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에 전북노회 신학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고신 신대원에서 교의학을 가르쳤던 유해무목사님의 삼위일체에 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참된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든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련되는 것임을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설교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모든 사역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력 사역이며 교회가 시행하는 성례, 세례와 성찬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며, 우리가 드리는 기도도 삼위일체께 드리는 기도며, 우리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며, 성도들은 예배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가득채워져서 세상에 나가사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하며 다시 충전하고자 예배당에 모이는 것, 이 모든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삼위일체 하나님이 관련되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강조함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대개의 신학이 그리스도론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에서는 기독론이라고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신학은 기독론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참된 신학은 십자가 신학임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목표며 계시의 절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는 성경적 이유는 분명합니다만, 삼위일체로 시야를 넓혀야 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입니다. 심지어 십자가에서조차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는 영원한 신비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만유보다 크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위, 즉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세 인격 주체로서 어떻게 한 분이신가 하는 문제는 신학의 역사에서 오랜 숙제였습니다. 신대원 다닐 때 조직신학의 신론에서 삼위일체론을 다루는데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교리사라는 과목에서 삼위일체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넓어졌습니다. 교부 시대로부터 중세 시대, 그리고 현대 신학자에 이르기까지 삼위일체가 어떻게 시대적 한계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신학자들에 의해서 논의되었는지를 역사 과정에서 추적함으로써 삼위일체론의 이해가 깊어졌던 기억입니다.
교리사 과목에서 서철원교수가 터키의 갑바도기아 교부들이 삼위일체론에 공헌한 바에 대해서 강의하였는데 그 설명이 조금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삼위가 어떻게 한 분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설명을 쉽게 해보면, “사람이 다양한데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능력, 가령 인격, 체력, 지성, 의지, 감성 등을 100% 다 가진 인간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런 완벽한 인간이 세 명이 있는데 인성이라는 본질에 있어서 100%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일본질을 소유한 세 사람은 그런 점에서 하나와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미진한데 삼위가 동일본질을 가졌다고는 해도 삼신론으로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계시된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신약에 이르러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계시되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온전한 내부적 사랑의 교류 속에서 일체를 이루시고 밖으로 경륜적으로 사역을 행할 때도 온전한 하나됨 속에서 한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점에서 영원 전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영원 후까지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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