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30일 설교 (주일 낮)
폭풍 항해자가 만난 인생 지혜 (욥 28:20-28)
욥의 극심한 고통은 사탄이 준 시련이었고 하나님이 허용하신 테스트였습니다. 신앙의 순전함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을 통과하고서 욥은 더욱 정금 같이 단련된 사람이 되었지만, 그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재난이 들이닥치기 전까지의 욥의 삶은 조화와 안정과 번영을 특징으로 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복된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건강, 종교적 경건성과 부에 있어서나,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욥의 삶의 조화와 안정이 하루아침에, 그러나 단계적으로 혼돈의 폭풍우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욥 1:9-10) 사탄은 욥의 신앙의 동기를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에 있음을 밝히면서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라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사탄은 욥의 소유물과 자녀들을 쳤습니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고 자녀도 잃게 된 욥이었지만 재난 이후에도 욥은 순전한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두둔하고 욥의 신앙을 인정해주었습니다. 이에 사탄은 하나님께 욥이 아직 자기 몸이 건강하니까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있는 것일 뿐 그의 건강이나 생명을 앗아간다면 욥도 여느 사람처럼 하나님을 부인할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생명을 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탄의 제안을 허락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욥을 두르고 있는 삶의 울타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허물어져 내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재산의 울타리, 그 다음에는 가족의 울타리, 그 다음에는 자신의 생명과 건강의 울타리가 순차적으로 무너져내렸습니다. 이 와중에 욥의 명예와 사회적 지위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습니다. 보다못한 욥의 아내는 욥에게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고 말하고서 욥의 곁을 떠났습니다. 아내의 말을 들은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욥2:10)고 대답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입니까.
욥을 둘렀던 많은 울타리들이 거의 다 허물어져버렸는데 유일하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울타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신앙이라는 울타리, 경건의 울타리였습니다. 안타깝게도 3장에 이르러서 그것마저도 허물어집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고자 방문하고 그들이 침묵으로 일주일을 욥과 함께 지내고 나서 3장에 보면 이후 친구들이 욥이 당한 재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논쟁하기 시작할 때 마지막 남은 신앙이라는 울타리도 허물어져내립니다. 욥이 창조세계를 조롱하고 적대시할 정도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포기한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욥기 3장 4절에서 욥은 “어둠이 있으라!”고 말문을 엽니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문법적으로 같은 구조로 돼 있습니다. 단어만 어둠으로 바꿔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에 이릅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욥 3:11) 하루아침에 욥의 조화롭고 안정되고 복된 삶이 불안정과 두려움으로 반전되었습니다. 모든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욥의 맨몸, 적신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고통스런 적신뿐이었습니다. 욥의 인생은 혼돈의 폭풍우에 완전히 휩쓸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욥기 3장 마지막절은 “내게는 평화도 안정도 안식도 없게 되었다. 오직 혼돈뿐!”(욥기 3:26) (NIV 번역)이라는 탄식으로 마칩니다. 삶을 둘러쌌던 울타리들이 하나씩 전부 벗겨져나가니까 욥의 쌩얼이 드러난 것입니다. 운명이랄까 혹은 보이지 않는 손의 가혹한 처사로 인해 드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된 욥의 쌩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욥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과 여러 차례 논쟁을 했습니다. 친구들은 인과응보의 논리를 들이대고 욥을 정죄했고 그 과정에서 욥은 자신의 의를 방어하려다가 자기의와 교만의 죄에 빠지기도 하고 하나님의 의를 불의하다고 간주하는 죄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욥기 4장부터 27장까지, 욥과 세 친구와의 논쟁을 세 번에 걸쳐 합니다. 지금은 결정적으로 의견을 달리해서 욥과 그의 친구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평소 욥과 욥의 친구들의 생각은 비슷했을 겁니다. 유사한 가치관을 공유했을 것입니다. 왜냐 친구니까 그렇습니다. 보통은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사람끼리 친구가 되지 않아요. 욥의 사태(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특별히 싸울 일도 없어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논쟁하게 됩니다. 의견이 갈리게 되었습니다. 논쟁의 쟁점은 욥의 항변에 있었습니다. 욥은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거나 이전과 다른 특별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혹시 범죄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항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렇듯 극심한 재난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욥의 친구들은 반박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둔하면서 욥이 알지 못하는 죄가 분명히 있을 것이며, 그러므로 회개를 촉구하고 욥을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정의로움에 호소하며 주장을 폈습니다. 인과응보와 악인을 심판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주장합니다. 욥과 친구들의 견해 차이가 왜 발생했나요? 친구들의 말은 구구절절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교조적이고 관습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욥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틀로 해석되지 않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나 욥이나 다들 스스로 지혜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말에는 확신이 실려 있고 이로 보건대 자신들이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왜냐면, ‘지혜’란 삶의 경험, 세상에 대한 경험에서 얻어지는 바, 소위 연륜의 지혜. 전통의 지혜. 창조세계의 질서를 터득한 지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지혜의 확신에 이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에게 들이닥친 새로운 경험을 욥은 경험했지만 친구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욥은 기존에 갖고 있던 지혜의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혼란에 빠졌습니다. 기존의 지혜의 범주 안에 편입시켜 해석하기가 어려운 삶의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기존의 생각과 확신이 열려졌으나(개방성) 친구들은 여전히 닫혀져 있습니다.(폐쇄성)
욥은 자신에게 들이닥친 전대미문의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르러서 지혜를 알 수 없다는 욥의 탄식이 등장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20절에서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가?”(욥 28:20)라고 욥은 묻고 있습니다. 이미 28장 12절에서도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욥 28:12)고 묻고 스스로 답하기를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욥 28:13)고 말했습니다. 21절에서는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졌고 공중의 새에게 가려졌으며”라고 했고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욥 28:23절)라고 말하므로 지혜는 하나님만 아신다는 사상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왜냐면 27절에서 “그때에 그가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탐구하셨고”(욥 28:27), 즉 하나님이 지혜의 발원처이자 지혜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욥이 깨달은 것은 참된 지혜란 하나님에게만 속해 있는 것으로서 창조주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욥이 지혜를 찾지 못해서 탄식하고 있나요? 지혜를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자부하고 있는 친구들은 욥을 보고서 혀를 쯔즛차며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욥은 자신의 인생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해명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재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세상 통치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더 내려올 수 없는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오신 하나님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가 왜 고통당해야 하는가?’라는 탄식입니다. 만약 이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면 과연 그게 무엇인지 그는 절규하듯 탐색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니 하나님의 섭리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 섭리를 알 수 없고 측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욥은 삶의 미스터리, 삶의 불가사의, 삶의 신비한 측면을 엿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욥이 이전에는 하나님 신앙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도 포함하여 삶의 체계가 산뜻하게 잘 정리돼 있었던 때와 비교해서 깨닫게 된 삶의 신비입니다. 이전에는 의심의 여지도 없었고, 지혜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삶의 기초가 뒤흔들리는 폭풍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다 보니 기존의 확신이 송두리째 뽑힌 것이죠. 안전한 체계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되었죠.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신비를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 궁극적 겨냥은 결국 지혜에 관한 물음으로 이어진 것이고 그것은 결국 모든 신비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향한 물음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참된 지혜가 하나님에게만 있다면 지혜에 대한 탐구는 결국 하나님 탐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욥은 자신의 인생에서 비롯된 문제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와 통치의 물음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욥은 지혜에 관한 하나의 결론으로 치달았습니다. 28절,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욥 28:28) 욥이 자신에게 들이닥친 새로운 삶의 경험과 고통속에서 깨달은 지혜는 이미 주어져있는 말씀과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미 잠언 3장 7절에서도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7)라고 말씀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의 크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음과 헤아릴 수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신비요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비는 우리에게 경외의 감정과 찬양과 감사의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끝판왕은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경외심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중심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세상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결국, 참된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신비에 접근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고, 그리고 또한 믿음의 순종이 이어집니다: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오늘 칼럼에도 썼습니다만, 잠언의 결론도 이와 같습니다. 잠언에는 ‘지혜’와 ‘음녀’가 등장합니다. 지혜도 여성명사요 음녀 역시 여인입니다. 잠언은 주로 솔로몬이 자신의 아들에게 주는 교훈과 권면입니다. 솔로몬의 아들입니다. 남성인 그는 과연 어떤 여성을 만나야 할까요? 지혜라는 여성 아니면 음녀라는 여성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좋은 여성 만나서 결혼해야 하는데 그 좋은 여성은 곧 지혜라는 여성입니다. 어떻게 지혜를 만날 것인가? 이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음녀에게 빠지지 않고 지혜를 만나 지혜와 결혼할 것인가? 그 지혜는 잠언 8장 지혜장에 이르면 분명한 본질이 등장합니다. 지혜가 선재한다는 사상. 창조세계 이전에 존재함이 지혜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창조를 할 때 하나님과 함께 있어서 하나님이 활용하셨던 지혜입니다. 지혜란 창조주에게 속한 것이며, 아무리 창조세계에서도 원리를 터득하고 창조세계를 잘 탐구하면 지혜를 얻는다 해도 그것이 지혜의 근원은 아닙니다. 지혜의 근원은 창주조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의 결론은, “소위 지혜로워지려고 하고 지혜를 찾기 위해서 각종 서적을 탐독하고 학문의 배움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그렇게 지혜를 추구하면 결국 연약한 인생은 세상에서 미련한 음녀를 만나게 됩니다만, 하나님을 찾으려 하면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자 하면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지혜의 시작 곧 출발점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위로부터 난 지혜’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와 세상적 지혜를 대조했습니다. 야고보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로 인생을 해석해야 할 것을 1장부터 강조합니다. 특별히 인생의 재난과 시련이 들이닥쳤을 때, 인생 항해 중에 폭풍을 만났을 때 그 고통과 시련을 해석할 수 있기 위한 지혜를 강조합니다. 야고보서 1장 2-5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특별히 인생의 항해 중에서 순항할 때보다 폭풍을 만난 때 더욱 지혜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그때 우리가 꼭 지혜를 구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지혜가 있어야 인생이 해석되고 하나님의 크심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면서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폭풍 속에서 지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인내를 위함입니다. 시련의 한가운데서도 기뻐할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시험 당하면 자신의 부족한 것들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돈이 없고, 환경이 안되고, 인격이 부족하고, 실력이 모자랍니다. 그러나 정말 부족한 것은 이 모든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가에 대한 그 뜻을 아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발견될 수 있고, 하나님을 우리가 알아갈 때 깨닫게 되는 지혜요,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곧 지혜인 것입니다. 그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결국 지혜란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를 중심에 놓고 자기에 기초하며 자기 안에 닫힌 채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항상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개방성을 가지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느냐의 차이입니다. 믿음이란 개방성입니다. 오늘 오후예배 때 살펴볼 말씀입니다만, 믿음이란 그저 받는 것입니다. 받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를 받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요, 예수님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요, 지혜를 받고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참된 지혜란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서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고 말씀하는 이유입니다.
욥이 폭풍 중에서 깨달은 인생의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혜라는 사실입니다. 참된 지혜가 육화되어서 인간이 되신 분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인생의 지혜는 예수님 잘 믿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섬김이요 여호와 경외요 참된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이 순탄할 때보다 오히려 폭풍 속에 진입했을 때 삶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삶의 진실이란 인간의 연약함이고 하나님의 무한히 크심이요 우리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 자명한 사실조차 인생이 교만해서 순탄할 때는 깨닫지 못하고 인생이 풍파에 흔들릴 때만 접근할 수 있는 진리가 돼버립니다. 재난이라는 폭풍을 만난 인생 항해자 욥은 거기서 참된 지혜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크심과 신비 앞에서 경외감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바로 알기 시작입니다. 우리 신약백성들은 오직 참된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신비의 입구에 들어서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참된 지혜란 이땅에 육화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잘 믿고 잘 따라가므로 참된 지혜자로서 이땅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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