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언론에 관심이 많아서 언론정보학과에서 개설한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 시간에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생문(羅生門)(1950년 作)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주제는 진실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이 한 사건을 묘사하는데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 따라 기술하다보니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뿌리 깊은 이기적 본성 탓에 자신의 입장을 두둔하고 세우려는 쪽으로 편향되어 지각하고 혹은 의도적으로 편향적으로 진술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진실을 알기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100% 순수하게 객관적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객관을 지향하더라도 인식 주체의 주관이 끼어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관과 주관이 의사소통과 토론으로 객관에 가까운 진실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진실에 접근해가야겠으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러 객관주의의 신화는 깨졌고 절대적이라는 말 자체를 쓰기 어려운 상대주의적 관점이 힘을 얻었습니다. 절대적 진리도 없고 객관적 진리도 없고 순수하게 존재 그 자체의 실체도 없다는 회의주의가 득세한 시대입니다.
최근에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관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진실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오전에 시작된 조국 후보자 청문회를 일부분 시청한 후입니다. 언론 보도 중에는 진실을 가려야 할 부분도 있고 명백하게 가짜 뉴스로 판명된 것들도 많았습니다. 언론의 합리적 의심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럴 것이다’는 추측을 사실로 단정하는 추측성 기사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독한 검증과 더불어 언론의 의혹제기 기능도 필요하지만 기사는 사실 보도에 충실해야 하고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간주하는 무죄추정원칙이 언론 보도에도 필요합니다.
후보자가 그간 SNS에서 언급했던 발언들과 정의에 대한 훈계와 입장이 부메랑이 되어서 본인의 입지를 짓누르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검찰개혁과 맞물려 검찰의 저항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윤석렬총장의 의도에 관해서도 지지자층에서도 극명히 갈리고 있습니다. ‘문제인정권을 살리려는 것이다’에서부터 ‘검찰발 쿠데타’라는 반대적 해석이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청문회와 검찰 수사에서 소위 불법이 드러난다면 대통령도 임명이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소위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검찰 및 사법개혁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시됩니다. 현재까지는 어느 정도 높은 지지율로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대통령이 막상 임명 후 한 세트로 인식이 되어서 지지율이 빠지고 레임덕이 가속화될 우려도 있습니다.
마치 생물과 같이 살아움직이는 정치권의 요즈음입니다. 청문회를 보고서 진실 찾기의 어려움을 생각하다보니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 공방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핑계치 못하리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일련의 정치적 격랑을 지켜보면서 신앙과 삶이, 말과 행실이, 안과 밖이 온전히 일치되는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해봅니다. 전도자의 지혜, “젊은이들이여 마음껏 살아라! 다만 하나, 끝에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만은 기억하라!” 이 지혜가 진실한 삶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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