 양이 없다보니 마땅한 이름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름을 뭐라고 붙일까 고민하는데 강 선교사가 부인 심순주 선교사와 양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자주 들은 바나와 사람들이 “우리도 양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해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성경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세계에 흩어진 여러가지 선교 기관 가운데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라는 선교기관이 있습니다. 거기서 섬기는 선교사님들은 신앙에 투철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어학에 특별한 재능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미나 아프리카나 조그마한 나라 부족들이 모여사는 곳에, 쓰는 말은 있어도 글이 없는 그 곳에서 그들은 언어를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그 언어를 가지고 성경을 번역합니다. 한 사람이 마태복음을 번역하고 죽으면 누군가가 뒤를 이어 다시 그 곳에 좇아가서 마가복음을 번역하고, 또 죽으면 다음 사람이 가서 사도행전을 번역합니다.
이 선교회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 하나가 남미의 어떤 마을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성경 번역을 하다 보니까 그 마을 언어 가운데 “순종”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에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일을 꼭 하라고 하면서 “꼭 해야 된다” 이런 뜻으로 말을 하는 가운데 계속 이 말을 강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일을 꼭 해야 된다. 네 모든 마음으로”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심부름 가는 아들 뒤에서 아버지가 말합니다.“네 마음을 나누지 말라” 그래서 “순종”이라는 단어를 번역하기를 “마음을 나누지 않고 모든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길게 번역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http://www.euisung.net 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해야 하나님께 달라붙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달라붙어 있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늘 의식하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우상숭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잘 섬긴 사람들만 살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붙어’는 남자가 결혼하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을 이룰지니라”(창 2:24)에 사용된 단어입니다. 부부간의 한 몸 됨에 표현된 단어입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언약적 충성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붙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딱 달라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 자녀가 아버지의 품에 안긴 것처럼 마치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붙어 있으십니까? 하나님을 사모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고 계십니까? 성령충만하십니까?
세 번째 단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주도권은 그러나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완성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셔야 관계가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성령으로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문을 열고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는 마음을 품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더욱 친밀하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본문 7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는 마음을 품고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습니까? 기도함으로써 가능합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하는 것, 그렇게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친밀하게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더욱 친밀하게 찾아오십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꼭 필요할 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요청이면서도 하나님과의 교제 수단입니다. 하나님을 친밀히 알아가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시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는 자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므로 우리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소유하고 하나님께 붙잡힘 바 된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가꿔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귀기울여 듣고 그 말씀에 온 마음을 다해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딱 달라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계속적으로 기도로 숨을 셔야 합니다.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가까이 나아가려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찾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가까이오셔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아름답게 가꿔나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가까이 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더욱 가깝게 해주십니다. 가까이 하지 않음은 그냥 머물러 있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가꿔나가고 더욱 가까이 나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게 됩니다. 너무나 멀어지게 됩니다.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을 등한히 하면 바로 결과가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가꿔나감으로써 하나님이 더욱 가깝게 찾아오시는 인생, 하나님께 완전히 붙들린 인생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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