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5일 설교 (주일 낮)
천국 백성들이여, 들으라! (신 6:4-9)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 교회학교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잘 부르는 찬송가는 찬송가 563장 <예수 사랑하심을>일 것입니다. 이곡을 작사한 것으로 알려진 안나 워너는 소설가였고, 이 가사도 그녀의 소설 <고백과 확증>에 처음 쓰인 것이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주일학교에 다니는 병약한 소년 조니 팩스와 교회학교 교사 존 린덴입니다. 린덴은 조니의 주일학교 교사로서 조니를 사랑하여 관심을 쏟고 가르치고 그를 위해 기도해줍니다. 어느 덧 병약했던 아이 조니는 병상에서 곧 죽음을 맞이할 것처럼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문병을 간 교사 린덴은 조니를 위해 눈물로 기도해주고서 아이에게 묻습니다. “조니, 너를 위해 뭘 해줄까?” 아이는 찬송을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린덴이 조니를 안고 처음으로 부른 찬송이 바로 <예수 사랑하심을>이었습니다. 가사를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가 날 사랑하시네. 나는 그것을 잘 아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니까. 어린아이는 예수님의 것이네. 그들은 약하지만 예수님은 강하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셨네.’ 이 찬송 가사를 통해서 린덴은 조니에게 ‘예수님은 너만을 사랑해. 네가 비록 병상에서 꽃다운 생명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지만, 그러나 조니야, 주님은 너만을 사랑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찬송을 듣고서 조니는 ‘그래,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셔, 나만을 사랑하셔’를 가슴에 새기며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느꼈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옥한흠 저, 207-8)
개역개정 찬송가에는 가사가 좀 바뀌어 있습니다만, 예전 찬송가에서는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로 의역을 해놓았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고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전부를 요구할 때만 진정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내어주고 우리를 위해 헌신하시는 거룩하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시는 것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 받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품고 있는 그러한 사랑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거룩한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창조주인 그분에게 온전히 복종할 때만, 온전히 헌신할 때만, 다른 말로 하면 그 사랑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될 때에만 거룩한 사랑으로 인정하십니다.
구약성경의 율법과 계명은 우리가 잘 지키고 살기만 하면 복을 누리게 돼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너무 잘 아십니다. 어떻게 해야 복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지를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떤 것은 ‘하라’고 또 어떤 것은 ‘하지 말라’고 인생의 울타리를 든든하게 쳐주신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이땅에서도 얼마든지 형통과 번영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가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샬롬’의 상태입니다. 샬롬이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복된 삶의 상태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누리게 되는 축복입니다.
구약성경의 율법과 계명의 핵심은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두 번 기록돼 있습니다. 특별히 신명기 5장의 십계명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첫 세대가 광야에서 40년간 유랑생활한 후 그 다음세대에게 주신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십계명은 율법의 요약으로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주신 삶의 영역 곧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번성하며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하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율법의 요약인 십계명을 또 한번 요약하면 예수님께서 요약하신 대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나뉘어지지 않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한 가지 사랑의 흐름이라고 한다면 결국 사랑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대상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경쟁자와 우리의 충성과 사랑을 나눠가질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독보적이고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이를 십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 할 수 있는 제1계명이 잘 보여줍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신 5:6-7)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의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뿐이기 때문에 다른 우상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 앞에다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란히 놓여있는 우상들을 다 치워버리고 참되시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제1계명에 대한 마틴 루터의 해설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이란 사람들이 소망하는 모든 좋은 것, 온갖 시련의 피난처가 되는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신을 섬긴다’는 말은 그 대상을 진심으로 믿고 신뢰하는 것을 뜻합니다. 제가 거듭 말했듯이, 오직 마음의 믿음과 신뢰만이 신을 만들 수도 있고 우상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바른 믿음과 바른 신뢰가 있다면, 당신의 신은 바른 신(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바르지 못한 믿음과 바르지 못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른 신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우상). 왜냐하면 이 둘, 곧 신앙과 신은 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집착하고 있고 당신의 모든 것을 지탱하는 대상, 그것이 바로 당신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패한 마음은 성경에 의해 바른 방향을 교훈받지 못하고 성령에 의해서 새로워지지 못하면 우상숭배로 귀착됩니다. 그래서 존 칼빈은 인간의 마음은 끊임없이 우상을 제조해내는 우상 공장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열 번 째 계명은 탐내지 말라는 내용인데 이 또한 우상숭배 금지의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해석한 대로 탐심은 곧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욕망과 탐심은 대상을 향한 집착이어서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갑니다. 그것이 곧 당신의 하나님이 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되어서 우리의 마음의 섬김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심도 곧 우상숭배입니다.
십계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일하신 하나님 외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므로 유일하신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는 우리의 사랑과 충성을 빼앗아가는 우상을 타파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십계명이 율법의 요약이라면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6장 4-9절은 율법의 심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단순히 요약해놓은 것이라기보다 모든 율법이 살아서 펄펄 움직일 수 있도록 피를 공급하는 심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6장 4-9절은 유대교 신자들이나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첫손에 꼽는 계명입니다. 히브리어로 ‘쉐마’ 곧 ‘들으라’로 시작해서 이 단락을 ‘쉐마’라고 부릅니다. ‘쉐마’는 너무나 중요하니까 잘 듣고 순종하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입니다. 현대 유대교 전문가에 의하면 ‘쉐마’는 유대인 어린이들이 ‘가장 먼저 암송하는 기도문’이며, 유대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신앙과 헌신의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정통파 유대인의 경우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암송하는 성경 말씀입니다.
쉐마는 십계명의 부정적인 진술 형태, 곧 ‘하지 말라’를 긍정적인 형태로 바꿔놓은 명령입니다. 하나님과 나란히 우상을 두지 말라는 게 십계명이라면 쉐마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바로 알고 그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명령이고 그 명령을 가슴에 담고서 자녀에게 하나님을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명령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예수님이 선포한 천국 복음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예수님이 선포한 천국 복음이란 유일하시고 독보적이시고 절대적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 마음에 품고 있던 하나님과 방불한 우상들을 다 깨뜨리고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위해서 먼저는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키고서 내 안에 하나님처럼 여겨진 죄악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서 유일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그분만을 전심 전력하여 사랑하라는 천국 복음입니다.
쉐마에는 두 가지 명령이 나옵니다. 첫째는, 본문 5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말씀은 몇 가지 질문을 하게 합니다. 당신의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애굽땅 곧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곧 여호와 하나님,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건져내주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사랑하되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신약성경 번역이 더 좋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은 내적 자아를 가리킵니다. 판단하고 결정하고 지정의 인격의 중심이 바로 마음인데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씀은 전심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곁에 나란히 놓은 다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마음이 나누어진 사랑과 충성이 아니라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은 문자 그래도 자신의 목숨보다도 창조주 하나님을 더욱 소중히 알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목숨은 히브리어로 ‘네페쉬’라는 단어입니다. ‘네페쉬’는 혈기 있고 호흡이 있는 동물이나 생명을 가리킵니다. ‘네페쉬’는 또한 욕구, 충동 등을 가진 외적 실체를 가진 존재를 뜻합니다. ‘마음’이 내면적 자아라면 ‘목숨’은 ‘네페쉬’ 곧 숨을 쉬고 활동하는 외면적 인격을 가리킵니다. 욕구가 있고 충동이 일어나는 외면적 자아로서 외적인 활동으로 살아가는 생명이 곧 네페쉬입니다.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는 명령은 살아가는 모든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외면적 활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 표현이어야 한다는 강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호흡과 생명 곧 네페쉬를 주신 분이기 때문에 네페쉬를 다해서 사랑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힘’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매오드’라는 단어인데 힘이라는 뜻뿐 아니라 원래 ‘매우, 많이’라는 부사로도 사용됩니다.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함은 매우 많이 힘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매오드’는 ‘매우, 많이’뿐 아니라 ‘재물, 재산’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물과 재능 그리고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전심과 전력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내적 자아에서 일어나는 마음뿐 아니라 호흡을 부여받은 생명체로서 생명 다해 곧 모든 삶의 외면적 활동을 통해서, 그리고 이뿐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능과 은사와 재물과 기회를 총동원하여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 안에서부터 우리 바깥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시길래 이처럼 큰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본문 4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쉐마(들으라), 이스라엘’로 시작합니다. ‘쉐마’로 시작한다고 해서 이 단락 곧 신명기 6장 4-9절을 유대인들은 쉐마라 부른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여호와가 언약 백성인 유대인의 하나님이신데 그분은 유일무이한 독보적인 존재이십니다. 홀로 한 분만이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들은 다 상대화시켜야 할 존재들일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큰 사랑을 당신의 백성에게서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쉐마 명령은 바로 여호와가 유일하시고 독보적인, 비교불가능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거기에 상응하고 바로 대우해서 하나님만을 전심 전력으로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의 존재에 걸맞게 바로 대우해야 하는 인간의 기본적 의무를 명시해놓은 것이 바로 쉐마의 첫 번째 명령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라고 말씀합니다. 쉐마의 첫 번째 명령인 하나님에 대한 바른 규정과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 의무사항을 마음에 내면화해서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잘못 규정하면 자신을 잘못 알게 되고 하나님을 잘못 섬기게 됩니다. 그것이 곧 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어버리는 겁니다. ‘마음에 새기라’는 말씀은 죄가 깃들지 못하도록 이 말씀을 내면화시켜 잘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율법 순종은 마음의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쉐마의 두 번째 명령이 나옵니다. 7절입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너’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네 자녀’라고 하는 것으로 보건대 ‘너’는 부모를 가리킵니다. 4-5절의 쉐마의 첫 번째 명령은 부모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먼저는 부모입니다. 자녀가 아닙니다. 부모교육이 우선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바로 깨닫고 자신 안에 있는 우상들을 다 치워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하나님 되도록 전심전력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음에 새겨지고 몸에 기억될 정도로 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녀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인 우리는 ‘내가 과연 선생 될 자격이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부모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있지 못하면 가르치나 마나이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이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쉐마의 첫 번째 명령을 잘 순종하는 부모가 될 때 두 번째 명령도 지킬 수 있습니다.
쉐마의 두 번째 명령은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을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르쳐야 합니다.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항상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의 삶의 패턴이 자녀에게 말씀을 어찌하든지 교육하는 것에 의해서 구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우선적으로 자녀에게 말씀 교육하는 것에 올인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르치라’는 동사는 단순히 강의하고 끝내는 활동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가르쳐서 자녀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잘 박힌 못처럼 박히게 될 정도로 반복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듯이 자녀도 최소한 그 정도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사랑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이 되는 부모의 수준만큼이라도 자녀를 끌어올리라는 명령입니다. 부모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부모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 말씀합니다. 본문 8-9절입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한 마디로 부모가 삶의 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의 손목에 이 쉐마의 말씀을 매어두라는 것은 이 말씀을 모든 활동의 중심으로 삼으라는 것이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으라는 말씀은 사고와 판단의 기준과 기초를 말씀에 두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생각하는 것에나 행동하는 것에나 부모가 먼저 말씀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기도 하고 행동하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기준이요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 문설주에 기록하라는 말씀은 집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말씀에 주목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을 주관하라는 것입니다. 바깥 문에 쉐마의 말씀을 기록하라는 것은 바깥 문이 성문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가정의 범위를 넘어서 사회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력 아래에 두도록 말씀의 원리가 확장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쉐마에서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부모입니다. 부모 자신이 말씀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사랑하는 신앙적 기준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생명력 있는 신앙이라면 자연스레 삶에서 드러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체가 가르침이요 산 교훈이 되는 것이며, 구체적인 말씀 가르침에 더욱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쉐마의 원리입니다.
실제 사례를 놓고 보더라도 이처럼 말씀의 원리에 철저한 신앙을 가진 1대 신앙인은 삶에서 본이 될 뿐 아니라 자신이 말씀의 중요성을 알고 철저하게 말씀에 순종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정도로 말씀 우선적 신앙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말씀 교육을 시키게 됩니다. 그 결과 자녀 역시 바른 신앙인으로 자라날 뿐 아니라 훌륭한 인성을 지니고 소위 사회적인 기준으로 볼 때에도 성공적인 사회인으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성경은 인생 매뉴얼입니다.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복된 삶인지를 알려주신 지침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어떠한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녀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대원칙을 발견할 수 있는 바 그것이 곧 쉐마이며 쉐마 명령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 잘 순종하면 우리의 자녀들이 바른 신앙, 훌륭한 인성, 그리고 성공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하면서, 먼저는 부모 된 우리가 말씀에 입각하여 바른 신앙을 가지고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전심전력하여 더욱 사랑하고, 그리고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허락하신 자녀들을 잘 말씀으로 가르쳐서 신앙이 다음세대에까지 이어지며 훌륭한 자녀들로 성장하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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