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18일 설교 (주일 낮)
여호와를 섬기는 것 (말 3:13-18)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나 메탄과 같은 온실가스의 증가로 인해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다음 세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지구의 평균 기온은 18세기 산업혁명기보다 이미 1도 가량 높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2015년 195개국 정상이 모여 파리 기후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최소한 지구의 온도를 산업혁명기때보다 2도가 넘지 않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지구 평균 기온보다 1도 이상 더 오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지구의 평균온도가 현재보다 1도 이상 높아지면 지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전문가들은 해수면이 지금보다 25m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처럼 해수면이 상승하면 고도가 낮은 지역이나 저지대에 있는 나라들이나 전 세계 해안가의 평야지대와 강 하구의 삼각주 지역이 물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약 30%가 해안지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인류의 대멸종을 경고하기도 합니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은 ”2020년까지 경로를 바꾸지 않으면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며 기후변화에 대한 각국의 노력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작 개별 국가의 정상들은 적극적 노력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2017년에 트럼프대통령은 파리기후협약의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협약을 이행하는데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제로 상태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시들어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절대 다수는 과학적 사실에 입각하여 정직하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말하고 있지만 당장의 눈앞 의 이익 때문에 예측가능한 과학적 진실이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류는 파국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트럼프와 같은 지도자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과학에 무지해서가 아닙니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호황을 맞이해야, 그리고 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야 선거에서 득표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지도자 뿐이겠습니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인류의 미래에 진짜 이득이 되는 게 무엇인가보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채 살아갑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 인류는 사라질 운명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2019.8.17.)
눈앞의 이익이 영원한 이득을 눈감게 만듭니다! 당장의 현실만 해쳐나가려 하다보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 인생에게 진짜 이득이 될지 우리는 진정 예측하지 못하는 걸까요? 먼 미래를 내다보기보다 당장 발등의 불부터 끄려 하는 어리석음이 인생의 나약함을 보여줄 뿐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극지방의 빙하를 녹여 해수면의 온도를 상승시킬 것은 불 보듯 뻔한데,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서 고위도의 해수의 밀도에 변화가 생기면 지구 해류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고위도 지방에는 오히려 평균 온도가 내려가는 빙하기가 출현할 것을 예측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말해지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확실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과학적 예측은 그나마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이 됩니다만, 정치적인 판단에 관한 예측이나 사회변동에 관한 예측은 정확한 예측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미국의 정치분석가로서 정확히 선거 결과를 예측하여 유명세를 탄분이 있습니다. 네이트 실버라는 젊은 분입니다. 2012년 미국 대선이 민주당 오바마와 공화당 롬니가 맞붙었습니다. 여론조사결과 박빙의 승부가 예측되었지만 대부분의 선거 전문가들이나 여론조사기관의 예측은 공화당 롬니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네이트 실버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확률을 91%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예측은 수많은 자료들 중에서 의미 있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자료들을 엄선하고 과학적, 통계학적으로 분석하여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의 예측이 적중하여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뿐 아니라 미국 50개 주의 상원의원 당선자도 정확하게 예측하였습니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에 당선될 때도 그의 예측은 정확하였습니다. 그러나 2017년 트럼프와 힐러리의 대선 때는 그의 예측이 빗나갔습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확률이 71.4%로 보았지만 실제로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대선 족집게’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지만 이로서 정치적 예측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정치적 예측뿐 아니라 경제 예측도 어렵고 우리 인생의 미래에 관한 예측도 어렵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무엇이 우리 인생에 진정한 이득이 될지 알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당장 자신의 눈이 보기에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여 거기에 몰빵하고 그 이익을 붙잡기 위해서 애쓰지만 먼 미래에도 정작 자신에게 진정한 이득이 되는지는 예측을 하지도 않고, 예측 할 수도 없고, 성경이 말하는 미래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는 인생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현 시점에서 내 인생에 무엇이 득이 되는지, 그리고 무엇이 손이 되는지, 이익은 무엇이고 손해는 무엇인지, 자산이 얼마고 부채는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서 이전과 비교해서 무엇이 손해가 되었고 무엇은 또한 이익이 되었는지를 작성해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가 지금은 그렇게 보여도 먼 미래에도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4-6절에 보면,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여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바울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육체를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율법에 맞게 8일 만에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나면서부터 된 것과, 이방인으로서 할례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게 아니라 혈통적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 자신이 12지파 중에서 남유다에 속했던 베냐민 지파였다는 것, 히브리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정통 히브리인이었다는 것 등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출생으로 얻게 된 특권들이죠. 이뿐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열성으로 성취한 것들도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성결과 경건에 힘쓰는 바리새인이었고, 이단 세력이라고 생각되는 교회를 박해했고, 성경 율법을 놓고 보더라도 계명을 잘 지키는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음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그가 자랑스러워했던 것들일 뿐입니다. 이어지는 빌립보서 3장 7-8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여기서 ‘유익’은 대차대조표에서 좌변에 기록하는 이익(자산)을, ‘해’는 우변에 기록하는 손해(부채)에 해당하는 회계용어입니다. 이전에 자랑스러워했고 추구했던 것들이 바울 자신의 인생에게 유익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추구해야 할 가치로 여겼습니다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심한 이후에는 그것들이 유익이나 이득이 아니라 손해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족보나 뛰어난 혈통, 바리새인으로서의 율법적 성취와 열성을 과거에는 이익으로 생각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 그러한 것들이 이익이 아니라 손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이익이 아니라 손해라고 깨닫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3장 8절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자신의 주로 아는 지식의 탁월한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인생의 막대한 이윤이요 자산임을 그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 있다면 다른 어떤 것들이 없어도 자신의 인생장부는 큰 플러스요 흑자임을 그는 알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마치 시장에서 교환을 할 때 압도적으로 높은 가치와 같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그리스도를 얻는다면 그 인생은 결국 남는 장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오히려 인생의 손해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들을 손해로 처리해버린 것입니다. 마치 배설물과 같이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얻으려는 목표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무엇에 가치를 두고 무엇에 충성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바울은 하나님과 경쟁하는 것들은 무엇이든 해로 여기고 손해라고 기록해버린 것입니다. 굉장히 올바른 처사죠.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고 하나님께만 충성해야 하고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의 유일한 통치만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작성한 인생의 대차대조표는 진리에 입각한 대차대조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라기 선지자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작성한 대차대조표는 진리에 입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하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인생에 플러스가 안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장 이득이 안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말라기 선지자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뱉은 말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완악한 말이었다는 겁니다. 표면적으로 대놓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지는 않지만,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실제로는 하나님께 완악한 그들의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스르는 완악한 말’로 규정하신 것은 어떠한 것일까요? 14-15절을 보십시오. 먼저 14절입니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헛되고 아무 유익이 없다는 말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완악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자신의 인생에 당장의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헛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왔지만 고단한 현실은 바뀌지 않았고, 여전히 자신들의 삶이 곤고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무슨 유익이 있냐며 헛될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관점은 당장의 눈앞의 이익에 국한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으면 당장 인생사가 나아져야 할 텐데도, 그러한 인생의 당장의 이득이 없으니까 헛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더 이상 갖지 못하고, 하나님이 행하실 변화를 기대하기를 포기하고 체념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한 기대의 상실이요 더 이상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오히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플러스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는 교만한 인생이 오히려 잘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은커녕 오히려 번성하고 세움을 입고, 악행하는 자들이 세움을 입으니까 이들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셔야 하는데 실제 현실은 오히려 하나님도 없는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데도 문제 없이 잘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섬김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악행하는 자가 잘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하는데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제재도 없고 재앙도 없고 화도 없고 오히려 잘만 되더라는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스르는 완악한 말로 규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헛되고 아무 인생에 유익이 없다는 불평과, 악을 행하는 자들이 도리어 번성한다는 불평의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 우리 인생을 들여다보고 인생의 고통스런 삶의 탄식을 하나님이 제대로 듣고 있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에 불의가 가득하고 불의한 자가 오히려 득세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사람들이 말들을 하는 바로 그때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바로 그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도 서로 말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나와있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말을 들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소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리에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해두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기념책에 기록해주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기억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기념책’에 기록해두심은 하나님의 기억해주심을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상징입니다. 누구를 기억해주신다는 겁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기억해주시겠다는 겁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 그래서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그들에게 응답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행하실 것임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17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기념책에 기록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될 것입니다. ‘특별한 소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세굴라’인데요, 보석 같이 귀하게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것도 헛되다고 말하지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여호와를 섬기는 이들을 소중한 보석처럼 여겨주실 것이며, 마치 아비를 섬기는 아들을 아끼는 부모 같이 그들을 아껴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18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여기에서 ‘돌아와서’, ‘분별하리라’는 두 개의 동사는 대부분의 주석가들의 의견대로 ‘다시 보게 될 것이다’를 뜻하는 표현입니다. 너희들이 악인에 비해서 의인이 어떠한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에 비해 그분을 섬기는 자들이 어떠한지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많은 사람들이 헛되게도 여호와를 섬기냐며 비웃고 조롱하던 이들이 결국에는, 당장의 이익적 관점으로만 생각하던 그들이 결국에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오셔서 그분을 경외하는 이들을 아끼실 그날이 이르면, 이들은 경악할 정도로 놀라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비웃던 그들이 오히려 존귀케 되고, 악인의 최후를 보게 될 때의 당혹감과 경악과 놀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주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요, 겸손과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며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요, 많은 사람들이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당신의 그 섬김이 하늘에서 해같이 빛나리...”는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다니엘서 12장 3절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섬김을 다 기억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십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결국 분별해내시겠다고 약속해주십니다.
새벽예배 때마다 지금 전도서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번성한 시대의 왕이었던 솔로몬이 말년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니까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와 노력과 영화가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고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반면에 오직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알고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 누리고 인생 말년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 지혜자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어서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당장의 눈앞의 이익만을 좇고 그 이익이 생각만큼 없다고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어버리고 더 이상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섬김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정한 날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긴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여호와를 경외하고 여호와를 섬기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종말의 축복, 썩어지지 아니하는 영생의 면류관을 얻는 복락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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