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7일 동산교회 설교 (주일 낮)
천국의 비밀 (마 13:1-9)
예수님은 이땅에서 천국의 도래를 선포하셨습니다. 천국이 곧 도래할 것이며 이미 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임박이며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할 것을 촉구하는 회개의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보냄을 받고 이땅에 천국의 메시지를 들고 하나님의 사신(메신저)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가져오는 자로서 예수님 자신은 사람들의 오해를 받을 것을 많이 염려하신 듯합니다. 어떤 오해입니까? 천국을 이땅에 가져올 때 뭔가 기적적인 방식으로 천국이 임할 거라는 사람들의 잘못된 기대로 말미암은 오해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국이 있을 것인데, 그러한 기대와 부합하는 모습으로 천국을 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천국에는 늘 기적이 끊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천국이 임하면 유대 나라가 오랜 식민통치를 끝내고 다윗 왕조를 재건할 것을 기대하는 우국충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유대인들만의 부활을 꿈꾸는 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늘 기근과 굶주림에 시달렸던 민중들이 이제는 굶을 걱정이 없어질 것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상이 가지각색이었을 것이고, 보통의 유대인들의 천국에 대한 기대는 말그대로 천국 곧 하늘 나라로서 지상 나라와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천국을 가져오는 자로서 예수님 자신에 대한 오해도 예수님은 염려하셨습니다. 특별히 이땅에서 많은 기적을 베풀기 때문에 받는 오해가 컸습니다. 하나님의 보냄을 받고 이땅에 온 메시야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오해가 발생하였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이땅에 내려오신 분이므로 당연히 많은 기적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였고, 이러한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 예수님은 실제로 많은 기적과 치유를 베푸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이 임하려면 기적적인 방식으로 임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오해요 천국을 가져오는 자로서 예수님에 대한 오해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서 기적을 베푸신 이유라고 할까요, 동기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죄에 매여 죽을 인생들을 향한 안타까운 연민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선함과 풍성한 은총을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삶의 고통과 질병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분노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아야 했고 질병을 치유해주셔야 했던 것입니다. 오해 받을 것을 염려하여 기적 행사를 자제하기도 했고 기적을 베풀고서 아무에게도 고침 받은 사실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 때문에, 그리고 창조 질서를 왜곡하고 인간을 나락으로 밀쳐내는 죄의 세력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의도를 충만하게 누리지 못하는 질병과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예수님은 오해를 무릅쓰고서라도 기적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자랑하고 떠들었고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천국이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 천국이 어떻게 임하는가에 대한 오해, 천국을 이땅에 도래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활동하시는가 하는 하나님의 활동 방식에 대한 오해,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가에 대한 오해, 왜 기적을 베푸실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오해, 이러한 오해에 대항하고서 이땅에 천국을 가져올 자로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천국이 어떠한 것인지, 예수님 자신은 누구신지를 직접적으로 말씀하시 않으시고 예수님은 비유로써 가르치셨습니다.
비유란 그리스어로 ‘파라볼레’로서 ‘파라’ 곧 옆에다 ‘볼레’ 던지다, 곧 나란히 던져놓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가르치려는 영적인 진리를 추상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삶의 일상의 이야기를 그 영적인 진리 곁에 나란히 던져놓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비교’과 ‘견줌’입니다. 이해하기 쉬운 일상의 이야기를 이해하고서 그것을 견주고 비교하고 유추해서 영적인 진리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예수님의 비유가 ‘천상의 의미를 갖는 지상의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까?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천국을 오해하지 않도록, 그리고 이땅에 천국을 도래시킬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는지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도록, 메시야로서 보냄을 받은 예수님이 이땅에 어떻게 천국을 가져올지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도록 예수님께서는 천국 비유로써 천국을 계시해주셨습니다.
소박한 자연 일상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천국이란 마치 이땅과 무관하고 초월적이기만 하고 내세적이기만 한 그러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하늘에서처럼 이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늘 보아오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활동하시는 것이지, 위로부터 아래로 침입해 들어오는 비상한 방식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님을 강조한 것입니다. 오히려 창조주로서 창조 세계에 편만한 분으로서 이 세계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분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천국의 임함은 기적적으로 오지 않고 오히려 소박한 말씀의 씨앗을 받을 때 임하는 잔잔한 물결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기적보다는 오히려 섬김과 희생으로써 임하는 천국입니다. 천국을 가져오는 분으로서 예수님은 기적을 행사하거나 사람의 기대에 화끈하게 부응하는 방식으로서 천국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비밀 중의 비밀, 곧 메시야로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이땅에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 곧 하나님의 통치가 인간의 통치와 얼마나 다른지를 예수님은 가르쳐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또다른 이유는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관심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천국의 비밀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직접적인 설명이 아닌 간접적인 비유로 가르침은 믿음과 관심이 있는 분 곧 들을 귀가 있는 분들은 한발짝 더 다가오라는 초청입니다. 아예 관심도 없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할 의사도 없고 오직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하나님의 나라 곧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권력의 확장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정한 천국의 모습을 그들은 원하지도 않을 것이죠. 오직 자아를 강화할 수단으로서 천국을 이용하려고 할 뿐입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직접 설명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비유가 제격입니다. 비유로써 무관심한 자들이나 천국을 기대하지 않는 자들은 탈락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는 지원자들이 많습니다. 수많은 지원서가 도착합니다. 일일이 다 검토하기보다는 어떤 제한 조건을 설정하고 걸러냅니다. 일종의 스크린을 쳐놓는 거죠. 비유도 이러한 차단 효과를 냅니다. 오직 먹고 사는 것에만 온통 관심이 있어서 천국도 그러한 욕망을 달성시켜주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천국을 직접 설명하시지 않고 비유로써 제시함으로 천국의 접근을 탈락시켜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것을 고대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하나님의 회복을 원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의 천국 비유의 말씀을 듣고 더 큰 갈증을 느낍다. 그리고 한 발짝 더 예수님께 다가와 묻겠죠. “이 비유의 뜻이 무엇입니까?” 비유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비유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관심 있고 믿음 있는 자들에게만 잘 들리는 속성이 있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에게만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속의 관심사에 사로잡혀서 말씀을 접하는 분들에게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단으로 말씀을 왜곡시킬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비유만 비밀을 계시하는 게 아니라 성경 말씀 자체가 계시로서 비밀을 계시합니다.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들어도 알지 못하고 그러나 들으려 하면 들리고 보려하면 볼 수 있는 가까이 임한 계시의 말씀이요 천국의 복음입니다.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수님의 비유도 천국 비유입니다. 천국 비유로서 천국이 어떻게 임하는지, 왜 천국이 오해되고 거절되고 때로는 받아들여지는지, 천국을 가져오는 자로서 예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지, 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데 반해서 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거절하는지 등 기본적인 천국과 예수님에 관한 비밀을 계시해주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비유를 신학자들은 강조점을 달리하면서 다음 세 가지로 불렀습니다. 주로 미국의 신학자들은 ‘씨 뿌리는 자 비유’로 말했고 주로 독일의 신학자들은 ‘네가지 토양의 비유’로 말했고 최근의 복음주의권 주석가들은 ‘씨앗들의 (운명에 관한) 비유’로 부릅니다. 각기 강조점이 다르고 각기 적용점도 다릅니다. 예전에 비유를 배우면서 비유에 나오는 구석구석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 양 영해를 한다거나 이솝 우화와 같은 알레고리화하지 말아야 함에 대해서 주의를 받았습니다. 오히려 비유에는 엄격하게 한 가지 의미가 있을 뿐이고 비유의 분명한 초점과 방향을 망치로 얻어맞은 듯 충격적으로 읽어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만, 오늘날에는 비유의 다의적 속성이 많이 강조됩니다. 한가지 뜻만이 아니라 비유 자체의 속성상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의 비밀을 계시하는 가장 중요한 비유로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세 가지 차원에서 조망해보고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이 비유는 ‘씨 뿌리는 자 비유’입니다. 씨 뿌리는 자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씨를 뿌립니까? 말씀의 씨, 정확하게는 천국 복음의 씨를 뿌립니다. 씨를 뿌리러 나가서 천국 복음을 무차별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을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선포합니다. 마태복음에서 그 선포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입니다. 마가복음에서 그 선포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천국이나 하나님의 나라나 거의 같은 뜻이지만 마태복음에서는 특별히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부르기를 주저하고 하늘로 대체했다고 설명하는 분들이 대다수고 어떤 분들은 천국이라는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땅에서도 지금 이루어지려고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는데 말씀의 씨앗을 잘 받으면 천국이 임하고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소박하게 임합니다. 거창할 것이 없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면 천국이 임하고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동산교회의 2019년 표어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운동을 계승하는 동산교회!”로 정했습니다. 가장 첫 번째 예수님이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천국 복음의 씨앗을 가리지 않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복음의 씨앗을 널리 뿌리기 위해서 다음주일 총동원전도주일로 정하고 전도하는 것이고, 또 모든 민족에게 가라고 명하신 주님의 선교 명령을 받들어서 8월 초에 필리핀에 나아가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려는 것입니다.
둘째, 이 비유는 ‘네 가지 토양의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는지 왜 어떤 사람에게는 천국이 임해서 천국 백성이 되지만 어떤 사람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거절하는지를 설명해줍니다. 네 가지 토양은 복음의 씨앗을 받는 우리의 마음밭을 가리킵니다. 천국 복음을 받으려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려면 회개해야 하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창조주되심을 인정하고 자신이 피조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없이 산 인생들에게 회개를 먼저 말하는 이유입니다. 회개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씨 뿌리는 자’ 비유에 보면 ‘마음’을 다하여 회개하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이 나오는 바, 그것은 복음의 씨앗이 길가에 떨어진 경우입니다. 마음밭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길가에서 떨어졌기에 사탄 곧 새가 날아와 낚아채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마음에까지 말씀이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전심으로 받을 수 없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회개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못한 자들이란 처음에는 기쁨으로 복음의 말씀을 받지만 믿음의 뿌리를 내리기에는 암반 위에 흙이 너무 얇은 토양입니다. 말 그대로 돌짝밭입니다. 처음에는 즉시로 기쁨으로 복음의 말씀을 받고 결단도 합니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환난이나 핍박이나 어려움이 찾아올 때 힘들어서 포기해버립니다. 신앙을 버립니다.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이르지 못합니다. 환난이나 핍박이나 신앙생활의 어려움이 찾아오면 자신의 목숨과 안위를 위해서 신앙을 헌신짝처럼 내팽쳐버립니다. 그래서 열매 맺지 못합니다. 어떤 분들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힘은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힘이요 또한 재물이죠. 흙도 풍성하고 잘만 하면 회개의 열매를 맺을 것 같은데 이미 마음밭에 가시떨기가 선점하고 있습니다. 가시떨기의 기운에 막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재물에 대한 유혹, 안락한 삶에 대한 미련, 염려와 세속적 관심사에 꽉 붙들려 있어서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에게 천국 복음이 선포되면 그 진리로 자유함을 얻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되어 존재의 문제를 해결받고 삶의 이유와 목적과 방향을 깨닫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여서 창조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죄악으로부터 건져주시는 새 창조를 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 없이 산 인생을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여태까지 자신을 움직이고 있었던 원동력이었음을 깨닫고 완전히 방향 전환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 맺는 인생이 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회개한 인생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천국 백성이 됩니다.
셋째, 이 비유는 ‘씨앗들의 (운명에 관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씨앗’은 말씀의 씨앗, 천국 복음의 씨앗임이 분명한데요,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해석해주시면서 씨앗이 단순히 말씀일 뿐 아니라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또한 가리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길가에 뿌려진 씨앗이라 하시지 않고 길가에 뿌려진 자라고 하셨고, 돌밭에 뿌려진 씨앗이라 하시지 않고 돌밭에 뿌려져 넘어지는 자라고 하셨고,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이라 하시지 않고 결실하지 못하는 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씨앗이 말씀이면서 말씀을 들은 사람들을 동시에 가리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 말씀을 들을 때 마음밭이 중요하다는 강조라기보다 다소 예정론적입니다. 구조와 환경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천국 복음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 우연히 굴러떨어진 곳이 어쩌다보니 좋은 토양이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요, 운 나쁘게도 가시떨기밭에 굴러떨어지다보니 이미 선점해있는 가시떨기의 기운에 막혀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던져진 곳이 흙이 얇은 돌짝밭이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아까 ‘네가지 토양의 비유’에서는 복음의 말씀을 수용하는 우리의 마음밭이 중요하다고 강조되는데 반해서 ‘씨앗들의 비유’에서는 공동체의 토양이 강조됩니다. 공동체가 좋은 토양이면 천국 복음의 말씀을 받은 자 곧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됩니다만, 공동체가 척박한 토양 가령 돌밭이거나 가시떨기밭이면 천국 복음의 말씀을 받았더라도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각 개인의 마음밭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구조와 환경입니다! 말씀 담은 사람들이 어디로 굴러들어가느냐는 것이죠. 교회의 집합적 토양의 분위기와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 동산교회는 천국 복음의 말씀을 받고 더 받아 풍성하게 누리는 공동체입니까? 아닙니까? 아니면 있는 것도 빼앗기게 되는 환경입니까? 다르게 질문하면 우리 동산교회는 하나님나라 공동체입니까? 천국의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는 천국 공동체입니까? 교회의 가장 막중한 사명은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를 누리고 완성될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내로써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공동체 전체의 토양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 특별새벽기도회로 모입니다. 전교인 특별새벽기도회입니다. 4월 14일 총동원주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한 주간을 보내고 이어서 다음주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로 이어집니다. 우리 동산교회는 기도가 흘러넘쳐서 하나님나라의 풍성함을 누리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좋은 토양이 되기 위해서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천국의 비밀에 대해서 조금 더 가까이 접근했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마태복음 13장 9-12절을 함께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이러한 천국의 축복이 우리 공동체에, 그리고 여러분의 심령에 충만하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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